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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길을 찾아서 1010번 지방도(고성 동해면~하이면)-③

월트 디즈니랜드 같은 ‘판타지아’연상
김열규(계명대석좌교수) 기자 / 입력 : 2006년 10월 24일

동해면~하일~하이 잇는 1010호선 드라이브코스


천하의 명당 수두룩 변화무쌍한 형상 감탄사 절로


바다풍경 보면 화장하고 치장하며 변신술 부려


 




 


미켈란젤로 저리 가라는 자연 석물들


그러기에 1010의 가슴팍에는 국토방위와 수산업 관리를 겸해 도맡아낸 자에게 수여할 훈장을 수백, 수천 개를 달아 주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기에 1010은 청사(靑史)에 빛날 길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태환경을 비롯한 몇 가지 잣대를 갖다 댈 때1010은 어느 하나 뒷짐 지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로라하고 활개치고 나설 것이다. 1010은 고루 그 많은 기준에 걸쳐 역시 장땡이다.


 


고성 바다를 모르면 남해 바다를 말하지 말라! 남해 바다를 보지 않고서 한국의 자연과 바다를 일컫지 말라! 1010을 달려보지 않고는 고성 바다며 남해 바다를 입에 올리지 말라!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1010을 걸어보지 않고, 달려 보지 않고 한국의 자연과 바다를 아는 척 하지 마라!’ 경이(驚異)에 눈뜨는 그만큼, 길은 열린다. 세상도 따라 열린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묵은 껍질을 벗는다. 놀라움이 없다면 삶은, 세상은 어떻게 될까? 시효가 지난 공문서의 찌든 봉투와 닮은꼴이 될 것이 뻔하다. 경탄과 구함, 그 둘이 빠지면 우리 인생은, 우리 사는 세상은 이가 몽땅 빠진 입이나 잇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듯 길에서 그 둘이 빠지면 길이 자격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을 1010은 일러준다.


 


그 중에서도 솔비포의 깊은 안자락, 세상에서 영영 돌아앉은 몽돌 밭은 정말이지 천지간의 가장 큰 경탄이고 또 감탄이다. 솔비포 지나 갯벌따라, 개울 끼고 논둑 사이를 누비며 반 마장쯤 가서 겨우 다다르는 그 언덕에 서는 것만으로도 경탄이 작열(灼熱)한다.


 


사량도를 마주 보는 그 통쾌한 전망! 굽이지면서 돌아가는 물깃의 아기자기한 정경! 보는 이는 다만 놀랄 뿐이다. ‘아!' 소리 한 마디 외에는 아무 말도 못한다.


 


한데 나지막한 언덕을 내려서면 또 다른 신천지다. 눈에 안 보이는 베일로 단단히 덮어 가린 비경이다. 대자연의 경이가 외경(畏敬)스럽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무슨 비전인가 싶어진다. 마음 여미고 고개 깊이깊이 숙이게 된다. 정경과 전망만은 아니다.


 


또 다른, 더 가슴 설레는 경탄과 놀라움은 거기, 그들 바위 때문이고 돌 때문이다.


 


언덕 기슭에 줄지어 선 석벽은 보는 이에게 더 크게 더 활짝 눈을 뜨라고 속삭인다. 마음의 눈을 뜨라고 재촉한다. 비로소 개안(開眼)하듯, 눈동자 열라고 권한다.


 


천하의 명당, 명소로 가자


세상에 태어난 보람, 자연을 보는 복됨이 비로소 간절해지는 눈 뜸, 바로 그 개안을 여기서 하게 된다.


 


그러면서 ‘개안’이야말로 진실에 눈뜨고 깨달음으로 마음 열리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경이를 반가운 손님 맞듯 하면, 우리는 누구나 심청의 아버지가 된다. 말 없을 돌이, 그리고 침묵의 석물이 그런다니 더 놀라운 일이다. 바위 덩치가, 돌멩이가, 돌바닥이 그렇게 한다니 기가 찰 일이다.


 


김수동의 거짓말 같다. 더러는 우뚝 서 있다. 더러는 웅크리고 있다. 아니면 굼틀대고 있다.


 


용솟음하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은 파도와 희롱하면서 우쭐대기도 한다. 변화무쌍이다. 어마어마한 규에 걸친, 바위 조형의 어마어마한 미술관이다. 몽돌 밭의 해안선, 근 한 마장이 온통 석물 전시장이다. 바위 조형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널따란 바위 바닥의 기하학인 ‘선문(線紋)의 만다라’는 또 어떻고! 그 점묘(點描)의 묘()는 또한 오죽하고!


 


도형의 아름다움, 선화(線畵)의 매력, 점찍기의 매혹(魅惑)이 바위 너덜과 납작 바위에 얼룩지고 아로새겨져 있다.


 


몬드리안의 선묘(線描)! 대원군의 난초의 선! 한석봉의 필치! ‘포인트링’이라 일컫기도 하는 미국 현대 화가들의 점 박기! 모딜리아니가 그려낸 여인의 길둥그런 목의 선! 남녀의 에로스를 서로 붙안고는 하늘을 나는 남녀의 육신 동선(動線)으로 그려낸 샤갈의 화폭! 언제 그들이 여기 와서 작업하는 행운을 누린 것일까?


 


그뿐만 아니다. 출렁이는 파도, 바람 따라 잔 나뭇가지들이 연출하는 설렘, 창공에 뜬 학의 날갯짓! 실구름의 물살! 단순한 추상이 있는 바로 곁에는 다양한 구상 도형이 새겨져 있다.


 


삼각, 사각의 장난치는 듯한 얼룩무늬 곁에는 원과 나선으로 얽히고 설킨 복합문양들이 회돌이를 치고 있다.


 


바람이, 그리고 물살이 무슨 재주로 이 돌과 바위의 화판에 선의 무늬를 각인한 것일까? 나는 이 위대한 놀라움을 오랜 친구 찾듯 한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게 새로운 경탄이 되고는 한다.


 


물때 따라, 밀고 나고 오르고 내리는 조수 따라 그들은 변모한다. 그들은 자주 화장과 치장을 바꾼다. 그것이 심해지면 변신술(變身術)을 부리고 둔갑을 내기도 한다. 파도가 몰고 오는 습도에 의해 음영을 달린다.


 


농담(濃淡)도 물론 달라진다. 이끼가 끼고 거기 햇살이 얼룩대면 조형은 문득 색동옷을 입기도 한다.


 


해돋이에서는 기지개를 켜다가도 황혼이 깃들면 명상의 무게를 더한다.


그에 장단 맞추어 바람이 음악처럼 장조에서 단조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자니 이곳 경탄의 석상들은 또 석문(石紋)은 필경 동영상(動影像)을 겸한다. 누구든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품인<판타지아>를 연상할 것이다. 선과 점과 형태가, 그리고 색상이 서로 물고는 수시로 바뀌는, 그 일대 변괴(變怪)와 환상의 영상이 바위로 조형되고 돌의 무늬로 구현되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동화리 나의 ‘천연석물미술관’에 다녀올 적마다 화사한 꿈에서 갓 깨어난 열락을 누리고는 한다. 그리고는 ‘꿈이여 다시 한 번!. 고쳐 꿈을 볼 날을 1010에 대고는 빌고 또 빈다.                                     <>

김열규(계명대석좌교수) 기자 / 입력 : 2006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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