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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구 순례길이 만들어진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6일
ⓒ 고성신문
2월 초, 제정구 선생 제22주기 추모 행사를 위해 지역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대가면 척정리에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
사업회’는 코로나19 전염을 예방하기 위하여 애써 손님을 청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족과 회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추모객이 모여 고인의 뜻을 기렸다.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정구 선생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기일이면 잊지 않고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사실이다. 부모를 여의어도 몇 년이 지나면 이별의 상처가 아무는 것이 세상사이다. 고인에 대한 기억이 아련해지면서 슬픔을 잊고 사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거늘, 제정구 선생은 그런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린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인의 모습과 남긴 발자취는 더욱더 또렷해진다.
선생이 귀향하던 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다. 손발이 얼어붙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고성으로 내려왔다. 고인을 차마 보낼 수 없다며 운구에서 손을 떼지 못하던 분들이 있었고, 땅에 묻히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뒤돌아서서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빈민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선생을 떠나보내고 세월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 줄 알았는데, 지금도 기일 전날, 혹은 새벽잠을 설치며 먼 길을 달려와 고인의 영정 앞에 엎드려 우는 추모객도 있다. 20여 년이라는 시간을 잊고 사는 그들에게 제정구 선생은 어떤 존재였을까? 어쩌면 낳아 길러주신 부모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로 남은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선생이 남긴 정신적 유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제정구 선생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짐 없는 큰 자유’로, 구도자적인 철학이 내포된 말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인데, 평범한 사람은 감히 흉내를 내기 어려운 구도의 길이며, 성현의 가르침이나 행실을 적은 경전에나 나올 만한 말씀이다. 그러기에 선생의 정신은 어려운 말보다 선생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에서 찾아보기가 더 쉽다.
선생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의지가 강하여, 몇 번의 실패 끝에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교련 반대 시위’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제적당하는 일까지 겪었다. 그러던 그가 청계천에서 빈민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껍질을 벗어버렸다. 그동안 추구하던 학벌이나 권력도 모두 던져 버렸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없는 자들과 높이를 같이 했다. 그리고 빈민의 생활을 실천했다.
당시 사람들은 청계천에 있던 사람들을 ‘빈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온전한 빈민은 아니었다. 부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비해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있었지만, 정신적인 것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산 사람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움막이지만, 나름 삶에 희망을 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도리어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으려는 권력자와 부자들이 ‘정신적 빈민’이었다. 선생은 내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자를 나무랐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함께 살자.’라고 외쳤다. 빈부의 차이를 극복하고, 권력의 유무를 떠나서 공존을 요구하고, 스스로 실천한 선생의 정신과 삶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추모의 자리에 모이게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던 선생은, 안타깝게도 품으신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귀향을 했다. 그리고 어릴 때 뛰놀던 뒷산에서 영면했다. 그때만 해도, 고성사람 중에 선생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선생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출셋길을 마다하고 데모하다가 감옥에나 다녀온 철없는 사람, 정부에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빨갱이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제정구’를 모르면 고성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 널리 알려졌다. 선생의 활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평가절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고성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선생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고성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제정구 선생이 고향인 고성에서 올곧은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실천해온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준 행정과 의회, 그리고 고성의 자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군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정구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고성의 자랑으로 역사에 새기고, 그 정신을 널리 알리는 사업에 그동안 행정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선생이 귀향한 이후, 묘소 관리와 생가 보수 유지는 기념사업회가 맡아서 하고 있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사회단체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몇 년 전에 주민들의 반대 여론으로 묘소의 시흥 이전이 중단된 바 있어, 그런 만큼 당연히 행정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정의 대처는 안일하였다. 생가와 묘소가 개인 소유라는 이유로 안내판 하나 덩그러니 세웠을 뿐, 이후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생가와 묘소에 대한 관리와 유지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생가와 묘소의 작은 훼손은 기념사업회 회원들의 재능 기부로 복구‧유지하고 있지만, 심한 훼손은 엄두를 낼 수 없다. 특히 생가는 벽이 헐고 서까래가 내려앉아 곧 기둥과 지붕까지 무너질 형편이다. 다행히 이번 추모 행사를 기점으로 문제점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사에 참여한 행정과 의회 관계자들이 실태를 파악하고 돌아갔고, 유족들이 생가를 고성군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복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따라 행정에서는 빠른 시간 안에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아쉬움 하나를 더 보태자면, 묘소를 방문하는 추모객에 대한 배려도 빈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민주화 운동과 빈민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국 천주교에 큰 영향을 끼친 선생의 유지를 좇아 성직자를 비롯한 천주교도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 선정되어 묘소와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지도만 보고 찾아오는 초행자들에게는 묘소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척곡마을회관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많아 헷갈리기도 하지만, 방심하면 순간적으로 묘소를 지나치게 된다. 결국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물어 다시 오르는 일이 허다하다. 기념사업회에서 묘소 입구에 표식이 될 만한 돌을 세운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마을회관 입구에 제대로 된 안내판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선생을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생가와 묘소는 고성의 얼굴이다. 추모객에게 빈약하거나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생가 보수에 때맞추어, 대가 연꽃 공원에 선생을 기리는 추모관이 4월 말에 개관한다. ‘작은 제정구’라고 불리는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의 도움으로 만들어지는 ‘제정구 커뮤니티 센터’는 주민들에게 공통의 가치와 유대감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지금도 많은 추모객이 순례지처럼 방문하고 있지만, 추모관 개관 이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묘소와 생가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기에 생가와 묘지 관리 문제는 허투루 던져둘 일이 아니다. 당장은 시급한 보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이후 복원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커뮤니티 센터와 함께 묶어 순례길 코스로 만들어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사는 곳과 이념은 다르지만, 선생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추모의 자리에 모였다. 가진 자도 있고 없는 자도 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도 있다.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곧 제정구의 정신은 고성의 정신을 떠나서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통념 되는 박애 정신이라는 것이다. 함께 하자. 생가와 묘소, 그리고 추모관을 잇는 순례길을 걸으며, 선생이 남기신 뜻을 기리고, 고인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채워보자.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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