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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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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폐교가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빈 학교건물은 흉물이 되기 일쑤다. 고성 역시 출생아동이 급감하면서 늘어난 폐교는 운영 중인 학교의 수를 앞지른 지 오래다.고성과 같은 소도시에서는 농산어촌 지역의 폐교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도심의 폐교도 만만치 않다. 도심의 지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젊은 부부 중심의 가족단위 이주가 늘어났다. 거주민이 사라진 도심은 사무실이 들어섰고 도심 공동화는 빠르게 진행됐다.도심의 폐교 건물 활용을 놓고 고민하던 일본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에 나섰다. 주민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다.
# 나무로 아이들을 키우는 장난감 미술관
일본 도쿄 최대 번화가인 신주쿠에서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요츠야. 대로변에서나 도에이 신주쿠선에서 걸어서도 5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골목에 NPO 법인 일본굿토이위원회가 운영하는 장난감 미술관이 위치해있다.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학교다. 정문을 마주하고 오른쪽은 놀이터, 왼쪽은 강당이다. 그러나 내부로 한 발 들어서면 풍겨오는 분위기가 색다르다. 장난감 미술관은 ‘놀이를 통해 직접 물건을 만드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전하자’,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청소년을 돕자’, ‘어른들이 보다 즐겁게 아이들과 놀 수 있도록 지원하자’, ‘시니어가 아이들을 위해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네 가지 목표로 운영된다.이곳의 장난감은 모두 1만5천여 점이나 된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등 일본에서 생산한 목재들로 일본의 장인들이 직접 만든 장난감으로 가득하다.11개 교실은 각기 다른 테마로 이뤄져있다. 다양한 테마를 가진 교실에서는 일본 전통놀이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 장난감을 가족 혹은 친구와 연인끼리 즐길 수 있다. 모든 게임도구는 일본산 목재로 만들어졌다. 장난감 미술관에는 망가진 장난감을 고칠 수 있는 장난감병원까지 완비돼있다.1층 가장 끄트머리의 오모차노모리(おもちゃの森·장난감숲)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2층 구조물이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장난감숲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이 구조물 때문이다. 오모차노모리에는 0세부터 만2세 이하의 유아를 동반한 가족만 입장이 가능하다. 심지어 가족이라고 해도 만2세가 넘는 형제는 입장이 불가능하다.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다.바닥과 벽, 장난감까지 모두 삼나무로 제작된 숲 구조물을 빙 둘러 낚시놀이, 곤충잡기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난감들이 전시돼있다. 전시뿐 아니라 직접 체험까지 가능하다. 구조물 너머에는 아이들이 헤엄치다시피 하는 볼풀장이다. 일본 장인들이 일본산 삼나무로 깎은 공으로 가득하다.이 교실 자체가 목육(木育)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무로 아이들을 키우자’는 의미의 목육은 장난감 미술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념이다.장난감 미술관의 가장 큰 연례 행사는 굿토이어워즈다. 나무로 만든 창의적 장난감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향후 실제 장난감 미술관에서 전시하며 체험할 수 있다.바바 기요시 사무국장은 “나무 장난감은 알러지 등의 문제도 없고, 열전도율이 낮아 체온을 빼앗기지 않으므로 아이들이 장시간 가지고 놀아도 집중할 수 있다”면서 “목재 장난감은 특성상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방식으로 가지고 놀 수 있어 특히 아이들의 창의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비싼 가격이지만 나무 장난감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100년 된 폐교가 가족단위 문화공간으로
현재 관장인 치히로 타다 관장의 부친이 1984년 문을 연 장난감미술관은 처음에는 나가노현의 사무실 한쪽을 사용하는 전시장이었다. 타다 관장의 부친은 미술교육전문가로, 아이들이 인생에서 처음 접하는 예술이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전 세계 각국에서 장난감을 수집했고 이를 전시한 것이 장난감 미술관의 출발이었다.장난감 미술관은 200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2007년 폐교된 신주쿠 구립 요츠야 제4소학교 건물이다. 요츠야 제4소학교는 1907년 개교했다. 100년간 지속돼온 학교는 2007년 도심공동화로 인해 폐교됐다. 주민들은 학교 건물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공익시설로 활용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협의회를 구성해가며 건물의 활용방안을 찾아 나섰다. 주민들은 장난감 미술관의 이전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장난감 박물관의 평일 관람객은 평균 200~300명, 주말에는 400~500명이며 휴가철이면 하루 관람객이 800명을 훌쩍 넘는다. 연간 관람객을 따지면 12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신주쿠 구민이 20%다. 도쿄는 물론 수도권과 지방에서도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장난감 미술관을 찾는다. 단체방문객은 20% 이하다. 대부분이 가족 단위 방문객이다. 재방문율이 전체의 20%다.
