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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람 사는 이야기

수평선에 띄워보내는 내 노래는 끝이 없어라

남두이 동해면(85세)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25일
↑↑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 정자에 앉아 가을 볕을 쬐고 계시는 모습, 저 바다와 이 햇살을 얼마나 오래 벗하며 살아오셨을지~
ⓒ 고성신문
“뭐하심미꺼예?”
“야이 사람아, 요 와서 고매 쭐구리 좀 뜯어가라모.
단배추도 솎아 가, 장어국에는 남새를 꼭 넣어야 되는기라.”
따끈따끈한 땡볕을 등에 업은 남두이 어르신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늘다. 얇고 순한 음정이 상추잎을 닮았다.
두건을 눌러쓰고 텃밭에 앉아 흙덩이를 깨는 폼이 익숙하다.
흙과 호미와 여린 몸이 한 다발로 묶여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잔주름 가득한 손등 위에 볕살이 쥘부채로 쏟아진다.
노동으로 굽은 허리가 조선낫과 일체가 되고
야윈 몸피가 밭고랑에 꽃으로 환히 피어난다.

“장꺼리 거둬가는 반찬차가 언제 온다고 했어예?”
“오후 3시에 정자 앞에 와. 일주일에 두세 번”
기억력도 좋으시고 총기도 여전하시다.
올해 팔순 다섯, 허리는 굽었어도 몸은 날렵하시다.
남새밭에는 풀 한 포기 없이 깔끔하다.
쪽파가 다섯 이랑, 무, 나물배추, 상추,
김장배추 200포기, 시금치, 심고있는 마늘
헛개와 제피와 오가피는 열매를 익히는 중이다.
배초향(방아)은 보랏빛 꽃대를 피워올려 벌을 부르고
우산처럼 솟은 머위는 물기를 잃고 있다.
그 아래 무당벌레며 딱정벌레며 거미, 사마귀는 몇 마리
메뚜리 여치 노린재는 또 얼마나 생명을 이을까
익충도 해충도 함께 키우는 너른 품이 옴마 맘이지.

“찬거리 팔아 돈 좀 했어예?”
“풋이파리가 뭔 돈이 되노? 일욜에 자식들 오모 항꾸네 무야지.
나눠 줄 사람이 여럿이다. 아직 건강하니 내 손 꼼직이는게지.
방안에 가마이 앉아 있으모 뭐하노?
바깥에 나와서 바람도 쐬고 볕도 쬐고 을매나 좋노.”
대답을 건네면서도 연신 호미질을 하신다.
어찌보면 호미가 어르신의 몸 한 쪽에 달라붙은 혹 같다.
가볍게 갈짓자로 호미를 다루시는 폼이 달인의 경지다.

↑↑ 마음씨 따뜻하고, 인품 넉넉하고, 인물 좋기로 소문난 영감님, 계시는 그 나라에도 실한 가을이 통통하게 여물고 있지요?
ⓒ 고성신문
“살아오신 야기 좀 해 주이소. 할 말 많지예?”
“뭔~~ 내사 고마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할마씨 다 됐구마.
19살 꽃 다운 나이에 앞동네에서 재너머 욜로 시집을 왔제.
신랑은 근동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인물이었어.
사촌오빠와 친구인데 둘이 길을 나서면 훤~~했어.
내 평생 텔레비전 봤지만 두 양반만한 인물이 없더라꼬.”
허리를 펴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눈에 그리움 가득하다.
바다 물빛은 산그늘 깊은 녹빛이 투영되어 짙다.
활섬은 도안바다에 주머니처럼, 단추처럼 달려있고
갈매기 몇 마리는 단골손님인양 정겹다.

