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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쥐 죽은 듯 살았으니 신축년 자유롭게 살고 싶소

백신 개발의 역사 소에서 시작
순박함과 우직함, 풍요의 상징
벽사와 복의 의미, 재산목록 1호
고성읍 우산리, 동해면 우두포 소 관련 지명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2월 05일
ⓒ 고성신문
2021년은 흰소의 해, 신축년이다.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모르는 감염병이 전세계를 휩쓴 한 해가 뒤안길로 물러났다. 2020년 시작을 축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마다 국경을 닫았고, 장사도 할 수 없었고, 멀리 있는 가족들도 만날 수 없었다. 참으로 지난했던 한 해였고 세계 역사상 어느 해보다 힘들었던 한 해였다. 올해는 이 지리한 코로나19와 전쟁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온 세상이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간절히 바라면 뭐든 이뤄지는 법이다.

# 코로나19 물리칠 백신이 소에서 출발했소
‘백신(vaccine)’ 개발은 사실 소에서 시작됐다. 백신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대한 후천성 면역을 부여하는 의약품’이다. 그 어원은 라틴어 바카(vacca)다.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우두에 노출되면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두균을 접종해 천연두를 피하는 우두법(牛痘法)을 발견했고,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바카’라고 명명했다.
이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r)는 자신이 개발한 광견병 예방법에 제너의 천연두 예방법을 기리며 백신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소에서 시작된 백신은 소아마비나 인플루엔자, 홍역, 파상풍 등 인류가 앓았던 많은 질병을 줄이고 예방했다. 소의 해인 올해,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전처럼 세계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를.

# 소가 있으면 귀신도 못온다 했소
소는 ‘생구(生口)’라 불렸다. 가축이 아닌 식구였다. 큰 재산이기도 해서 1960~70년대, 늦게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소를 팔아 자식들 대학공부를 시켰다. 그래서 우골탑이라는 말도 나왔다.새해 첫 상축일(上丑日)을 소의 생일로 정해 소에게 일도 시키지 않았고, 맨 풀뿐이던 쇠죽에도 콩이나 싸라기 같은 영양가 가득한 것들을 넣어 특식을 줬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소놀이굿을 벌이기도 했다.
소는 아주 강직한 동물이다. 그래서 벽사와 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개업하거나 이사했을 때 소뼈나 코뚜레, 멍에를 문에 걸어두고 액운을 막았다. 코뚜레는 힘센 소를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의 상징, 소뿔은 무엇이나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라 잡귀가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 때문에 소는 이사한 집에 들어갈 때 며칠이 지나야 들였다. 집을 지켜주는 신이 소를 보고 놀라 도망가면 집안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농사와 재산목록 1호가 바로 소였소
신라 지증왕 3년이던 502년, 소를 이용해 논과 밭을 갈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사에는 소 80마리를 두 마리씩 쟁기에 걸어 밭을 가는 의식을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임금들이 오곡의 신 신농과 후직에게 제를 올리고, 직접 쟁기질을 하며 밭을 가는 풍년기원행사인 선농제를 지냈다. 정월초하루 새벽에 소가 울면 그 해는 풍년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을 보면 농경사회에서 소의 의미는 아주 컸다.
소는 예로부터 농사일에 빠지지도, 빠져서도 안 되는 재산목록 1호였다.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인 소는 부와 재산, 힘의 상징이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소는 농사신으로 등장한다.
소는 느리다. 하지만 묵묵한 성미로, 유유자적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가로운 대인(大人), 은자(隱者) 같은 이미지가 있다. 소의 깊고 평화로운 눈망울도 그런 소의 이미지를 더한다. 덕분에 선비들에게 영물로 인식돼 시문과 그림, 고사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다. 소는 풍요를 가져다 주는 동물이라 생겨난 이야기다. 소는 순박함과 근면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 같이 일한다’거나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 ‘소는 믿고 살아도 종은 믿고 못산다’는 말들은 소의 근면성, 성실함, 우직함, 충직함을 가득 담고 있다.

