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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길을 찾아서 1010번 지방도(고성 동해면~하이면)-②

자란만은 생태환경의 ‘보고’
김열규교수 기자 / 입력 : 2006년 10월 20일

생태환경에 관한 에콜로지


1010에는 삼동 새벽이라도 영하 2~3도 이하로는 잘 안 내려 간다. 삼복의 한 낮이래야 겨우 27~28도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아열대의 북방한계선답게 1년 사철 내내 기온은 온화하고 기후는 삽상하다.


 


가령 필자는 워낙 약골인데, 서울살이 근 40년 내내 늦가을, 겨울, 이른 봄을 깡그리 감기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곳으로 옮기고 이제 10여 년, 감기나 아토피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 눈치 빠른 식물들이 이를 놓칠 턱이 없다.


 


산다화, 동백이며 수선화에 새우난, 타래난, 각시난, 콩난, 그러고도 모자라 꽃무릇, 으아리 등 갖가지 요란한 봄꽃들! 여기에 비파 샛노란 열매의 새콤달콤한 맛이라니! 비피를 입에 물고 1010을 달리면 시각이 뒤질세라 잔치를 벌인다. 송천리의 ‘지포’도 좋다.


 


두포의 ‘한개’도 좋다. 사량도와 자란섬, 누운 섬들 사이로 물마루가 튄 한바다를 내다보고 달리면 누구나 산 목숨의 맛을 온몸으로 만끽할 것이다. 바로 거기 ‘더개’ 가까운곳 ‘게스트하우스’라는 멋쟁이 찻집 앞이라면 누구든 문득 차를 세울 것이다.


 


그러고는 삶에 겹친 여정(여정)의 의미에 대한 계시를 얻을 것이다. 그때 우리의 시선은 바다직박구리 부럽지 않게 섬 사이를 뛰고 날고 하리라! 그 순간 자라만은 우리 누구나 어릴 적 펄쩍펄쩍 징금다리 타고 건너던 개울과 같아진다.


 


그러다가도 두모포 의 ‘굴렁개’ 같은 포구에 붙따라 맴돌면 사랑의 감칠맛에 온 등이 간지러움을 탄다. 개울 물살이 갯바람과 합세해 약동하고 산 기운이 바다의 기세와 어울려 고동치고 들녘의 곡식 익어 가는 향이 농익어 가는 굴, 조개의 냄새와 합창하는 그 사이사이를 1010은 누비고 또 누빈다.


 


이렇듯 생태환경으로 단연 모든 길의 앞장을 선다는 것은 1010으로서는 여간 자랑거리가 아니다. 가령 삼산면이나 하일면의 어느 포구를 간다고 치자. 우선 두세 곳의 개를 지난다.


 


다음으로는 깊이 팬 물골을 에워싼 채 우거질 대로 우거진 솔숲을 헤집고 한참을 누비듯 호듯 가면 드디어 안자락에 네다섯쯤 숨고 숨기고 하듯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 나타난다.


 


그 앞머리와 양쪽 허리를 길게 또 깊게 바닷물에 잠그고 있는 이들 외딴 마을은 정말이지 지상의 용궁에 다름없다. 자연 생태에 귀화(歸化)한 사람들이 잔 물살이듯, 잔 바람결이듯 살아가고 있다.


 


가슴을 속삭이는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면 남해로 오라!


근자에 와서는 그 같은 작은 곶의 어깻부들기에는 드물지 않게 외지에서 찾아 든 사람들이 아담한 해안 전원주택을 이룩하고는 고고(孤高)하게, 독야청청하게 삶을 누리면서 남들의 만만찮은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것은 꼭 정정한 노송 가지 위에 지은 백학(白鶴)의 둥지 같아 보인다. 그게 오늘날 생태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 누구 나를 위한 삶의 지표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생태라고는 차마 말하기 어렵게 도시가 콘크리트의 사막으로 화하고 아파트가 자청한 옥살이 꼴이 되어 가는 추세에 짓눌려 주눅 든 사람들에게 생기가 약동할 내일, 자유가 퍼덕댈 내일, 안위(安慰)가 깃들 미래를 역력히 보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1010을 따라 생태환경을 누리다 보니 절로 자연 풍광으로도 1010이 천하의 장땡임을 알게 된다. 먼저 길 둘레를 살펴보자. 먼 산줄기는 평균 400~500m로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첩첩이 겹친다.


