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기도 전에 썩은 것을 어쩌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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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 ‘진보’라는 사람들이 집권하면서 만든 가장 매력적인 낱말이 ‘적폐 청산’이라는 말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보수 정권의 횡포에 억눌렸던 진보 세력게는 머뭇거림의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놀랄 만큼의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 초부터 각 분야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이전 정권의 탓’이라는 전가의 칼을 휘둘렀다. 그들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적폐 청산의 칼날을 들이대면 그동안 관행으로 통했던 폐단이 탈법과 비도덕이라는 멍에를 지고 한순간에 잘려나갔다. 심지어 미덕으로 불리던 것까지도 ‘적폐’라는 낙인이 찍히면 비난과 질타를 받을 정도였다. 사실 ‘보수’라 불리는 세력들은 그런 수모를 당해도 욕이 되지 않을 만큼 세상의 흐름과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콘크리트라고 불리던 지지 세력의 응원과 오랜 집권의 후유증이라고 할까? 국민은 안중에 없었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대문에 빗장을 걸고 사익을 취하기에 바빴다. 결국 그런 오만이 촛불 혁명을 불렀고, 견고했던 보수의 성은 무너졌다. 그동안 보수 세력이 보였던 행태를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보수의 몰락은 선거의 참패로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패잔병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 정당과 언저리에 머물렀던 인사나 단체에는 ‘적폐’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대한민국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을 말한다. 고치고 없애야 할 악습임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무심히 행해진 관용적인 행위이기에 쉽게 고칠 수 없는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적폐를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것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기에 개혁은 매번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역사를 돌아보면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어떤 행동이나 일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이나 해로운 요소를 없애고 고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었다. 적폐를 해소하기 위한 개혁의 시도는 주로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수 기득권층이 주도하는 개혁과, 대규모 민중의 힘으로 시도되는 개혁이다. 기득권층의 개혁이라면 조광조의 도학 정치가 그랬고,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그랬다. 민중에 의한 개혁 시도를 꼽으라면 동학혁명이나 사월혁명이 대표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역사에는 이런 유사한 사례가 수없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수구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조광조는 기묘사화의 피바람을 불러왔고, 김옥균의 갑신정변 역시 삼일천하로 끝났다. 동학혁명은 일본 침략 세력을 끌어들이고, 사월혁명은 군사 정권을 만드는 실마리를 만들어 주었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들이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에게 해방과 6‧25 전쟁 이후 청산하지 못했던 적폐를 일시에 없앨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일러 ‘촛불’이라고 부르는 시민 혁명이다. 소수 기득권자가 아닌 다수 민중에 의한 것이었기에 사월혁명에 버금갈 만한 힘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나라 곳곳에서 일어난 촛불 바람은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고, 진보 정권을 새로운 정치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 결과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국회의원 정족수의 반수가 넘는 의석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적폐 청산의 칼을 쥐여주었다. 국민은 믿었다, 정말 잘할 것이라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나오는 말처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촛불 혁명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받아보는 성적표는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참혹하다 할 정도로 형편없다. 물론 성적표의 결과가 온전히 이 정부의 능력 평가는 아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할까?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과, 검찰과 언론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발목잡기가 극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임기 내내 전염병 예방과 기득권의 반격에 대한 대처에 진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정권의 능력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180석의 국회의원 자리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과감하게 내치든지, 아니면 소통을 통해 회유하든지, 이전보다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집권 이후에도 세상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적폐로 몰린 야권의 저항이야 예상했다고 하지만, 언론과 검찰까지 더한 보수 세력의 저항은 현 정권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국민적 염원이었던 적폐 청산과 개혁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잽이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촛불을 들었는가 하는 회의감이 생길 정도이다. 거기에 보태어 진보 세력의 존립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 믿었던 진보 세력의 무능과 부패에 좌절한 지지자들이 등을 돌림으로써, 이번에는 수구의 저항이 아니라 무능과 아집으로 무너질 판이다. 진보 세력은 집권 후 불과 4년 만에 독선과 아집, 무비판적 독단주의에 빠졌다. 나라를 망치는 원인 중에 하나로 꼽혔던 진영 논리는 진보 세력 이후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 가고 있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 뒤에서 아군과 적군을 분명하게 하다 보니 편 가르기가 더욱 심해진 것이다. 심지어 편 가르기로 자기 쪽 사람만 챙기고, 보수뿐만 아니라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단체까지도 잘못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등 돌리는 일이 허다하다. 역사의 퇴행이 걱정스럽다. 적폐 청산의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칼을 든 정권이 정의롭지 못하면 단죄가 아니고 권력적 살인이 된다. 현 정부의 행태를 보면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내로남불’이라고, 정의를 부르짖는 그들의 행동이 다른 눈으로 보면 적폐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아직도 이전 정부를 탓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까지도 적폐의 탓으로 돌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썩었다고 욕했던 보수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들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하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은 하지 말라. 이제 누가 더 흠결이 많은지도 구분하기 힘들뿐더러, 설사 변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작은 도둑도 도둑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적폐 청산을 부르짖던 진보 역시 이제 청산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도 현 정권의 적폐 청산이 박수받지 못하는 이유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적폐를 부르짖다가 새로운 적폐가 되어 버린 것은 과거를 미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교화시키고 반성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철저히 밟고 죽임으로 통합보다는 갈등의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 지금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소통과 통합의 지도력’이지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니면 철저히 짓밟는 ‘불통과 갈등의 지도력’이 아니다. 적폐는 없애되 소통을 통해 보수 세력에게도 새로운 국가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물은 괴면 썩는다고 했다. 보수 세력의 경우 오랜 집권으로 인해 썩을 만도 하다. 그런데 진보는 고이기도 전에 썩어 버린 느낌이 든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주주의의 몰락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진보 세력의 몰락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족을 붙인다면, 촛불 혁명의 큰 흐름을 함께 탄 고성 군정 역시 현 정권의 공과를 함께 나누는 연장선에 있다. 물론 행정의 탓이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작은 도시 고성의 크고 작은 갈등에 행정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주민과 의회를 무시한 일방적 독주에 군민들이 안타까워하고, 남이 애써 가꾼 것을 자기 것인 양 거두어 자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행태에 분노한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무시하고 오로지 입맛에 맞는 음식만 찾는 행태가 바로 악습이다. ‘대한민국호’도 그렇고, ‘고성호’도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잡아 남은 임기 동안 적폐 청산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소통과 통합’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밀어준 의미를 망각하고 지금까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당신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박수받으며 하선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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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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