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교육해야 하는 대상, 부모는 교육서비스 대상, 교사는 교육 표준 프로그램의 공급자다.
그런데 이 중 ‘능동적’인 대상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수동적이다. 아이는 교육을, 부모는 교육서비스를 ‘받고’, 교사는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수동적 공급자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사람’이 소외된다고 지적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표현한다. 교육의 주체로 직접 교육에 참여해야 할 학부모가 실제 교육에는 배제되고, 서비스의 수혜자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교육 서비스의 당사자이면서도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뜻이다.
고성은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지역이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온 마을이 축하하는 초고령사회다. 전국 어디나 똑같지만 고성처럼 아이가 귀한 지역에서는 육아공동체가 더욱 중요하다. 학부모는 교육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학부모가 교육의 주체가 돼 교육과 보육의 질을 높이고자 한 곳이 있다. 이들이 택한 방식은 공동육아와 협동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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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설립된 해송유아원은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이 공동육아를 위해 만든 어린이집으로, 자연과 일과 육아가 동시에 이뤄지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시작이다.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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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공동육아협동조합 40여 년 역사
지금이야 별다를 것 없는 도심이라지만 당시 서울 난곡 지역은 도시빈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로 서울 도심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먹고 살기 위해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아이들의 보육이 문제였다.
당시 대학생들이 이 문제에 주목했다. 자칫 방치될 수 있는 아이들의 보육을 위해 공동육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78년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이 공동육아의 시작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해송보육학교를 설립하고 교사를 양성했다. 2년 후인 1980년에는 해송유아원을 설립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또다른 도시빈민들의 밀집지역이었던 창신동에 해송아기둥지를 설립해 맞벌이 주민들을 위한 종일보육을 시작했다. 해송아기둥지에서는 지금의 공동육아프로그램에서도 찾을 수 있는 기본틀이 잡혔다. 자연과 일과 놀이가 결합된 교육이었다.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은 1990년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으로 재발족, 이듬해 ‘공동육아연구회’로 개칭했다. 연구회에서는 공동육아의 발판을 다졌다. 계층을 통합하는 보편적인 보육제도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이는 사회적 보육 환경의 기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대안적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학부모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자력으로 공동육아 터전을 만들었다. 동시에 기대와 가치관을 나누고 수많은 의견을 주고 받으며 절충안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1994년 신촌 지역에서 공동육아 협동조합 길잡이 모임이 구성됐다. 같은 해 9월에는 학부모가 주체적으로 나서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이 개원하기에 이른다.
그해 공동육아연구회는 (사)공동육아연구원으로 정식 발족한 데 이어 2001년에는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9년에는 서울 공동육아방과후협동조합 아이들이 자라는 곳 도토리도 생겼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의 운영 주체는 부모다. 교사는 교육 담당자다. 부모와 교사들은 출자를 통해 어린이집 시설 공간을 마련하고 부모는 조합과 어린이집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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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원 위기에서 학부모가 되살려낸 꿈동산아이유치원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서 지난해 3월 개원한 꿈동산아이유치원은 협동조합형 유치원이다. 정식명칭은 꿈동산아이유치원사회적협동조합이다. 꿈동산아이유치원의 시작은 2017년이었다. 설립자가 사망하면서 유치원은 폐원 위기에 처했다. 담당기관에서는 관련 법규를 들며 손을 놓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단단히 뿔났다.
1997년 설립된 꿈동산유치원은 5~7세 아동 260여 명이 다니고 있었다. 이 중 절반 정도는 맞벌이 자녀라 유치원이 사라지면 당장 보육이 큰일이었다. 설립자 사망 이후 유치원은 설립자 변경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건물과 토지는 설립자의 소유가 아니어서 변경인가가 불가능했다. 유치원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었다.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운영 규정 7조에서는 사립유치원을 포함한 초·중·고교 대지와 건물은 설립·경영하는 사람의 소유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사립인 꿈동산유치원은 건물과 대지가 공무원연금공단의 소유였다. 만약 다른 운영자가 온다고 해도 임대 형태의 변경인가가 안 되니 당장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질 상황이었다. 26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들을 버스 태워 다른 동네 유치원에 보내야 할 판이었다.
폐원 유예기간이 3개월 주어졌다. 학부모들에게는 새 유치원을 알아보라는 통보가 전해졌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교사들의 일터를 지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극히 평범한 학부모였던 이들은 법 개정을 위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알아봤다. 폐원 통보 후 학부모들은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서울북부교육지원청 등 관계기관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다. 공무원들도 숱하게 만났다. 공무원들은 “떼쓰지 말라”고 했다.
