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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손 끝에 숲과 나무와 집과 모든 설계도면이 들어있는 한옥 도편수 백인현 님을 만나, 그 손에서 세월의 눈금을 읽는 행복한 글쟁이의 수다

백인현(83세, 1939년생)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1일
↑↑ 칠순 기념으로 찍은 '백대목집 사람들' 화사하고 화목하고 화창한 가족이다.
ⓒ 고성신문
# 누굴 주인공으로 뫼실까?
이번 주엔 누구를 주인공으로 뫼실까 하다가 얼마 전에 입수한 ‘고성지킴이 회원 작품전’이란 팜플렛을 보았다. 얼른 집어서 가방에 넣어서는 그 자리를 뜨자마자 펼쳐놓고 한 분 한 분 살폈다. 성함과 작품이 없는, 사진과 경력 몇 줄만 적힌 마지막 페이지의 두 분이 눈에 띄었다. 반가워서 전활 드렸더니 한 분은 전활 안 받으셨고, 한 분은 ‘별로 내세울 게 없으며,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다’며 완곡히 거절하셨다. 그렇지만 물러설 내가 아니다. 영현면으로 차를 몰았다. 고성 출신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구불구불 외진 지역이었다.
“농협 쪽으로 다리만 건너면 바로 우리 집이요”
다리 양 쪽에 식당 간판이 두 개나 있는데 오래 된 집이 맞으리라는 짐작으로 문을 열었다. 자그마한 키, 인정 많은 눈빛의 어르신이 나를 반겨 주셨다. 둥근 탁자가 놓인 홀에 의자가 몇 둘러섰고, 천장의 대들보가 나란하다. 다락방 오르는 계단 근처에 괴목으로 만든 목공예 작품이 반짝인다. 내 눈길이 한참을 머무는 것을 놓치지 않으신다.
“어느 집에 일하러 가서 담장을 허물었더니 가죽나무 뿌리가 나옵디다. 아까워서 주워와서는 껍질을 벗기기만 했는데 저렇게 됩디다.”
“가죽나무는 잘 자라기는 하지만 저런 밑동은 쉽지 않을텐데요?”
“모든 나무들이 어디 쉬운게 있소? 나무를 하찮게 보는 사람들의 눈이 문제지.”
그렇다. 모든 나무들은 귀하고 소중하다. 한 백년을 살기 어려운 사람의 세월에 비해 나무들은 수 백년의 삶을, 그 자리에 붙박이로 이어간다. 사람의 힘이 아니라면 이사가 불가능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자신의 뿌리와 가지로 세월을 엮어낸다.
“도편수님의 삶을 들려주세요.”
“영현면 영부리에서 태어나 아버지 어깨너머로 목수 일을 배워 17살부터 집을 지었소. 77세까지 만 60년 동안 현역으로 일을 했소. 일을 더 하고 싶었으나 무릎에 염증이 생겼고 인공수술 대신 간단한 시술만으로 무릎을 달래가며 살고 있소.”
그 두 문장 속에 83년의 삶이 다 녹아있지만 이젠 그것을 풀어야할 차례다.
“나무가 집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세요. 평생 궁금했던 질문이예요.”
환갑이 된 호기심쟁이 작가는 상체를 기울여 도편수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언뜻 숲에서 이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소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드는 산새 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그 세월에 불어오던 바람이 지금 이 순간, 영현면 봉림리 개울가의 천장 높은 이 곳까지 닿았을까?

↑↑ 도편수님이 손수 지은 솟을대문집과 기와, 유일하게 남은 사진속의 집이다.
ⓒ 고성신문
# 집을 지으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벌목이요. 소나무는 최하 30년 이상 된 생목이어야 하오. 기둥으로 쓸 나무는 최소한 100년 이상 된 소나무를 골라야 하오. 베어 온 소나무는 구덩이를 파고 차곡차곡 쟁여서 묻소. 그 위에 흙을 충분히 덮고 나무와 왕계를 섞어 달집 짓듯이 쌓아야 하오. 거기에 불을 지르면 서서이 열이 내려가서 구덩이 속의 나무가 굽히는거요.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구워야 하오. 그렇게 구운 나무를 그늘로 옮겨 켜는 일을 하오.”
“요즘은 목재공장에서 하겠지만 예전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그런 일들을 하신 게지요?”
“잘 구워서 生木의 나무를 다듬게 되는 것이오. 나무의 크기와 생김새에 따라 먹줄을 튕겨 길이와 넓이를 정하게 된다오.”
“그 다음에는요?”