# 역사 속에 숨은 이야기도 재미있소
조선 후기, 경북 구미 문수점에 살던 김기년은 암소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밭에서 일을 하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김기년은 양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버텼지만 당할 재간이 없었다. 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소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충직하기 짝이 없는 소는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배와 허리를 냅다 들이받았다. 호랑이는 혼비백산해 달아나다 말고 죽었다.
그러나 부상이 너무 컸던 김기년은 20일쯤 후 죽음을 맞았다. 죽기 직전 김기년은 가족에게 “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누구의 힘이겠는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소를 팔지 말고, 늙어서 스스로 죽거든 그 고기를 먹지 말며 내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암소는 물린 데도 다친 데도 없었다. 김기년이 누워있을 때는 스스로 논밭일까지 했다. 그런데 주인인 김기년이 죽으니 크게 울부짖고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고 버티다 사흘이 못돼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부사는 돌에 이 충직한 소의 이야기를 새겨 무덤가에 세워줬다. 이것이 의우총이다.
황희 정승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젊은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 누런소와 검은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모습을 봤다. 농부에게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밭에서 나와 귓속말로 “사실은 누런소가 일을 더 잘한다”고 속삭였다. 그 말을 굳이 왜 밭에서 나와 하느냐고 물었더니 농부는 “비록 짐승이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 없으니 누런소가 더 잘한다 하면 검은소가 실망해 더 일을 못하게 될 것 아니냐”는 것이 이유였다. 여기서 나온 말이 불언장단(不言長短)이다. 불언장단은 남의 장점이나 단점 혹은 서로간의 우열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으로 조선초기 음악을 정리한 맹사성은 소박하고 청렴한 성품에다 업무능력까지 뛰어나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좌의정 자리를 지켰다. 그는 가마가 아닌 소를 타고 고향 온양과 한양을 오갔다. 하루는 한양에 갈 일이 있어 길을 나섰는데 정승이 지나갈 길목에 고을 현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감은 비단옷에 가마 대신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옷에 소를 탄 정승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정승이 자신이라 하자 현감은 깜짝 놀라 쫓아오다가 연못에 관인을 떨어뜨렸다. 이 연못을 ‘도장이 빠진 연못’이라 해서 ‘인참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신성한 소는 오곡농업의 신이었소
소는 유교에서는 의(義), 도교에서는 유유자적을 뜻한다. 힌두교에서는 소가 시바신의 탈 것으로, 신성시된다.
불교에서는 흰소를 수행과 깨달음, 사람의 진면목을 뜻하기도 한다. 동시에 석가모니의 성이기도 하다. 석가모니의 씨성(氏性)은 ‘최상(타마)의 소(고)’라는 뜻의 ‘고타마’다.
중국에서는 소가 온갖 고초를 버티고 견디는 인고의 상징이자 오곡농업의 신 ‘신농’이다.
소는 기원전 7세기경 서남아시아, 인도에서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예술작품인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 주인공도 붉은소인 것을 보면 소와 인간의 공생은 역사가 아주 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 전 1~2세기경 김해 조개더미에서 소의 치아가 출토됐다. 고구려 고분 안악3호분 벽화에도 소가 여물을 먹는 외양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우산리, 우두포 지명유래 알고 있었소?
전국에서 소 관련 지명은 731개에 이른다. 고성에도 소에서 따온 마을이름이 더러 있다.
고성읍 우산리(牛山里)는 고성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산 아래 넓게 펼쳐진 기름진 평야 덕에 예부터 풍요로운 마을로 꼽혔다.
우산리는 마을 뒷산인 소슬산이 소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 이름 붙었다. 내우산은 암소, 외우산은 수소라 여겨 내우산을 암소슬, 안우산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내우산 안쪽 부치골에는 절터가 남아있다. 부치골은 부처골이 발음 변화에 따라 바뀐 것으로 보인다. 부치골에는 우방사(牛房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우방사에는 아기부처와 좌상불, 연화관음불을 모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분실되고 절터만 남아있다.
외우산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입촌하면서 소에게 여물통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주민들은 마을 앞에다 1만 평에 이르는 못을 파고 물푸레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못은 매립돼 자동차운전학원이 됐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져 외우산 연못은 찾을 수가 없다.
동해면 우두포(牛頭浦)마을은 마을 서쪽의 작은 반도가 소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 이름 붙었다.

# 뚝심있고 끈질긴 소띠처럼 전진하소
옛날 옛날에 하늘나라의 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기로 했다. 정월 초하루에 천상문에 도착한 순서대로 지위를 받을 수 있었다. 동물들은 기뻐하며 길을 나섰다. 그런데 영리한 쥐가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걷던 소의 등에 올라타고 천상문에 도착해 냉큼 먼저 뛰어내려버린 것이다. 십이지신 중 소는 두 번째가 됐다.
소(丑)는 북북동의 방향, 새벽 1~3시(축시),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이는 소의 발톱이 2개로 갈라져 음(陰)을 상징하고, 성질이 유순하며 참을성이 많아 씨앗이 땅속에서부터 움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새라 그렇다.
소는 말은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을 가졌다고 한다. 우직하고 성실하며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신의가 두텁고 정직하다. 그래서 소띠들은 입이 무겁고 끈질기게 노력하며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전진하며,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소 눈망울이 유난히 순해서일까. 소띠 인물들은 사랑에 약하고 겁이 많고, 보수적이기도 하다. 뚝심있고 추진력이 강해 마음을 먹으면 목표까지 도달하는 것은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다.
소는 재산목록 1위이자 운송수단이고 농사일의 든든한 노동력이었다. 고기는 최고의 식재료에 뿔과 가죽은 고급 공예품이나 생활용품이 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도 소고기와 우유는 물론 약품, 비누의 재료가 되고 가방이나 신발 재료 중 소가죽은 여전히 최고의 소재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단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사람이 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금줄을 걸고 액을 막기도 하는 등 사람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지난 2020년 한 해를 정말 ‘쥐 죽은 듯’ 살아야 했다. 2021년 신축년에는 그 우직하고 강인한 걸음으로 복과 평안을 가득 가져올 흰 소를 기다려보자. 소에서 시작된 백신이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구하고, 예전의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줄 테니.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1년 0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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