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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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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병들면 사람도 병든다
올 여름은 유난스럽게 더웠다. 세상을 모두 태울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연일 지속되었다. 하긴 이런 이상기후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열대 지방에 눈이 내리는 등 기이한 현상들이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학자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런 재앙의 원인을 환경오염 탓으로 돌린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하루가 무섭게 환경이 나빠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어제 마신 물이 오늘은 더 불결해졌고, 어제 들이킨 공기가 오늘은 더 나빠졌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목마르면 논두렁의 물을 그냥 마셨다. 우리나라 어디서든 밤하늘에서 총총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돈 주고 물을 사서 마시거나 캔에 공기를 넣어 다니며 들이마실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흐르는 물을 그냥 마셨지만 생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미세먼지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물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물 뿐만 아니라 공기도 사서 마시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나빠진 것은 환경뿐만 아니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는 만큼, 흙 위로 시멘트 포장이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물론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몰랐던 병도 있겠지만, 이전에는 귀했던 병이 지금은 아주 흔해진 것도 있고 없었던 병이 생겨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인병이다. 성인병은 나이가 들면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 구분도 없다. 젊은 사람들도 흔하게 걸린다. 잘못된 식생활이 주 원인이지만 천식이나 기관지염은 오염된 환경에서 온다. 그 외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질병 역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라.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다. 편리를 위해 만든 생활용품에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이 발견되고 있다. 옷에서 피부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나오고, 건축 자재에서는 치명적인 유독성 물질이 발견된다. 그리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제대로 있는가? 살충제와 농약으로 뒤범벅이 된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오른다. 인간의 기본 욕구라는 의식주(衣食住)를 충족함에 어디 하나 안전한 것이 없다. 이렇게 이제는 주변 모든 것이 병을 가져다준다. 물을 마셔 병이 생기고 공기를 들이켜서 병이 생긴다. 각종 식재료들은 오염되어 먹는 것이 곧 병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이 파괴되면서 생긴 질병들이다. 자연의 병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의 병도 많아진다.
# 숲 속에서 길을 찾다
산을 오르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들떠 있는 모습이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모습이다. 그래. 여기는 교실이 아닌 야외 학습장이다. 아이들은 일찍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이곳 통영 미륵산 중턱에 있는 나폴리농원으로 왔다. 오늘 하루 동안 아이들은 숲을 공부하고 숲에서 많은 생명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65%가 산으로 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산이 많은 나라이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공익적 가치는 아주 크다. 물 자원을 관리하는 수원 함량 기능과 공기를 맑게 하는 대기정화 기능이 가장 크며, 그 외에도 산림휴양 기능과 야생동물 보호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능이 가능한 것은 산을 덮고 있는 숲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이들은 숲의 기능 중에서 산림이 가진 치유의 기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연중 환경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물을 찾아 고성천과 간사지를 누비고, 맑은 공기를 찾아 갈모봉과 오두산을 오르고, 도자기 가마를 찾아 흙으로 토기를 빚으며 자연의 고마움을 학습해 왔다. 아이들은 환경체험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웠다. 여태껏 우리 아이들의 환경 교육은 환경보존 위주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학습이라기보다는 휴식과 치유의 분위기가 더 진하다.환경의 오염 측도를 재는 도구로 우리는 물, 공기, 흙과 함께 숲을 꼽는다. 그런데 다른 세 가지는 무생물인데 비해 유일하게 숲만은 생명체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물과 공기와 흙은 각각 다른 개체이지만 숲은 무생물인 물과 공기와 흙이 모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중 하나만이라도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나무가 살지 못하고 숲을 이루지 못한다. 이처럼 숲은 세 가지 물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중 숲이 특이한 것은 자신이 나무라는 생명체의 군락이면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숲은 단순히 나무만의 군락이 아니다. 숲은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말한다. 