“나무를 다듬을 때는 그렇게 호들갑을 부리며 재빨리 일 하는게 아니오. 천천히 느릿느릿 눅진눅진하는 거요. 껄껄껄~”
핀잔인 듯 싶으면서도 핀잔이 아닌, 호기로움인 듯 싶으면서도 꼭히 그렇지 않은 연륜이 말씀과 웃음 속에 나뭇결처럼 녹아 있다. 오랜 세월 나무와 호흡하며 다져온 깊이와 내공일까? 문득 솔밭을 휘돌아 대나무숲을 지나온 청정한 바람결을 만난 듯 싶다.
“먹줄을 튕긴 나무를 도끼로 쪼개야 하오. 껍질을 벗기는 일이지. 겉껍질의 송진을 제대로 벗겨낼 만큼의 깊이가 있는데 그런 것은 줄자로 하는게 아니라오. 나무마다 속성이 다르니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는 눈금으로 하는게지. 그것을 도끼로 팬다고도 하는데 대강의 겉껍질 벗기는 일이 끝나면 큰짜구와 작은 짜구로 다듬기를 하오. ‘착착착’ 소리를 내면서 나무속이 드러날 때의 그 맛과 내음을 내 어찌 잊겠소. 그 때 솔향이 제대로 나는게지요.” 도편수님이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신다. 거기, 지난 세월이 주렴으로 걸려 있을까? 베어낸 나무들의 이름이, 그림자가, 나이테가 허공에 걸려있을까?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짜구로 다듬기는 대패질과 거의 비슷한 일이오. 마지막으로 거친 곳을 대패로 살살 문지르면 나무의 껍질이 얇게 벗겨져 나오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소. 겉은 시꺼멓고 둔탁한 껍질로 덮혀있어도 나무의 속살은 참으로 곱소. 내 그걸 잊지 못해서 평생 나무를 다듬고 나무와 함께 하는 삶을 산게 아닌가 싶소.”
나무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 일, 베어와서 열을 쬐고 그늘에 말리고 껍질을 벗기고 대패질을 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나무의 내밀한 속을 만나는 일은 어떤 기쁨으로 다가왔을까?
“다듬은 나무를 금 그어서 치수를 재고 어디에 쓸지를 정하는 일이 집짓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소. 자격증 같은 것은 아무 필요가 없던 시절이었소. 부친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했고 그러다가 집을 짓게 된 것이고, 세월이 흐르니 이런 집 저런 집을 지었고, 이젠 늙고 병들어서 건넛산의 나무들을 쳐다만 보는 인생의 황혼녘이 되었소.”
도편수는 집을 설계하고 자재를 구하고 기와를 얹기까지 모든 일을 감독하고 지시한다. 그러니까 책임을 지고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벽을 바르는 것을 여쭙기로 한다. 예전의 농촌 주택은 3칸짜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살림집은 목수와 인부 몇이 한 달 이내로 다 지었다 한다.
기둥을 세우고 침목을 대고 서까래를 얹는 일련의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벽을 바르는 일이 시작된다.
“3칸 초가집 벽은 짚을 썰어 넣어 새암을 하는데 안 흘러내리는 역할과 마르고 난 뒤에 바람을 막아주는 보온효과가 있소. 벽을 바르는 데는 황토흙이 좋소. 진흙이나 마사토는 찰기가 너무 많거나 너무 약해서 적당하지 않소. 초벽初壁을 바를 때는 맞벽을 해야 일이 잘 되오. 썩은 새(짚)를 체에 걸러 황토흙에 섞은 뒤에 재세를 하는데 이때는 벽이 허물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하오. 더러 횟가루로 백토白土벽을 만들기도 했소. 드물게는 해초海草를 이용하기도 했다오. 미역 비슷하게 생긴 해초를 잘 말려 두드리면 가루가 솜털처럼 떨어지는데 그걸 섞어 바르는게지. 그리고 해초를 삶으면 끈적이는 물이 우러나는데 그것이 풀의 역할을 하게 되어 접착력이 강해지는 것이라오. 말하자면 앙금이 되는 게야.”
도편수님의 말씀은 알 듯 모를 듯 아련하다. 나도 어렸을 때 몇 차례 집 짓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무엇인가를 세우거나 지을 때 흔히들 여성은 ‘재수없다’는 표현으로 내치기 마련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많은 것을 극복할 힘이 있다. 어장집 딸내미였지만 내 넘치는 호기심은 곁눈질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탐독했고 결국은 여리지만 아슴푸레한 기억으로 남겨 둔 것이다. 그 경험들이 모여 지금 글쟁이로 사는 내가 되었고.
