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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태극기를 품고 살아온 내 삶 후회 없으니 기쁨과 보람을 무궁화 꽃으로 활짝 피우고 싶소!

6.25참전용사 고성군지회장 김순명(1930년 5월생, 91세·고성읍)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0년 07월 17일
↑↑ 지난 세월이 한 뭉치의 구름으로 걸린 거류산을 배경으로 박명숙 여사님과 나란히 서셨다.
ⓒ 고성신문
뵈러 가겠다는 전화를 드렸을 때 카랑카랑한 음성 저 너머로 드러나는 이미지가 있었다.
꼿꼿하고 한결같은, 선량하고 온화한, 동네 어귀의 당산나무 같은 그런 느낌을 지닌 채,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을 때 키가 훤칠한 신사분이 나오셨다.

- 점심은 자셨소? 밥 때가 넘었는데…
- 어르신은 진지 드셨어요? 저는, 근처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차를 권하시는 어르신과 마주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인터뷰어의 본능적인 관찰이다. 태극기와 무궁화가 금색으로 수놓인 하얀색 모자는 정면 벽에 걸려있고, 왼편에는 등산 사진이 즐비하다. 부부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으로 벽면을 온통 장식한 것을 보니 금슬이 좋으신 모양이다. 탁자에는 책이 몇 권, A4 용지가 몇 장, 볼펜과 돋보기가 놓여있다.

- 뭘 쓰시는지요?
- 옛날에 썼던 글씨들을 꺼내 다시 써 본다오. 올해 들어서는 기력이 딸려 그것도 힘이 드는구랴. 기억력, 체력, 시력, 촉각에 청력까지 약해지는걸 느끼니까.
- 아직 정정하신데요?
- 내 나이 아흔이 넘었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만도 감사한 일이요. 더 이상 기억을 잃기 전에 이런저런 정리를 하고 있소. 통장의 비밀번호와 중요한 전화번호, 기록에 남겨야 할 사항들을 하나씩 집사람에게 맡기는 중이요.
- 글씨가 참 좋으세요.
- 이래봬도 글씨 좀 쓴 사람이오. 예전에는 서장, 군수. 도지사께 브리핑을 할 때 그 내용을 손글씨로 모두 썼소. 공공기관마다 차트 글씨 담당이 있었는데 내가 그 일을 했소.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종이에 쓰고 있소. 반평생을 해 오던 일이라 아직도 글씨는 내 몸의 일부 같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느껴지니까.
- 좀 보여주세요.
- 이제는 글씨도 흔들리고 총기도 사라졌으니.

