내 집을 내 집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 - 문화예술회관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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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초, 고성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예술 발전 간담회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말은 홍길동의 ‘호부호형 불가’라는 문장이다. 지역 사회에서 문화예술인���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명색이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고성에서 ‘예술인 복지증진 조례’가 행정과 의회의 무관심 속에 표류하고, 문화예술회관 건립은 의견만 난립할 뿐 제대로 된 가닥을 잡지 못하고 간담회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비생산적인 일에 세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여론까지 만들어지고 있어 화두의 당사자인 문화예술인들의 입장은 참 난처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죄를 지은 사람들인가?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데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니 안타깝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사대부의 핏줄이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아픔을 새삼 느낀다. 우선 제집을 두고 집 타령을 해야 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성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집이 분명히 있다. ‘고성군문화체육센터’가 그것이다. ‘고성군문화체육센터’는 문화예술회관 건립비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부에서 내려온 예산으로 지은 건물이다. 논란의 발단은 좀 더 그럴듯한 건물을 지으려는 욕심으로 마사회 기금을 보탠 데서 시작된다. 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체육 시설이 일부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시설 대부분을 체육관 용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인들이 집을 빼앗긴 이유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문화예술인을 위한 온전한 건물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고성군문화체육센터’는 문화예술 공간도 아니고 체육 공간도 아닌 어정쩡한 시설이 되어 버렸다. 꼼수를 부리다가 제 꾀에 넘어갔다고 할까? 그러니 지금 와서 누구 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당시로 봐서는 부족한 체육 시설과 문화예술 공간을 함께 가질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고, 관계자들도 현직에서 떠나고 없으니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다. 그러나 당시 행위가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 주인에게 건물을 돌려줌이 마땅하다. 그런데 행정에서 내놓은 해결 답안은 불성실하기 그지없다. 우선 건물을 문화예술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마사회 기금 투입으로 용도변경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짓는 것 또한 안된다고 한다. 고성에 공식적으로 문화예술회관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예산을 받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성에 국가적 사업을 유치하여 자투리 예산이라도 생기면 별도의 문화예술회관을 지을 수 있지 않겠냐는 정도이다. 한마디로 말해 어불성설이다. 회관 건립은 매번 선거 때마다 군수의 공약으로 나왔지만, 여태껏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백두현 군수 공약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인맥이 청와대까지 연결되어 있고, 손꼽히는 국회의원을 고성으로 불러들일 정도의 능력을 자랑하는 백두현 군정의 능력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답변이다. 문화예술회관 건립 문제는 행정이 의지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염원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대안으로 대충 어림거릴 것이 아니다. 풍찬노숙하는 예술단체들이 부지기수인데, 집을 마련해 줄 방안을 찾지 않는다면 행정과 의회의 직무 유기이다. 행정과 의회, 그리고 관련 단체는 머리를 맞대고 이른 시일 안에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최고의 방법은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현재 건물은 체육 시설 위주로 되어 있어 증·개축에 한계가 있다. 더구나 주인을 노숙시키고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 행정이고 그걸 허가한 것이 의회이다. 그 잘못을 인정한다면 두 기관이 논의하여 적당한 자리를 선택하여 새 건물을 지어줌이 마땅하다. 예산 탓을 할 것도 없다. 현 행정은 충분히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안다. 기존의 체육 시설을 두고도 새로운 체육 시설을 짓고, 작지 않은 규모의 군립 도서관을 두고도 인근에 어린이 도서관을 별도로 짓는 도시에서 까짓 문화예술회관 하나 못 지으랴?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새 회관 건립이 어렵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현재의 문화체육센터를 증·개축하여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작지 않은 규모여서 아쉬운 대로 관련 단체의 사무실을 한 곳에 모으고 공연장과 전시장 정도는 갖출 수 있다. 또한 별도로 토지를 사들일 필요가 없고,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 하는 것이어서 큰 예산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의 예산은 중앙 정부나 광역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행정과 의회가 해야 할 일은 또 하나 더 있다. 회관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해결하는 일이다. 일부 주민들은 새 건물을 짓고 인력을 채용함에 거부 반응을 일으킬 만큼 예민하다. 백두현 군정이 들어서면서 이전에 비해 많은 건물이 지어지고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필요한 인력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또 세금으로 건물 관리 및 인건비가 충당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한다. 그런 우려에 동의하는 바이다. 주민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유지비와 인건비는 다른 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된다. 흩어져 있는 문화예술 관련 단체를 한곳에 모을 뿐 운영은 각 단체에서 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물을 관리하기 위해 소수의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고성의 문화예술을 지키는데 설마 외지 사람을 불러와서 관리를 맡기기야 할까?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일부 주민들은 ‘우리 지역에 문화예술회관이 없어 활동을 못 하느냐?’라고 묻는다. 기존의 시설을 이용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사안을 보는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화예술 회관은 없는 것이 아니고 빼앗긴 것이고, 또 경남 18개 기초 자치단체 중에 고성만 유일하게 제대로 된 회관이 없다는 것은 문화예술 도시 고성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은 공간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대료를 해결하지 못해 개인 집을 사무실로 활용하거나, 더 값싼 곳을 찾아 수시로 이사하는 단체도 있다. 거기에 작품을 내다 걸 마땅한 전시장이 없어 박물관이나 군청 복도를 빌리거나, 때로는 거리에서 작품전을 한다. 혹자는 그렇게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전시라는 것은 배경과 조명 등 갖추어야 할 주변 환경이 까다롭다. 그래서 별도의 공간이 꼭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일반 주민들에게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사실 문화예술 공간은 없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권인 ‘의식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주만 해결된다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식주 해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공통 충족 조건이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행위 중에 예술과 문화가 있음을 왜 모르는가? 동굴 벽화가 그냥 나왔을까? 강한 짐승에게 먹잇감으로 쫓기고, 의식주가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도 원시 예술이 존재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문화예술은 문명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순진한 걸까? 아니면 어리석은 걸까? 문화예술인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이다. 빼앗긴 집을 내 집이라 하지 못하고, 속절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속앓이하면서도 ‘내 집 내놓아라.’라고 고함 한 번 지르지 않는다. 정말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럴까? 권력자들은 문화예술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오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예술인은 현대판 홍길동임을 명심하라. 그들이 역사를 바꾼 전례가 수없이 있다. 문화예술인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성의 역사는 고성의 문화예술인이 기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노여움이 덧잡을 수 없는 폭발로 이어지기 전에 뺏은 문화예술 회관을 주인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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