뒤늦게 서울시교육청이 꿈동산유치원 부지에 공립유치원을 설립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원생 승계도 되지 않았고 교사도 모두 교체된다고 했다. 교사들의 역량이나 급식, 학습, 회계 투명성 등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유치원을 법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모두 그대로 유치원에 있으려면 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사학의 건물·토지는 설립·경영자의 소유여야 한다’는 규정에 ‘다만 설립 주체가 사회적협동조합인 경우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등이 소유한 건물·토지에서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법개정을 위해 뛰면서 협동조합 설립도 준비했다. 2017년 10월 교육부에 협동조합 설립인가 신청서를 냈다. 학부모가 주축이 된 협동조합 어린이집들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서울시교육감을 만나 협동조합이 임대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꼭 찾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드디어는 서울북부교육지원청에서도 꿈동산유치원의 폐원을 1년 유예하고, 법이 개정된다면 폐원 결정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10월 30일. 일부 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 학부모가 주인인 협동조합형 유치원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꿈동산아이유치원은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공동운영하는 조합원은 250명 정도다. 교직원 30여 명도 한 표씩 행사하는 조합원이다. 임대보증금은 5천만 원이다. 이는 입학비 대신 내는 10~30만 원의 출자금으로 해결했다. 출자금은 아이가 졸업할 때 되돌려받는다.
주변 사립 유치원의 교육비는 반일반 기준 40만 원 가량이다. 그러나 꿈동산아이유치원의 교육비는 반일반 기준 20만 원 정도니 절반 수준이다.
조합원들은 누구나 협동조합 운영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운영총회에서는 조합원 모두가 동등하게 유치원 운영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해결되지 않는 쟁점은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아이가 재원하는 동안은 학부모 조합원이지만 졸업한 후에도 지역사회 조합원으로 계속 자격을 유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학부모와 교사가 모두 주인이니 운영이 투명하다는 점이다. 또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로 키우고 있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일뿐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내 유치원이기도 하다. 이는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의식은 많은 것을 바꾼다. 그저 직장이거나 아이를 맡기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출자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유치원이니 연대의식도 생긴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지켜낸 유치원이라는 점은 자부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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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한 학부모,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2018년, 사립유치원 비리가 터졌다. 학부모들은 물론 교육계까지도 사립유치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부터 협동조합 형태의 보육과 교육에 관심이 커졌다. 그해 10월 교육부는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대안으로 언급된 것이 협동조합형 유치원이었다.
협동조합 유치원은 ‘학부모조합원(소비자조합원), 교직원조합원(직원조합원), 후원자조합원, 자원봉사조합원 중 둘 이상의 조합원을 반드시 포함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설립·운영하는 유치원’을 말한다.
지난해 3월 첫 협동조합유치원이 설립된 후 5월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도 조합원 10명의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인가를 받았다.
동탄의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립유치원 비리에 분노했던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설립했다. 11월에는 유아 70명 규모의 유치원 설립인가도 받았다. 조합원들은 수 차례 모임을 갖고, 교육을 받으며 협동조합 유치원을 차근차근 배우고 준비한 끝에 지난 3월 화성시 동탄 목동이음터에서 개원했다.
앞서 소개한 꿈동산아이유치원이 설립자 사망과 관련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의 합심으로 되살려낸 유치원이라는 점과 달리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립유치원의 비리사태를 맞닥뜨린 학부모들이 투명한 운영을 위해 직접 참여해 설립했다.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부 사립유치원의 공공연한 비리와 비싼 원비로 인한 학부모의 부담을 덜었다. 동시에 국공립유치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출자금과 가입비를 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되고, 자녀수와 상관없이 모두 이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 출자금은 400만 원이지만 졸업하면 전액 환급받을 수 있다.
30~100만 원의 가입비는 환급되지 않지만 이 가입비로 유치원이 운영되니 내 아이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면 큰 금액이 아닐 수도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과정과 돌봄에 참여하기 위한 원비는 조합비 3만 원과 시설 사용료 25만 원을 포함해 월 28만 원이니 일반 사립유치원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일부 유치원에서는 간식비나 가방, 원복, 특별활동비 같은 추가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화성시 유치원 알리미에 따르면 화성시내 60여 개 유치원의 기본경비 평균은 4만9천 원 선이다.
그러나 아이가 행복한 사회적 협동조합은 시간당 평균 보육비용이 3만5천 원이니 훨씬 저렴하다. 원장과 교사 선발은 물론 교육과정의 편성, 원아들에게 제공되는 식단 등 유치원 운영 방식은 학부모와 조합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한다.
학부모들이 사립유치원 비리에 분노했던 가장 큰 이유가 그동안 관행처럼 여겼던 회계낭비였다. 이 때문에 설립한 협동조합 유치원이니 회계내역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1년 정도 운영한 후에는 모든 회계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다.
협동조합 유치원은 육아를 개인의 일로 치부하지 않는다. 육아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학부모와 교사가 직접 출자하고 운영하는 만큼 운영상 투명성과 공공성도 커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주체가 돼 유아교육에 참여하면서 교육과 보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 역시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 유치원은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근무환경 변화 등 교사들의 근무환경 또한 개선할 수 있다. 교사들의 처우 개선은 유아 교육 서비스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 지역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도 있으니 이는 곧 마을교육공동체 실현으로 이어진다. 특색교육 역시 용이하다. 이런 전반적 환경의 변화는 바람직한 유치원 모델이 될 수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주인이 되는 보육과 교육 협동조합. 아이가 줄어드는 고성, 교육을 위해 떠나는 고성을 바꿔놓을 기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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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17: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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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15:32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