“우리 옴마가 남매 보고는 바로 청상과부가 되셨다우.
서른이나 되었을라나? 설움과 외로움을 일로 달래셨구먼.
내도 옴마따라 일을 억척같이 해 낸 기라. 그기 몸에 뱄어.
잠시라도 몸을 편하게 부리모 아픈기라. 일을 할 때 몸이 더 편해.”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요즈음이라면 철이 들었느니 말았느니 할 나이에
자식 둘 딸린 과부가 되셨다는 어르신의 모친을 생각하니
슬픔이 쌀뜨물처럼 허옇게 쏟아져 내린다.

“슬하에 일곱 남매를 두셨다하니 금슬이 좋으셨는가베예?
“아이고, 넘사시럽게 뭔 그런 소릴 하는고?
좋고 나쁘고가 어딨노? 그 때는 고마 그리 사는게지.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나니 할 일이 을매나 많노?
먹성 좋은 그 입에 밥 먹여야지, 옷 꿔매 입혀야지,
공부시켜야지, 돈 들어갈 데가 갯가의 쏙구멍처럼 많은기라.
갯가에 물 빠지면 개발파고, 고동 잡고, 해삼 건져 올렸지.
밤엔 횃불 들고 낙지며 게 잡고, 낮엔 밭에서 푸성귀 뜯고
먹고살기 바빠서 자식들 학교 댕길때 교문 앞에도 한 번 못 갔네.
내가 늙어 생각해본께 그기이 참말로 맘에 걸리데.
학교 갈라믄 뒷산을 두 개나 넘어야 하는 먼 길이었네.
비라도 올라치믄 우산도 없제 우짜노.
비료포대를 잘라 씌워주면 우사스럽다고 학교를 안 갈라 캐.
내 부지갱이 들고 산먼댕이까지 쫓아갔다 아이가.”
어르신은 그 때의 일로 가슴에 멍이들어 지금도 우산을 잘 챙기신단다.
창고에 온갖 색깔의 우산을 열 몇 개나 챙겨두신게 그 상처의 흔적이란다.

“갯가 사람은 부지런하믄 밥은 안 굶었어.
내 젊을 때만 해도 물빠지면 바지락이며 홍합이며 굴이 흔했지.
넘들이 어장에 품삯 받고 일하러 갈 때 나는 혼자 바위를 뒤빗어.
해삼캉 성게캉 소라도 제법 잡았다우.
동신호 첫 배 타고 마산 어판장 가면 내가 잡은 해산물이 비싸게 팔렸어.
마산에서도 도안 앞바다 해산물을 제일로 알아줬지.
그 돈으로 일곱 남매 옷 입히고 학비주고 키웠구먼.”
시골 어른들의 삶이 다들 비슷하게 닮아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신 어르신은 남다른 뭔가가 있었다.