 


하늘 중천에 대고 그들이 그려내는 윤곽의 선문은 그냥 그대로 거대한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그 산맥들의 허리마다 고개가 틔고 재가 열려 1010을 내려다보는 장쾌한 조감도를 그려낸다.


 


하늘 가던 둥근 달이 움막 치고 잠시 쉬어 가고는 했을 달막재(삼산면)를 비롯해 학동재(동산재), 영성재(삼산면)등의 ‘대티’, 곧 큰 고개에서 1010을 부감하는 것은 언제든 천복을 누리는 것이 된다.


 


야트막한 산 능선과 들판과 개울과 해안선과 바다와 섬이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그려 낸다. 재를 내려서서 만이면 포에 다다랐다고 치자. 그들의 형상은 그야말로 ‘원만구족(具足)’이다.


 


수평선이 어머니 젖가슴 여미듯 하는 데다 섬들이 그 어미의 젖꼭지를 물 듯 하고는 졸음에 겨운, 이곳 바다는 어디나 안채, 안방이다. 서정에 넘치고 시정이 속살댄다. 그야말로  명실 더불어 ‘정경’이다.


 


 ‘가슴에 맺힌 것이 웅얼대는 사람은 동해로 가라’ 가슴을 속삭이는 사랑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은 남해로 오라!  이건 필자의 생각이지만 그런대로 옳은 말인 것 같다. 거의 일직선으로 무한으로 뻗은 동해의 해안선은 개방이고 발산이다. 서사시다.


 


그러나 굽고 감싸는 1010의 해안선은 포옹이고 서정시다. 1010은 한 고비 넘으면 절경이다. 두 고비 지나면 가경(佳境)이다. 세 고비 넘어서면 드디어 선경(仙境)이다. 굳이 어느 곳, 어느 지역이라고 한정할 것이 못 된다.


 


아무데서나 어디서나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비경(秘境)을 일구어낸다. 비경 하나하나를 구슬로 치면 1010은 다이아몬드 루비에 사파이어에 줄줄이 보석을 꿴 옥()줄인 셈이다.


 


곶 하나를 따라 들어가면 그 곳이 바로 도원경(桃源境)이다. 개 한개 곳에 다다르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개펄, 한 곳에 서면 유토피아다. 1010의 자연 풍광은 바위 조형과 고목으로도 금상첨화가 된다. (바위 조형 은 잠시 뒤로 미루고)느티, 느릅, 그리고 폭(포구)이며 이팝 등 거목(巨木), 거수(巨樹)의 그늘을 1010은 즐긴다.


 


그들은 해풍막이를 하는 ‘우실’의 구실에 이정표며 휴식처 구실까지 겸하고는 태산이듯 울울창창하다. 한 여름, 자동차도 곧잘 쉬어 가자고 응석을 부리는 것은 그들 짙은 그늘이 차창에 어리대기 때문이다. 대개는 네댓 그루, 숲이지만 혼자인 고목이 한결 돋보인다.


 


삼산면 큰 저수지 둑 방 아래에 홀로 우거진 느티 노거수는 보호며 안전이 뭔가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자의 겸손이 어떠한 것인가를 일러준다. 온 대지를 뒤덮듯 또는 품을 듯 아래로 처진 가지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이 성자(聖者)는 고독이 궁극적으로 고고(孤高)함이 될 본보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하는 넋두리를 그는 모른다. 한데 이제 눈을 먼 물마루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그 당장 언뜻 아스라하게 피안이 엿보인다.


 


그러면서 안식, 동경, 영원, 그나마 인간 영혼이 누릴 그 모든 것이 거기 아로새겨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파노에 너울대는  햇살이 복음을 일러주고 난 뒤를 이어 물살마다 알록지는 달빛이 축복을 내린다. 흰 물거품을 물고 노니는 마파람은 해탈(해탈)의 몸짓, 마음의 놀이 그대로다.