“이번엔 기와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기와는 토와가 최고야. 흙을 반죽하여 제대로 구워내는 것을 말하지. 기와 지붕을 제대로 얹기 위해서는 서까래(쇳가래라 칭하셨다)가 중요한게야. 서까래의 사이를 알맞게 연결하는 연목이 필요하지. 다음에는 대(竹)를 엮어서 깐 다음 흙(알매)을 덮는게야. 평평함과 높이를 잘 안배하여 약간 마르면 기와를 얹는데 암기와는 물이 잘 흘러내릴 수 있도록 배쪽이 옴팍하게 파진 부분을 지녔고, 연결 부위에는 수기와를 얹어. 대종기와라고도 하는데 연결부분마다 잘 덮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함은 물론 균형과 지붕의 멋스러움도 나타내지. 지붕을 구성하는 것은 암기와가, 부분마다 중요한 일은 숫기와가 하는 법이야.”
“그 기와를 잘 얹어야 천년을 가는 고찰이 되고 고궁이 되는군요.”
“한번 포개면 한집 두리, 두번 포개면 두집 두리, 세 번 포개면 세집 두리라고 하지. 기와를 여러 번 포갤수록 물이 안 새고 튼튼한 지붕이 되는게야. 어쩌다 맨 위의 기와가 깨어져도 다음 기와가 받쳐주고, 그 다음 기와가 깨어져도 다음이 있으니까 안전한 게지. 한집 두리 지붕과 세집 두리 지붕이 같겠어?”
“그럼 돈이 많이 들겠군요. 돈값에 따라 기둥도 서까래도 지붕도 달라질테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가 봐. 집을 지어도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으면 오래 가고, 가볍고 허술하게 지으면 몇 년 지나 여기저기 수리하고 보수하는데 돈이 더 드는게야.”
도편수님의 말씀으로 나는 짐작하고 예감하며 집 한 채를 다 지었다. 마음으로 짓는 집은 누구에게나 있을텐데, 나는 빌딩이 아닌 기와집 한 채를 아담하고 튼튼하고 야무지게 지었다. 그 집에 드러누워 어린 나의 유년시절을 회람하고 싶다.

↑↑ 예전의 가겟집 홀에 앉아 계신 두 분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 귀하고 소중한 손을 탁자 위에 얹어두셨으니 그 손 오래오래 바라봤으면~
ⓒ 고성신문
# 야문 손끝으로
백인현님은 손끝이 야물다. 신명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흥겨움도 지니신 분이다. 손수 북과 장구를 만드셨단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소와 돼지도 쉽게 잡았다는데 그 가죽을 잘 말렸다가 다림질하여 팽팽하게 당겨 놓은 뒤 마을 공동 소유의 장구와 북을 만드는데 사용하셨단다. 그 뿐이랴, 괭과리를 잘 치는 상쇄가 되어 매구(농악놀이) 칠 때면 앞에서 나선 분이다.
집 잘 짓는 도목수를 거쳐 도편수에 이르신 분, 악기를 직접 만들어 매구를 치신 분, 그런 분의 부인은 어떠실까?
한창 말집(인터뷰 하는 동안)을 짓는 동안, 고운 여성 한 분이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오신다. 크고 맑은 눈동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신다. ‘저 연세에 저런 눈빛이라면 수십 년 전에는 어떤 눈망울로 이웃들을 반겼을까?’ 인사를 드리는 동안 안주인이 살아오신 세월을 가늠한다.
열 일곱에 시집오셔서 시부모님을 뫼시고 4녀 2남을 낳아 기르며 식당을 운영했단다. 다른 재주는 없어도 손맛이 있어 면내에 밥 잘 짓는다고 소문이 자자했으니 손에 물 마를새 없이 살아오신 안주인. 곱고 환한 얼굴은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못지않은 미모이신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며 환히 웃으신다.
안채 거실에는 특별한 사진이 걸려있다. ‘백대목집 사람들’ 여섯의 자녀들과 열 명의 손주들이 모여 도편수님 내외를 둘러싸고 있다. 화목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봄날의 볕을 닮았다. 자녀들과 함께 환히 웃으시는 두 분의 웃음이 선하고 곱고 넉넉하고 훈훈하다. 이를 칭할 다른 말들도 많겠다. 그만큼 화사하고 화목하고 화창한 가족들이다.
이렇게 야문 손으로 세상을 살아오셨으니 그 손 끝에 남은 그림이 이리도 정겹구나.
평생을 집 지어 그 집에 누군가의 삶을 안치해 드렸으니 복 지음이 한량 없으셨구나. 눈으로 설계하여 야문 손끝으로 기둥과 서까래와 기와를 얹은 그 집에 수 많은 가족이 대를 이어 살았을테다. 비 바람을 막아주고, 가족들의 평화와 안온을 지켜주고, 일상의 나날을 굳건히 새겨운 집. 우리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 남을 그 따뜻하고 정겨운 집. 그런 집을 60여 년 지어온 백인현 도편수님의 야문 손을 지긋이 바라본다. 뭉툭하고 상처투성이의 거친 손이지만 참으로 정겹고 따스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 고성신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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