# 주민들의 참여로 문을 연 지역문화시설
장소가 확보됐다고 해도 학교 건물을 전시와 체험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으로 개조하는 데는 막대한 경비가 소요된다. 이후 운영하면서도 경비 소요는 계속해 미술관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했다.타다 관장은 기부의 새로운 형태인 ‘크라우드 펀드’를 생각해냈다. 1만 엔을 하나의 계좌로, 이 금액 이상 기부한 후원자에게는 ‘한 계좌 관장’이라는 명예관장 호칭을 붙였다. 5천만 엔이 모이면서 크라우드 펀딩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처음에는 장난감 미술관에 회의적이었던 주변 은행들이 기부금 명부를 보고 대출을 승인했다. 한 계좌 관장들의 이름은 미술관 내 벽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대부분의 NPO는 모금이나 펀드레이징보다는 행정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운영한다. 다시 말해 보조금의 지원 기간 종료나 집행 지연, 규정 변경 등으로 운영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의 주도로 지자체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해 운영되는 장난감 미술관은 이러한 면에서 자유롭다.장난감 미술관이 지금처럼 자리잡게 된 이면에는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다. 실은 개관 당시 미술관이 홍보에까지 자금을 투입할 여력은 되지 않았다. 신주쿠가 번화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구청의 재정은 넉넉하지 않아 충분한 홍보비용을 지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미술관은 협조적이었던 신주쿠구청과 문화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장난감 미술관의 홍보물을 신주쿠문화위원회가 지역 내 학교에 배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별도의 홍보비 없이 1만 명에게 홍보가 가능했다.장난감 미술관은 신주쿠구청과 건물임대계약을 통해 전기요금을 포함 1천만 엔(약 1억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 같은 지역 내 비슷한 규모 민간건물의 1년 임대료가 1억5천만 엔 정도라는 점을 비교하면 저렴하다. 그러나 입장료, 기념품 판매수익 등으로 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 가능하고, 임대료도 내고 있기 때문에 미술관의 활동은 자유롭다.
# 주민과 지역 위해 환원하는 미술관
신주쿠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장난감 미술관에서는 신주쿠와 자매결연을 맺은 나가노현 이나시 목재업체들이 만든 나무 장난감을 선물한다. ‘나무를 사용해 아이를 키우자’는 뜻을 담은 우드 스타트 프로젝트(Wood Start Project)다. 장난감 미술관에서는 우드 스타트에 참여하는 목공업자들을 만나 더욱 좋은 장난감을 만들 수 있도록 지도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질 좋은 장난감 선물 혜택을, 임업과 목공업계에는 성장하고 재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2011년 4월 동북 대지진 당시에는 피해지역에 장난감을 전달하기도 했다. 피해지역에는 장난감 미술관 관련자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처음엔 기부금을 전달하려 했으나 돈을 넘어 장난감 미술관만이 가능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미술관에서는 전 세계의 장난감회사들에 연락을 돌려 1만5천 개의 장난감을 수집했다. 모인 장난감은 동북지역의 장난감 전문가와 협력해 굿토이어워즈에서 수상한 장난감만 선별했다. 피해지역 내 150여 곳에 100개씩 전달했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동장난감을 기증한 곳 중 한 곳은 1천 여명의 피난민이 생활하는 임시구호소였다. 많은 아이들이 블록으로 집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 어른들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재해 지원단계는 생명 안전과 식량확보가 우선인 응급구호,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복구기, 일자리를 만들고 자립하는 3단계로 나눠진다. 장난감 미술관의 지원이 시작된 시기는 1단계와 2단계의 경계로, 어른들에게는 생활기반의 복구가 우선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를 통한 심리적 안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때맞춰 장난감 미술관의 지원이 시작됐다.
# 주민들의 뜻을 지킨 시민립 미술관
장난감 미술관의 유급 스태프 15명 중 8명이 상근직원, 7명은 파트타임 직원이다. 주민들 중 일부가 교육과정을 이수해 ‘장난감 학예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그들은 일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240여 명의 학예원들은 교대로 출근해 장난감놀이를 지도한다. 평일 10명, 주말 15명 정도가 활동 중이다. 연인원으로 계산하면 4천여 명의 시민들이 봉사한다.바바 기요시 사무국장은 “만약 자원봉사가 아닌 파트타임 인력을 고용했다면 연간 3천만 엔의 비용이 지속적으로 소요됐겠지만 주민들 덕분에 이러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면서 “장난감 미술관은 사라질 뻔한 폐교를 되살리고 운영하기까지 시민들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시민립(市民立) 미술관인 셈”이라고 말했다.또한 “이 건물을 공익시설인 장난감박물관으로 운영하는 것은 요츠야 제4소학교가 정부의 자금이 아니라 주민들의 기부금으로 1907년 설립된 학교이므로 더욱 의미있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장난감 미술관은 당시 주민들의 뜻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재 주민들의 뜻 또한 존중하며 운영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도심 속 폐교로 흉물이 될 수도 있었던 요츠야 제4초등학교는 주민들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또한 주민들의 노력과 협조로 운영되는 성공적인 복합문화시설의 모델이다. 이러한 지원과 사회환원은 인적, 물적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반의 확보는 민과 관의 협조체제 구축 으로 더욱 확실하게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30개가 넘는 고성군의 폐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민과 관의 협조가 시급하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