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 접안한 거인의 반 평생을 헤아리다 바다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황영주 1946년생(76세) 거류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2월 05일
# 二十代, 바다로 가는 길
사람이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는 부모의 그늘에서 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본격적인 삶이 시작되는 시기는 얼추 잡아도 스무 살로 봐야 하지 않을까. 스무 살 이전의 삶은 자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부모님 뒤를 따라 자박자박 걸어가며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는 예비기간이라고 할 것이다.
•1966년 어느 날
거류면에서 태어난 나는, 농부인 아버지를 따라 산을 오르내리며 산두(밭벼)를 심고 농사일을 거들었다. 삽과 괭이로 땅을 파고, 낫으로 풀을 베고 도끼로 나무를 찍는 일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익히게 되는 노동의 과정이었다. 가난을 등짐처럼 지고 태어난 깡촌의 소년은,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들로 산으로 내달았지만 마음속에는 늘 허기가 졌다.
이웃 마을의 야학에서 밤마다 호롱불의 심지를 돋웠다. 첨보는 꼬부랑 글씨를 따라 쓰고 대문자와 소문자를 익히며 천자문도 배웠다. 영어는 미국이란 나라의 말이고, 한자를 쓰는 중국은 어떤 나라인지를 좀 더 소상히 알게 되었다. 야학도 학비를 내야했고, 학비를 마련하려면 식구들의 굶주림을 저당잡혀야 했으므로 나는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쌌다.
통영에 나가면 철공소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어깨너머로 들었다. 차비만 마련하여 버스를 탔다. 철공소에서 생전 첨보는 기계를 만지고 기름때 닦는 법을 배웠다. 주로 어선의 기계들을 해체하고 손보고 조립하는 일이었다. 시동을 걸면 작동의 원리에 따라 기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동력이 발생하여 수십 톤의 선박이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1968년
멸치잡이(기선권현망) 어업에 대하여 관심이 생겼고 기관장 밑에서 보조로 일을 하게 되었다. 멸치잡이는 예망어업(曳網漁業), 끌그물 어법(漁法)을 사용하므로 여러 척의 배를 필요로 한다.
원래 멸치잡이는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사용하던 어업을 들여왔으므로 주로 일본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어법에 어긋난 수 있으므로 양해를 구한다)
이 시기의 어업방법은 끌고가는 배(후릿배)가 2척, 덴마/전마선(1척~3척), 가공선, 뒷배(수송선)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덴마는 다시 물덴마, 이번덴마, 삼번덴마로 나뉘었다. 어로장이 탑승하고, 어장 끄는 보조 역할, 어망 주머니 끈 매는 역할 등을 했으나 선단마다 사용하는 선박과 부르는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선박이 여러 척인 멸치잡이는 그만큼 필요한 인력도 많았다. 그물을 끌고 당기는 인력이 최우선이었지만 선박을 움직이기 위한 기관사의 역할 또한 무엇보다 중요했고 나는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는 보조 기관사의 일에 열중했다.
2년 쯤 멸치잡이 배를 탔다. 간간짭쪼롬한 해풍을 맞으며 바다로 나가는 생활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만선의 기쁨도 함께 누리고, 멸치 한 마리 구경 못하고 허망하게 그물을 올리는 바닷 가뭄도 경험하며 바다의 너른 품을 확인했다.
•1971년
집으로 돌아와 잠시 아버지 농사일을 거들게 되었다. 천성이 가만있지 못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라 혼자서 독학하며 이런저런 지식을 습득하고 동무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느 날, 허집 군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해 주식의 수확량이 부족하였으므로 국가에서는 정책적으로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벼의 품종 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국제미작연구소와 합작으로 필리핀에서 벼를 개발하였고, 북해도산 벼와 ‘IR667’을 접목시켜 수확량이 월등한 통일벼를 만들었다. 통일벼는 안남미처럼 길쭉하고 생산량은 높았으나 농민들은 맛도 떨어지는 낯선 벼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통일벼 심기를 권장하는 ‘정착지도사’가 필요했고 젊고 의욕적인 나에게 차례가 돌아와 임명장을 받았다.
임시공무원으로 평온하고 무심한 날들이 흘렀다. 결혼을 하였고 아들도 낳았다.
