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2 23:57: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인터뷰

변화와 도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성공을 예약하다

㈜디케이앤디 최민석 사장
하일면 출신, 재경고성향우회 부회장
1998년 ㈜동광무역으로 사업 시작
세계 톱 10의 인조피혁기업으로 성장
기업의 수익을 고향과 사회에 환원 계획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02일
↑↑ 하일면 출신 최민석 사장이 이끄는 (주)디케이앤디는 1998년 무역회사로 개업한 후 2005년 법인으로 전환, 인조피혁용 부직포 생산업체 세계 톱 10으로 꼽히는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 (주)고성신문사
↑↑ ㈜디케이앤디 최민석 사장
ⓒ (주)고성신문사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것 같은 신발들. 그러나 이 갈고리 모양과 세 줄짜리 신발의 인조피혁 원재료가 사실은 한국 기업이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이 ㈜디케이앤디(DK&D)를 이끄는 사람은 고성 출신 최민석 사장이다.


# 기업의 핵심은 사람이다
“기업은 조직이지만 이 조직의 핵심은 사실상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한 사람의 인재로 인해 회사가 큰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듯 부적절한 한 직원의 잘못된 처신은 자칫 회사에 큰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력을 충원하고 배치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케이앤디는 경기도 안산에 본사를 두고 중국 상해와 베트남에 각각 현지법인을 보유, 총 17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개별 기준 전사 매출 총액은 약 800억 원 정도이며, 이러한 성장을 기반으로 내년 4월 경에 IPO신청을 계획하는 견실한 기업이다. 특히 인조피혁용 부직포 생산업체로는 세계 톱 10에도 꼽힌다.
㈜디케이앤디는 1998년 동광무역이라는 이름의 개인무역회사로 문을 연 이후 2005년 법인으로 전환해 신발용 인조피혁의 원부자재인 부직포, 관련 화학제품의 판매를 통해 성장을 거듭해왔다. ‘변화와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인조피혁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2016년 1월, ㈜동광화성에서 ㈜디케이앤디로 사명을 바꾸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법인으로 전환한 지 불과 5년 만인 2010년에는 중국 상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세계는 빠르게 변했다. Going Concern 그러니까 기업들이 대전제로 삼는 ‘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새로운 요구와 다변화되는 시장 환경에서 누구보다 앞서나가야 했다.또한 세계시장의 공략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인조피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유치해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베트남 부직포 생산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국내 인조피혁기업을 인수합병해 무역업체에서 제조업체로 탈바꿈했다. 2014년 인수합병한 기업은 공교롭게도 화학을 전공한 최민석 사장이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하게 된 두림테크였다.
“첫 직장이 인조피혁 생산 업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당 업종에 대한 경력과 노하우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기업이든 그렇겠지만 초기에는 인력도 자금도 고객도 모두 부족했어요. 때로는 고객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출 수 없어 몸도 마음도 지쳐 때로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단순한 기업이 아닌 삶의 기반으로
돌이켜보면 꿈 같은 시간이다. 초창기에는 밤낮이 따로 없었다. 중소기업이니 직원들로 인한 고충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정된 자금으로는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제한적이었고 때로는 꼭 필요한 인재를 눈앞에서 놓칠 수밖에 없을 때면 마음이 힘들었다.하지만 ㈜디케이앤디를 임직원들만의 회사가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삶의 기반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했다. 그래서 베트남 현지 법인 인수 이후 현지의 베트남인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우수직원들은 정기적으로 한국에 초청해 격려했다.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상과 인식을 제고하는 민간외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었고, 이만큼 해낸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다.“주 거래처와 공장이 미국과 유럽, 베트남, 중국에 있으니 1년의 반 이상은 다른 나라에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를 누비고 있지만 고향 고성 그리고 하일면 앞바다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어요. 고향은 늘 제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년 최민석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일면 고향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가시면 다시는 뵐 수 없는 길이니 미련없이 고등학교를 1년 휴학하고 아버지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모시던 1년동안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며 고향 고성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어머니는 물론 그의 형님 내외도 여전히 고향을 지키며 고성에 살고 있다. 최민석 사장은 1년에 서너 번 고향을 찾는다. 고향의 산과 들, 바다가 키운 것들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회사의 명절선물도 꼭 고향에서 생산된 것들을 고른다.
향우회 활동에도 누구보다 앞장선다. 그는 재경고성향우회 부회장이다. 그리고 재경하일향우회와 하일초등학교 등 재경 향우회, 동문회부터 고성향토문화선양회까지 참여한다. 사업가가 아닌 고성사람 최민석으로, 고향 소식을 누구보다 많이 듣고 싶은 탓이다.“사실 어릴 적에는 선생님이 돼 고향의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저 역시 성장과정은 물론 학업이나 삶에 있어 여러 가지 부침들을 겪었기 때문에 어찌됐든 도회지에서 제대로 배우고 그 능력을 고향에 전해 후배들에게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죠.”
사업을 시작하고 자꾸만 바빠지다 보니 그 꿈이 못내 아쉬웠다. 사장님 최민석은 비록 최민석 선생님이 되지 못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지난해 초 늦깎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 사업가 최민석의 패기와 도전
그는 언제나 생각한다. 기업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언젠가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그리고 아직도 남은 꿈이 있다. 
언젠가는 장학회를 만들어 고향을 지키고 열심히 살고 있는 선후배들의 자녀교육에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을 두 발로 누비며 깨달았던 수많은 것들을 고향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것.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될 수 없어도 인생을 가르치는 선배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고성신문이 태동했던 26년 전 그는 갓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서 공부하던 복학생이었다. 고민도 많고 꿈도 많았고 가능성은 더 많았던 시절이다.가진 것이라곤 두 주먹뿐인 새파란 젊은 최민석은 오로지 패기와 도전으로 미래를 준비했다.“
창간 26주년을 맞은 고성신문도 제 스물여섯 살에 그랬던 것처럼 보다 희망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연륜과 준비를 갖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환기를 열어가는 고성신문 되시길 소망합니다. 제가 자라고 살아온 생명의 원천은 바로 내 고향 경남 고성입니다. 
전 늘 내 고향 고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제 삶의 자양분이 된 고향 고성에 늘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고성신문 독자 여러분, 향우 여러분 고향 고성과 함께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02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