↑↑ 자식들이 졸라서 함께 떠난 가족여행, 그 곳이 어딜지라도 함께라서 좋고, 건강하니 더 바랄 것이 없어라.
ⓒ 고성신문
“우리 큰 아들 인구가 내를 닮았나 벼.
근동에서 젤로 잘 나가는 선장이며 선주여.
남들은 빈 배로 돌아와도 내 아들은 절대로 빈 손으로 안 와.
나갔다하면 만선이고, 잡았다하면 비싸고 좋은 괴기여.
눈에 안 뵈는 물밑도 경험으로다가 물고기가 다니는 길을 읽는다고 하데.
근동의 바다밑은 눈을 감아도 다 보인다나?
참말로 신통방통한 사람 아닌가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 이야기를 할 때 젤루 신이 나신다.
타래에서 풀려나는 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 큰딸과 작은 딸 내외와 영감님 산소에 올라 바다를 보고 있다. 자식들만 옆에 있으면 다 좋으시다.
ⓒ 고성신문
“큰 딸과 둘째 딸은 공무원한테 시집가서 음전하게 살어.
옴마처럼 일만 쌔빠지게 하며 살기 싫다더니 말이 씨가 됐나벼.
셋째 딸은 지 아비처럼 늘씬하고 이삐제. 사업해서 지가 돈 벌고
첫 아들은 건물과 상가와 집과 땅 넉넉히 지닌 선주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형 따라 댕기며 일 하더니 고향으로 돌아왔어.
우리 동네에 2층집을 새로 지었다오.
항꾸네 살지는 못하고 이웃에 살믄서 내를 이리 돌봐준다카네.
내도 따로 사는기 더 좋아, 혼자서 오래 살았더니 이기 더 편타아이가.
자식이 옆에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참 좋지.
셋째 아들은 고성군청 공무원이야. 일 잘 한다꼬 칭찬이 자자하더만
퇴직하고 창원에서 횟집을 차렸어. 장사가 잘 된다카네.
연세같이 싹싹하고 부지런해서 뭐든 잘 할 사람이라네.
넷째는 소방공무원이여, 사람들한테 봉사 마이 한다카더만
그래도 텔레비전에서 불 난거 보모 걱정이 되는기라.
저 불길 속에 드가서 사람을 구할라쿠모 지 몸에도 불이 안 닿을랑가?
얼마나 뜨겁것노?“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식 자랑할때가 제일 행복하다.
자식 이름만 불러줘도 기분이 좋고
누군가 자식 칭찬하면 넙죽 절하고 싶어진다.
자식 얘길 할 때 엄마들의 표정은 꽃밭이 된다.
“우리 며느리들이 얼마나 참하고 알뜰살뜰한지 몰라.
내가 젤루 싫어하는 것이 엄벙덤벙 돈 아까운 줄 모리는 게야.
우리 애들은 근검 절약하고 저축하며 돈 모으고 잘 살아.
그것이 젤루 고마운 일이지.”
큰 아들은 동네의 일등 자산가답게 기부도 곧잘 한다.
동네 행사나 어른들 나들이라도 가시는 날엔
통 크게 선심쓰고 한 턱 쏘는 일에도 부지런하다.
외할매 돌아가실 때까지 이것저것 살피고 챙겨드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한다.
‘눈도 밝고, 손도 크고, 발도 빠르고, 가슴도 넓다!’
이 말을 들으면 어르신 입이 함지박만해지고 웃음이 보름달 닮는다.
세상에 자식 칭찬하는 말보다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을라고.

형제 자매들은 서로의 기둥이다.
어르신 자식들은 우애 깊고 인정 많아 동기간에 사이가 참 좋다.
서로 챙겨주고 사는 형편 물어주고
서로의 대소사에 동참하면서 가족의 이름으로 핏줄의 역사를 쓴다.
첫째와 막내가 20여 년의 차이를 가졌지만
모여서 한데 어울리면 중년의 강변에 서 있는 억새풀처럼
조금씩 흰머리가 돋고 사그락대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게 된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이거나 이순의 강둑에 막 닿는
어르신의 여섯 자녀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끼고 있다.
어머니의 삶을 보아왔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지켜드리고 싶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초가을 볕이 따스하다.
태어나서 자랐고 혼인하고 자식 낳아 키우고 영감 먼저 보내고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떠나지 못한 바닷가,
그 곁의 작은 집 한 채
날마다 귓전엔 파도소리가 쏟아진다.
주말이면 일곱 자녀 중 누구라도 한 명쯤은 찾아와
옴마 사시는 방에 보일러를 켜고 주전부리를 놓고 간다.
손자와 손녀들이 보내는 택배상자가 쌓인다.
용돈하시라고 도톰한 봉투도 자주 놓고 간다.
‘늙은 내사 돈 쓸데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 주노?
한 푼이라도 아껴서 적금 넣고 아아들 키워야제’
손사래를 치면서도 장롱 안에 차곡차곡 챙겨 놓으신다.
대학 간 손주의 학자금을 보태고 싶어서
곧 시집 갈 손녀의 축의금으로 넉넉히 내놓고 싶어서
언젠가 떠나야 할 그 길에 노잣돈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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