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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삼시로 고성말로 안 쓰모 머를 쓰낀데예?

한 나라에서 표준으로 정한 말이 표준어
서울말만 표준어라 볼 수 없어
사투리는 사귐의 언어
언어의 변화 과정은 사회상을 반영
사투리는 촌스럽고 저급한 언어 오명 벗어야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8일
ⓒ 고성신문
스무 살, 막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개강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은 전남 완도 출신의 남자동기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서울 태생이었다. 완도
공장 아들이라는 동기는 전라도 말투 그대로였다. 김공장 아들이 무슨 말만 하면 서울 출신 동기들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그 억양이나 단어들이 너무나 재미있게 들린다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 주민등록 주소도 서울에 두게 됐다. 전입신고할 때쯤엔 서울말에 꽤 익숙해져 경남 출신이란 걸 밝히지 않으면 서울사람이겠거니 생각하는 정도가 됐다. 화를 내거나 당황할 때도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서울말을 썼다.
그래도 동향 출신의 친구들, 가족들과 통화할 때면 고성말, 진주말이 튀어나왔다. 서울 친구들은 사투리 다시 해보라며, 일본어로 말하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호들갑들이었다. 직장인이 되고서도 업무 특성상 아나운서나 기자 등 억양이나 어휘 모두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다 보니 말투는 자연스럽게 표준어 단어와 억양을 사용했다.
어느 날엔가 서울말을 배우고 싶다는 경북 출신 후배에게 서울 출신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맞어. 이 바닥에서 일할려구 하면 사투리는 교정하는 게 낫지. 사람을 많이 대해야 하니까 서울말 쓰는 게 좋지 않겠니?”
서울말을 쓰는 게 좋겠다던 이 역시도 표준어가 아니라 서울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맞어’의 표준어는 ‘맞아’다. ‘~아’를 ‘~어’로 발음하는 음성모음화 현상이나 ‘~고’를 ‘~구’로 발음하는 음운 변화, 의문형 종결어미 ‘~니?’ 역시 서울 사투리의 특징 중 하나다. 서울말을 쓰는 게 좋겠다던 이도 서울 ‘사투리’를 쓰면서 경북 출신에게는 서울말이 표준어랍시고 서울 사투리를 쓰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말과 표준어는 다르다.

# 사투리, 틀린 언어 변방의 언어일까?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해 말 사투리와 관련된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취직을 준비할 때 사투리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참가자 절반 이상인 58.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9.3%가 ‘표준어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투리를 교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15.7%는 ‘면접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답했고 다음 답변은 ‘사투리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이나 이질감을 없앨 수 있어서’ 5%순이었다.
본인이 기업 인사담당자라면 구직자의 사투리가 채용 여부에 영향을 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56.5%가 그렇다고 답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서울에는 ‘사투리 교정’을 해준다는 스피치학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수강생도 제법 많았다.
사투리를 교정하려 스피치 강습을 듣는 수강생은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경기권의 회사에 취업을 원하는 경우 면접에서 불리할 것이라 생각해 사투리를 교정하는 수업을 듣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최근의 사투리 교정을 위한 표준어 강습은 1대 1 맞춤수업으로 1회 10만 원부터 비싼 곳은 6개월 종합과정에 5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사투리는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식 탓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투리는 병이 아니고, 고장난 것, 나쁜 습관도 아니다. 고치거나 교정할 일이 아니다.
언어는 정보적 기능, 정서적 기능, 친교적 기능, 명령적 기능, 미적 기능 등 다섯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친교적 기능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간의 친교 관계를 확인하면서 사회적인 유대를 강화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사투리는 이 친교적 기능에 아주 충실하다. 언어에는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간 친화를 유도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같은 지역 말투를 쓰면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금방 마음을 연다. 그래서 사투리는 ‘사귐의 언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사투리는 고쳐야 할 나쁜 습관 취급을 받고 있다. 사투리를 고치라는 지적을 받은 이도 그 지적을 당연히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중심의 생활과 문화가 사투리를 틀린 언어, 변방의 언어라 인식하도록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말’ 때문에 고성말, 전라도말, 충청도말, 강원도말이 다 사라지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는 아나운서가 아니다. 반드시 표준어만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사람들도 사투리를 쓴다.