그런데 내 속의 바람은 평범한 일상을 거절하며 자꾸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1973년
한창 원양어선 바람이 불었다. 먼 바다로 나가면 한 밑천 건질 수 있고 어선을 타려면 그래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누비는 큰 배를 타 봐야 한다는 의욕이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
마침 새우잡이 트롤선의 어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용감하게 임시공무원직을 버렸다. 크고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가고 싶은 의욕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기 전 ‘영어회화집’ 1권을 구했다. 우리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법이 표기되었고, 영어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말이 그대로 실려 있는 책이었다. 그래, 이 책 한 권에 모든 것을 걸고 드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거야. 나는 거침이 없었다.
3월 25일 김포공항에서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미국샌프란시스코로 다시 휴스톤을 거쳐 멕시코 국경의 소도시인 버람스빌에 도착했다. 그 곳에 크릴 어업의 전진기지가 있었다. 내가 일할 진성상운(주)은 미국인 소유의 배 5척을 용역하여 선단을 만들었다. 배 한 척은 150톤에서 200톤 정도였고 각 선박당 선장, 기관장, 갑판원 2명, 식사를 담당하는 하장, 이렇게 5명의 선원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5척의 배를 관리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주재기지장, 상무가 동행하게 되었으므로 모두 28명의 식구가 모였다.
트롤선을 인수 받기 전,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했으므로 호텔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선원들은 방안에만 머물기 답답하여 근처 해수욕장에 가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방법이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버스나 자동차에 정원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였지만, 그 곳은 달랐다. 연장자 순으로 차에 타고 보니 내 자리가 없었다.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받고 나만 해수욕장에 남았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혼자 남은 두려움과 싸우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손짓으로 세웠다. 말이 통할리 없었지만 내가 가진 호텔의 열쇠를 보여주었더니, 빠르고 안전하게 호텔에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의 내 행동을 유심히 보던 주재기지장이 나를 비서겸 총무로 곁에 두었다. 나는 처음 약속과는 다른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용역 받은 트롤선에는 레이더와 어탐기 등의 장비가 탑재되어 있었다. 냉동고도 따로 있어 새우가 잡히면 얼음 속에 넣으면 되었다. 많은 일들을 자동으로 처리하였기에 선원 한 사람이 빠진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새로운 업무가 맡겨진 것이었다.
나는 트롤선에서 일 하는 대신 총무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선장을 비롯하여 선원들 대부분이 수산대학이나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재였지만 낯선 나라의 통역은 서툴렀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회화책과 눈짓·코치·몸짓으로 현지인과 대화를 시도했고, 그런 방법이 은연중에 먹혀들었다.
6개월 뒤에 어업기지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가 잡아야 하는 새우가 9월이 되니 조류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머물게 된 곳은 니콰라과의 콘아일랜드였다. 선선하고 따스한 지중해 기후는 생활하기에 참 좋았다. 그 곳에는 냉동 창고도 있었으므로 우리 선단이 잡은 새우의 생산량을 체크하고 부식을 수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어망과 그물을 깁는 실과 노끈 어구 등의 구매도 책임지고 총무업무를 성실히 이행하게 되었다. 편지로 한국의 배추와 무 종자를 보내 달라 하여 씨앗을 심었더니 발아하여 김치도 담가 먹었다. 현지의 고추는 다년생식물이었고 1년 내내 고추가 열렸기에 따 먹고 양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음식문화 중에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우리나라 어선에서는 대형 거북이가 잡히면 신성시하여 막걸리를 먹인 뒤 살려주는데 그 지역에서는 대형거북이를 어선에서 바로 해체하여 식용으로 애용한다는 점이다. 잡힌 거북이를 살과 껍질을 따로 분리하여 불고기와 수육으로 즐겨 먹고 내장은 원주민에게 주기도 하는데, 원주민들이 아주 좋아하는 식료품 중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 소와 돼지를 잡아 살코기와 뼈는 원래의 용도로 사용하고, 내장은 손질하던 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눠서 삶거나 구워먹는 것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통역사로 즐겁게 지내던 중 덜컥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다. 온 몸에 열이 끓어오르고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다.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주사를 맞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대로 머나먼 타국에서 죽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향수병까지 덮쳤다. 나는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 三十代, 어부의 삶, 물비늘을 벗기리
•1975년
뼈만 앙상한 몰골로 고향에 돌아온 나를 보고 이웃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객지가면 고생만 한다. 고마 고향에서 사는기 최고다.’ 주민들의 권유로 마을 이장이 되었다.