 


거기 바다 밑에는 용궁이 있을 것을 믿어도 좋다. 토끼를 꾀어낸 거북이 지금도 거기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고, 또 그는 기꺼이 효녀 심청의 사연을 들려줄 것이다.


 


그 자체로 찬연한 묵은 ‘민속지’ 혹은 ‘민족지’


아쉽지만 이제 1010에 적힌 역사를 말할 차례다. 동해면과 하일면 일대에는 천문 기상도가 새겨진 고인돌을 비롯해 신석기, 구석기에 청동기 이래의 패총과 선사 유구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동외동 패총은 엄청난 기념비로 우뚝하다. 거기서 캐낸 ‘조문(鳥紋)청동기’ 하나만 해도 타 지역의 어떤 패총 유물들도 우러러 받들 것은 뻔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따로 섬기다시피 떠받드는 것만 보아도 알 만하다.


 


천신에게 바치는 제사에 사용됐으리라 추정될 뿐, 신비에 묻힌 조문청동기는 청동기 유물로는 으뜸으로 청사에 빛나고 있다. 이 판각(板刻) 문양은 그 입체적 조형술에서 한국미술사의 첫 새벽이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혁거세의 천마가 ‘우주말’ 이었듯, ‘우주새’일 법하다고 헤아려지는 이 청동새는 천상의 뜻을 지상에 알리고 인간세계의 뜻을 천상에 전했을 것이다. 그 퍼덕거렸을 날갯짓은 오늘날에도 산들바람에 설레는 1010의 하늘에 아련한 여운을 풍기고 있다.


 


그러면서 잔잔한 파도에 그 날개짓이 무늬지고는 한다는 것을 이 고장 사람들은 전하고 또 전해왔다. 그뿐인가? 인간의 역사를 앞질러서는 공룡들의 발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들이 이 지역을 위한 선구적 개척자 노릇을 다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예나 지금이나 국토의 변두리요, 또 다른 ‘땅끝’ 임을 생각할 때, 인간과 동물들의 선사 유적의 무수한 퇴적은 거짓말같이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에 겹쳐 문화를 말해도 다른 길가에서는 쉽게 못 볼 명물들을 1010은 갖추고 있다. ‘들돌’ 하나만 해도 그런데, 거기에 ‘우실’을 덧붙이면 다른 고을 사람들은 그게 뭔가 하고 미심쩍어 할 것이 분명하다.


 


영영 가출한 홍길동이 들돌 들기로 의적(義賊) 무리의 수괴가 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소굴은 이 근처 어디에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소나무나 폭 나무가 외줄로 또는 겹줄로 늘어서서 마을의 지킴이 구실을 해낸 것이 우실이기에, 역기 들어올리듯 들돌 들어 힘겨루기를 하고는 하던 길동의 무리도 우실의 보호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후미지고 외딴 구석이기에 오히려 더 잘 보존돼 온 문화유산을 1010은 자랑하며 내보인다. 그런 면에서 1010은 그 자체로 찬연한, 그러면서 묵은 ‘민속지’며 '민족지‘를 기록해 내고 있다.


 


여기서 말머리를 돌려 어업과 조선업의 전초기지로서 유사 이래 큰 몫을 다해 온 그 자취며 내력도 만만치 않음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다른 더 요긴한 화제로 해서 줄이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러나 문화와 역사를 말할 때 1010연도의 ‘갯사람’들이 국방이며 국토 수호를 위한 초병(哨兵)과 전위대 (前衛隊)노릇에 몸과 마음 마음을 바쳐 왔음을 뺄 수도 줄일 수도 없다. 솔비포의 것이 대표할 수 있듯 하고 많은 수군의 진터에서 고귀한 피의 얼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진터만이 아니다. 1010을 내려다보는 여러 곳의 봉수대를 그들은 관리해 왔다. 그들이 바다바라기의 산꼭대기에서 봉화며 횃불을 활활 피워 올렸을 때, 그것은 조국 방위의 레이더 기지와 다를 바 없었다. 하일면 좌이산의 봉수대는 그것을 증언하면서 오늘도 그 바위 덩치가 사뭇 당당하다.


<계속>

김열규교수 기자 / 입력 : 2006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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