# 경상남도라도 지역별로 다른 표현
사투리는 희한하게도 해당 지역 사람들은 귀신같이 지역을 구분해낸다. 예를 들자면 고성사람들은 TV 드라마 속 대구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를 구분해낼 수 있다. 도시나 지역에 따라 단어도 억양도 확연히 다르다.
경상도 사투리는 동남방언이다. 이 중 또다시 지역을 분류해 경남은 남부동남방언, 경상북도는 북부동남방언이다.
고성이 속한 남부 동남방언권에서는 ‘ㅡ’와 ‘ㅓ’를 변별하지 못한다. 실제로 두 모음을 뒤바꿔 발음하면서도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미디어에서는 이를 우스개로 삼기도 한다.
경상도 사람들은 ‘ㅅ’과 ‘ㅆ’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해 경상도 사람 모두가 ‘쌀’을 ‘살’로 발음한다는 오해도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 발음은 낙동강 동쪽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고성사람들은 ‘쌀’을 문제없이 발음할 수 있다.
고성을 비롯한 경남 지역에서는 ‘ㅔ’와 ‘ㅖ’, ‘ㅐ’와 ‘ㅒ’의 발음이 변별되지 않는다. ‘세상’을 ‘셰상’으로 발음해도 그러려니 한다. 동물 ‘개’와 그 아이를 뜻하는 ‘걔’의 발음을 구분하지 않는다.
멍게는 다른 말로 우렁쉥이라 한다. 고성을 비롯해 경남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우렁시이’가 표준어로 인정되면서 표기만 다듬은 것이다. 미더덕도 재첩도 원래는 우리 지역에서 쓰던 사투리였다. 기존의 표준어만으로는 부족한 면에 사투리를 표준어의 영역으로 들이게 됐다. 지금은 누구나 우렁쉥이, 미더덕, 재첩을 표준어로 알고 있다. 표준어만 쓰는 뉴스에서도 쓴다.
언어에는 역사와 문화, 정서가 담겨있다. 언어의 변화 과정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표준어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돼 사투리는 촌스럽고 저급한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색과 역사, 문화를 담은 지역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사투리다운 사투리는 ‘사투리경연대회’에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 사투리도 사투리가 아닌 시대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표준으로 정한 말이다.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하고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 현대, 서울말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서울말이라고 해서 다 표준어가 아니다. 서울말도 고성말처럼 서울 지역에서 서울 토박이들이 쓰는 방언이다. 지금 서울에는 대한민국 팔도를 넘어 전 세계인이 살면서 그들의 말을 쓰고 있다.
요즘은 사투리도 사투리가 아닌 세상이다. 억양만 ‘경상도식’일 뿐, 예부터 써온 고성말을 제대로 사용하고 알아듣는 고성사람조차 찾기 힘들다. 아이들은 경상도 억양은 쓰지만 어휘는 표준어다. “니 오늘 정섬 때 머 뭇노?”가 아니라 “너 오늘 점심 때 뭐 먹었어?”하는 식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경남도내 전역에서 모여든 아이들로 경남 사투리의 집합소였다. 하동에서 온 친구는 “너 왜 그래” 대신 “니 와 그라니”라 했다. 통영 어느 섬 출신 친구는 “내가”를 “나가”로, 그 친구의 고향동네에서 전화통화를 할 때면 “여보세요”가 아니라 “보지다”라고 말한다 했다. 추위를 유독 많이 타던 의령 친구는 10월 말부터 “내복바지”가 아니라 “바찌”를 입는다고 했다. 그 독특한 억양들, 단어들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그 친구들은 더이상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모두 서울에서, 경기도에서 자리잡고 살게 돼 사투리가 아닌 서울말을 쓴다. 그러나 우리끼리는 만나면 사투리의 향연이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서울말을 “숭내내는” 것이라 표현한다. 여고시절 질펀한 사투리로 이야기 나누던 친구들이 서울 산다고 서울말로 대화하면 그 시절 기억이 바래질지도 모른다. 물론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두루 의사소통하기에는 편리하다. 그러나 그 지역의 토착어가 사라지는 것은 역사와 문화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다.
부산시는 지난 2019년 부산의 미래세대에 남겨줄 유산 중 하나로 사투리를 선정하기도 했다.
말에는 정신이 깃들어있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어를 말살시키고자 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조선어학회는 우리 말을 지켜내고자 목숨을 걸고 말모이 즉 우리말사전을 만들려 했다. 말을 지키는 것은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고성사람들에게 고성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고성말, 사투리다. 지역에서 통하는 지역의 언어는 지역민을 단합시킨다.
지금의 장년층 이하 연령대에서는 사투리의 억양은 쓰되 단어는 더이상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쓰이지 않는 언어는 소멸한다. 고성말, 소멸하게 둘 것인가 아니면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이자 친근한 언어로 널리 사용하고 보존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묻고 싶다.
고성서는 고성 포준말이 고성말 아임미꺼? 고성말이 오데가 우때서예? 고성 삼시로 고성말 안 쓰모 머를 쓰낀데예?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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