•1978년
자녀 교육과 도회지 생활을 동경하여 부산으로 이사했다. 건축업을 시작하여 활발히 움직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했다.
•1984년
피조개붐이 불었다. 간이수하식 굴 채모 사업과 더불어 피조개 종패를 붙였지만 실패했다.
수산업은 기술이나 노력보다 자연재해의 영향을 더 받는다. 홍수가 나면 염도가 부족하여 채묘(採苗)가 어렵고 태풍이 몰아치면 채묘가 떨어지고, 가뭄에도 취약하다. 이런 일련의 자연상태를 어업에서는 ‘운’이라는 낱말로 대신한다. 나의 삼십대는 시련과 실패와 함께 물비늘이 벗겨지는 아픔 속에서 우울하게 흘러갔다.
# 四十代, 내 삶의 물수제비, 아직 끝나지 않은
•1986년
내가 이십대에 시작했던 기선권현망 어장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멸치잡이에도 선진 기술이 도입되고 어획고가 상승했다. 사람들의 식생활도 개선되어 멸치는 인기 어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사무장을 맡았다. 사무장은 선주를 대행하여 선단 운영에 관한 제반 업무를 봐야 한다. 선원을 고용하는 인력관리, 선박을 검사하고 수리하는 선박관리, 건조한 멸치를 기선권현망협동조합을 통해 판매하는 위판업무, 선박 및 선원의 이동과 수급에 관한 제반 업무를 공공기관에 보고하는 관공서 업무, 어선협회, 무선통신에 대한 업무 등은 기본이다. 행정적으로 시.도 수산과 협의, 수협업무, 협동조합 업무까지 맡아 하느라고 눈코뜰새 없는 세월을 보냈다.
이 시기에는 권현망 방식의 어업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2척의 끌배, 1척의 어탐선, 1척의 가공선, 2∼3척의 보조선으로 구성되었고 멸치의 어획-자숙-운반-건조 및 포장-위판의 과정이 일괄 처리되었다.
권현망의 구조는 400여m의 앞날개(오비기)부분과 30여m의 안날개(수비) 및 여자망 그물로 만든 자루그물로 구성하였다. 예전에는 날개 그물에 새끼(짚)그물 또는 폴리에틸렌과 마닐라삼을 섞어서 꼬은 것을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PVD와 PE의 혼합 망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물은 망선 두 척이 서로 잇대어 버릿줄을 매고 그물을 반씩 나누어 싣고 다니다가 어군을 발견하든가 어탐선의 보고에 따라 투망하게 된다. 속도는 멸치어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0.6Kt 이하로 30분~1시간 인망하고 그물을 오무린 후 양망기를 사용하여 날개부터 편다. 어획된 멸치는 보조선에 의하여 가공선으로 운반, 곧 삶아서 말린다. 이 방법도 여러 척의 어선과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80대까지로 본다면, 지금까지 내 이야기는 전반기를 담았다. 스무살까지의 삶이 자력보다는 부모님께 의지한 삶이었다면 본격적인 인생살이는 60여 년을 사는 것이다. 사십대까지의 내 삶은 가장 치열하고 가장 진지하고 가장 격렬했다.
나는 한 순간도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고향에서 땅을 갈고 모내기를 하고 벼베기를 하면서도 내 마음에는 파도가 쳤다. 해조음이 들렸고 수평선으로 나아가는 파도의 몸짓이 보였다.
일하는 순간순간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내 삶에서의 바다는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이지 않았다. 늘 파도가 쳤고 조수간만의 차로 사람들을 끌었다.
바다 속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폭풍의 정점을 건너 안정을 되찾았고 수평선의 평화를 맛보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 삶에도 여러 번의 파랑주의보가 내렸고 태풍이 휘몰아쳤다.
나는 매 순간 바다의 격랑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것이 내 삶이었고 내 존재가치였고 나 ‘황영주’의 증거였다.
젊었을 때 나는 바다와 맞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다가가서 시비를 걸었거나 수산물을 달라고 요청하거나 싸우자로 버티었을 뿐이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세월을 건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뿐이다.
오십대부터 나는 바다에서 뭍으로 내 삶을 옮겨왔다.
열심히 볍씨를 뿌리고 이웃들과 교류하며 농민의 풍요로움을 위해 일했다.
농업에 집중하면서도 많은 일을 했다. 나는 가만히 걷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기회가 된다면 인생 후반기, 농사에 집중하며 겪었던 일들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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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1년 0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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