↑↑ 2019년 11월 6.25참전유공자 위안 행사때, 매년 참가자가 줄어들어 섭섭하기 짝이 없으시단다.
ⓒ 고성신문
어르신이 손으로 뭔가를 자꾸 만지작거리신다. 누렇게 바래가는 종이에 봉황무늬가 선명하다.
손은 ‘국가유공자 증서’ 위에 놓였는데 눈길은 먼 곳으로 날아간다. 이제는 희미해져서 지워질 때도 되었으련만 한 밤 자고 나면 떠 오르는 70여 년 전의 기억들이다.
이즈음에는 꿈 속에 종종 그곳이 보인다. 키 크고 날렵한 젊은 군인이 되어 빗발같이 쏟아지던 총알을 뚫고 화살머리 고지로 달려간다. 734고지는 6.25 전쟁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꼽혔다. 원래는 735고지였는데 수많은 포탄에 땅이 파이면서 1미터가 낮아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옆에서 진지를 구축하던 전우가 총알에 맞아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도 그 시체를 쌓아 방호막을 만들어 싸웠다. 밤과 낮으로 점령군이 바뀌던 치열한 전투에서 2사단이 중공군 15군에 맞서 6주 전초진지를 빼앗는 공방전을 벌일때 저격능선 침투조로 싸웠다. 총알이 귓가를 스쳐 가고 포탄 파편이 머리에 박혀도, 적에게 빼앗길 수 없었던 이 강산을 지키려 온 몸으로 싸웠다.
김순명은 거류면 거산리에서 2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여느 시골처럼 농사지어 온 식구가 먹고 살았으므로 가난하고 힘들었다. 집안의 기둥으로 떠받들어지던 형은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둘째에게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열 살 때 이웃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빌려와 어미소로 키우고 다시 송아지를 낳았을 때 어미소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송아지를 차지했다. 꼴을 베어 먹였고 여물을 삶아 먹여 멍에에 달구지를 달았다. 살던 마을과 이웃 마을의 농작물을 걷어 달구지에 싣고 고성장에 내다 팔았다. 뻔한 안면에 뻔한 값이므로 이문이 박했다. 그래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남들이 두 차례 걸을 때 읍내까지 서너 차례 운반했다. 주인공은 달구지를 몰고 갈 소였으므로 더 많이 먹이고 튼튼하면서도 더 가벼운 멍에를 만들었다. 농작물을 더 많이 걷어오려고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지게를 졌다.
달구지로 실어 나르는 운송과 하역일은 주로 봄과 가을에 이루어졌다. 짬짬이 농사를 지었다. 땅을 빌려주는 대가는 비쌌다. 지주에게 상환곡으로 절반을 바쳤다. 이를 악물고 일하여 내 땅에 내 손으로 농사지어 온전히 내 몫으로 취하고 싶었다. 그 당시는 큰 욕심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고, 땅을 무상으로 임대할테니 농사만 지으라고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격세지감이다. 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삶을 지나쳐갔다. 그 낱낱의 세월들을 살아오는 동안에는 구구절절 애잔하고 범위가 감당할 수 없을만치 컸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하룻밤의 꿈길 같다.
스무 살에 혼인을 하고 식구를 먹여 살릴 궁리를 하던 중, 예비병력 확보 차원에서 조직된 호국군으로 차출되었고 다시 청년방위대로 2년을 더 복무했다. 합하여 3년을 마치고 집으로 왔더니 뒤따라 징병 1기 영장이 나왔다. 52년 3월 22일 현역으로 입대했다. 6.25 전쟁의 한 복판을 무자비하게 내달려 2년 7개월의 복무를 마쳤다.
고향인 거류면으로 돌아와 지방공무원으로 일했다. 면사무소 직원으로 8년, 거산부락 이장으로 6년, 글씨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행정서사로 일했다. 남숙현 법무사와 황대열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96년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0년부터 6.25참전용사 고성지회장을 3연속으로 9년 동안 맡았다. 참전용사 권익신장과 명예선양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역 청소년들에게 6.25 바로알기 교육에도 앞장섰다. 그 공으로 도지사 표창, 국가보훈처장 표창,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표창 등을 수상했다. 그 뒤에도 쉬지 않고 활동 중이다.
인근의 산이란 산은 안 다닌 곳이 없다. 짬이 나면 부지런히 산으로 갔다. 잠시도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부지런함은 어린 시절부터 배어 있는 습관이다. 운동도 안 해 본 것이 없다. 날렵하고 부지런한 편이라 어떤 운동도 척척 해 냈다. 그라운드 골프에서 이적하여 지금은 게이트볼을 즐긴다.
이제는 지난 세월이 한 뭉치 구름이 되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거류산 중턱에 걸려있다. 베란다에 나가 산을 바라보면 거기, 인생이 보인다. 걸어왔던 시간들이 저 숲의 나무처럼 서 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숲은 산이 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생명을 다하여 쓰러지면 그 속에 곤충들이 집을 짓고 씨앗이 뿌리를 내려 다시 새생명을 키운다. 쓰러진 나무에게는 상실이지만 숲으로 보면 흔히 일어나는 한 부분일 뿐이다. 숲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는 숲을 이루기 위해 존재했고, 숲은 또 산을 이루는 일부가 될 뿐이다. 김순명의 삶이 가난과 농사와 전쟁과 면서기와 이장과 행정서사를 거쳐 6.25 참전 용사 고성군지회장으로 살아오는 동안 세상은 변화하고 새로운 세대의 삶이 다가오는 것이다.

↑↑ 그라운드 골프 노년부 우승 수상, 평생 운동하고 등산으로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아직도 팔팔하시다.
ⓒ 고성신문
- 지나온 세월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죠?
- 다 지난 일. 내 스스로 온 몸으로 살아왔으니 온전히 내 삶 아니겠소?
- 하고 싶었지만 못다하여 아쉬운 일은요?
-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소. 먹고 사느라 바빠서 꿈도 희망도 모른채 살아왔으니. 더 많이 알고 더 똑똑했으면 고향을 위해 뜻깊은 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 따끈한 차를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 나는 이제 미련도 후회도 없소. 이 나이 되면 그런 것은 내 몫이 아니라오. 다만, 새로운 세대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것, 내 삶을 향기롭게 마감하는 것을 바랄 뿐이지요. 그러함에도 이런 마음은 남소. 우리 세대가 지켜온 이 땅, 자유와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이 땅이 지금처럼 영원하기를 바라오. 6.25 참전 용사로 70여 년을 살아왔으니, 국가유공자로서의 공헌과 희생을 인정받았으니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남고 싶은 것이라오. 나는 태극기와 함께 평생을 살아왔오. 내 죽으면 관에 태극기가 덮이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저승에까지 가지고 가라는 명령 아니것소? 이 대한민국은 영원한 내 조국, 내 사랑의 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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