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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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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학교에 뭘 두고 왔나 싶었죠. 축하한다는 말씀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어요. 사실은 지금도 실감이 좀 안 나긴 해요.”
고성고등학교 이수승 학생은 지난 9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에 최종합격했다. 올해 고성에서는 유일하게 수승 군 혼자 서울대에 합격했다. 고성고는 지난해 유승영 학생에 이어 연이은 경사다.
수승이가 합격소식을 들은 날은 형의 입대영장이 나온 날이었다. 어머니 배경화 씨는 큰아들의 입대가 결정되니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수승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합격했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속깊은 아들이 엄마 기분 풀어주려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 거듭 합격했다 하니 정신이 번쩍 들어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수승이는 워낙 열심히 하는 아이예요. 고3 마지막 기말고사 때는 새벽 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할 정도였으니까요. 두세 시간 자고 공부하긴 예사고, 밤샘공부도 하고, 등교하는 차 안에서 잘 때도 부지기수였죠. 그 결실을 받아들고 보니 대견하다는 말 정도로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대성초등학교와 철성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줄곧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사교육에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선생님들께 배우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후에는 학원도 모두 그만뒀다.
“딱히 정해놓은 시간은 없었어요. 단지 저 나름의 체력과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시간 안배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어요. 밤에도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선생님들께 질문했는데 바로 답을 주실 정도로 우호적인 환경에서 공부했습니다.”
고성고에서는 동아리활동이나 대회 참여 기회는 물론이고 개설되지 않은 과목들 중 원하는 과목이 있다면 개설해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명문대를 진학할 수 있는 일부학생들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학생이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학교에서는 언제든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과목을 배워야하는지,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 공부방법을 다르게 했어요.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었습니다. 해야할 일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겼어요.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시간을 배분하고 점검하면서 조급하지 않게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승이에게도 슬럼프가 닥쳤다. 성적은 자꾸 떨어졌다. 힘들고 막막했다. 추천받은 자기계발서적들을 읽었다.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원래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성격답게 슬럼프도 조용히 이겼다.
그렇다고 마냥 공부만 하는 아이는 아니다. 엄마가 피아노학원을 하는 덕분에 늘 음악을 가까이 접했다. 중학교 적에는 공부보다 작곡과 게임제작에 더 흥미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피아노도 치고, 방과후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한바탕 신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체력을 다지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서로 정보교환까지 할 수 있으니 언제나 즐거웠다.
“교직생활이 34년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수승이 같은 아이는 처음이에요. 수승이는 이해되지 않으면 끝까지 질문하며 끈기있게 노력했어요. 길만 제시하면 잘 따라왔지요. 제가 제일 먼저 수승이의 서울대 합격소식을 들었는데 제가 서울대 간 기분이었습니다. ”
담임 정재훈 교사는 ‘수승이는 대박을 치겠다’고 확신했다. 대학 진학이 끝은 아니지만 수승이 성격과 태도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교사를 따르고 제자를 믿는 이상적인 사제지간이다. 수승이는 담임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따랐고, 정 교사도 애착을 갖고 지도했다. 통학버스가 끊긴 지 한참이 지나서까지 공부하는 수승이를 선생님들이 집까지 데려다주며 공부했다. 총동문회 5개지역에서 기금을 마련해 심화수업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준 청람재를 새벽까지 수승이 혼자 공부할 때가 허다했다. 동문들의 관심 덕분에 수승이 말고도 올해 유독 성적우수학생들이 많이 나왔다.
수승이 아버지 이도현 씨는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된 후론 일 때문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늘 미안했는데 수승이가 정말 커다란 선물을 안겨줘 고마울 따름이라 한다.
“수승이는 고성에서 자라며 고성의 좋은 분들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고성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수승이는 중학교 시절 고성군교육발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영어종합능력평가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넓은 세상을 보고 나니 생각이 훌쩍 자랐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싶었다.
이번에 서울에 가서 선배 유승영 학생을 만났다. 학교에 전공까지 같은 승영이는 두 팔을 벌려 수승이를 안아줬다. 수승이는 그런 선배가 돼 또 자신처럼 낯선 환경에서 시작할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석사는 무조건 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상황을 봐가면서 택할 생각이다. 나중에는 2차원 물질연구원이 돼 한국화학연구원 같은 기관의 연구자가 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고 있어요. 설렙니다. 원래 새로운 걸 즐기는 성격이에요. 대학 진학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저를 만나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거예요. 언젠가는 고성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저는 꼭 그럴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