우선 1차 생산자인 나무와 풀, 그리고 이들을 먹이로 하는 각종 곤충을 비롯한 새나 짐승들과, 주검을 처리하는 미생물, 버섯, 곰팡이, 지렁이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순환하고 조화를 이루며 서로 공생하고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생태계 전체가 숲이라는 곳이다. 그래서 ‘숲은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학습장’이라는 강사의 말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나무와 풀, 꽃들을 만날 수 있는 숲들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살아가는 것도 각박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숲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숲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숲이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강사는 농원의 주인이며 숲해설가인 길덕한 선생님이다. 길 선생님은 일찍부터 환경을 걱정하고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서 미륵산 인근에 나무를 심고 가꾸신 분으로 숲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가이시다. 해박한 지식에 유머까지 더하니 아이들은 금방 선생님이 들려주는 숲 이야기에 푹 빠진다.“맑은 공기를 마시며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 속을 맨발로 걷는 것이 너무 좋아요.”숲은 아이들의 느슨해진 심장을 더욱 힘차게 뛰게 한다. 청진기로 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돋보기로 이끼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본다. 나무에 달린 작은 혹 하나에서 나무와 곤충들의 공존의 세상을 배운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따라나선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숲 속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예사로 봐 왔던 나무 열매 하나도 새삼 다시 보게 되고, 벌레들이 남기고 간 허물을 조심스레 만져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교육이고 어른들에게는 어린 날의 아련한 추억이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은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 환경을 팝니다
고성은 인근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된 지역이다. 통영은 관광업으로, 창원은 제조업으로, 사천은 항공 산업으로 경제적 부를 누리는데 비해 고성은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사실이기도 하다. 그나마 조선업으로 일시 개발의 바람이 불었지만 세계적 불황을 맞아 ‘조선 도시 고성’의 꿈이 여물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한때 10만 명이 넘는 인구로 시 승격의 문턱을 밟았던 고성이 이제는 5만 안팎을 오르내리며 도시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발에 관심이 많다. 공장을 유치하여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여기저기를 뜯어고쳐 사람들을 끌어 모아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역발상(逆發想)적인 생각은 어떨까?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 더 예뻐 보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이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어쩌면 개발 경쟁에서 뒤쳐진 고성의 오염되지 않은 물과 흙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팍팍한 삶과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고성 전체가 휴식과 치유의 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가? 아이들과 숲 체험을 하는 내내, 왜 우리가 버스를 타고 이웃동네까지 와야만 하는가를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성에는 환경을 판매하는 가게가 없기 때문이다.
나폴리 농원은 환경을 복원하는 곳이면서 환경을 판매하는 가게이다. 나폴리 농원은 환경이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고성에는 이런 곳이 없다. 나폴리농원이 작은 공간에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환경을 팔듯이 우리 고성도 그런 상품을 개발하면 어떨까? 고성은 환경이 잘 보존된 곳이다. 간사지의 갈대숲, 갈모봉의 편백나무 숲, 만화방초의 수국 군락지, 오두산의 치유 숲 등 상품이 될 수 있는 자원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보태어 바다를 볼 수 있는 동해면 일주로나 신월리 산책길은 도시 사람들이 오면 감탄을 터뜨리는 곳이다.
고성은 주거지로는 최고의 가치를 가진 곳이다. 깨끗한 물과 공기와 흙이 있고, 주거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도시가 주변에 있다. 거기에 편리해진 교통수단으로 통근이 가능한 거리이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일과 함께 도심에 찌든 심신을 달래기에 좋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고성을 찾지 않는 이유는 이런 고성의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판매를 시도하는 상인이 없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손에는 농원에서 직접 만든 작은 화분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꽃나무에 물을 주며 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길 것이다. 문득 이 나무들이 잘 자라서 고성의 미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할 때다. 개발이 늦다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보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고성 전체를 환경 상품으로 판매해 보면 어떨까? 잘만 된다면 역사의 흐름에서 뒤쳐졌다는 고성의 인식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손 대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고소득의 사업이기도 하다. 고성의 미래는 환경에 맡겨봄은 어떨까 싶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