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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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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대교-동해면 일주도로 가는 길>
‘가을 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아파라. 종소리 가슴 메여 파리해진 채 지난날 그리며 눈물짓노라.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 같아라.’
가을이 저무는 이 맘 때 폴.베를렌의 우수에 젖은 ‘가을의 노래’가 떠오른다.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길 때 듣는 음악은 좋은 길동무가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가을 노래(Autumn Song)’가 이 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 외 팝이나 상송, 칸초네, 가곡 등 취미대로 분위기 있는 CD 몇 장을 준비하면 긴 드라이브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다.
자 이제부터 길안내와 히든 스토리를 곁들인 스토리텔링을 슬슬 시작해 볼까.
이번에 소개하는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과 고성군 동해면을 연결하는 동진대교 가는 길은 2007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입선한 코스이다. 이 길의 끝에서 좌회전하여 계속 주행하여 돌아오면 동해면 일주도로의 완주가 된다. 창원에서 이 길로 가는 코스는 마창대교를 지나 진동면 근곡 인터체인지에서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암하 삼거리에 동해면 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진주 대구 방면에서 올 때는 남해고속도로 내서 분기점에서 우회전하여 오는 길이 빠르다.
서울 부산 울산 등지에서 올 때는 남해지선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창원 불모산 제2터널을 지나 마창대교 쪽으로 오면 앞서 안내한 코스와 연결 된다.
동진대교로 가는 길 입구표시는 창포만에 접한 들판 직선 길로 200m정도 가면 이명마을 갈림길에 서 있다. 좌 쪽으로 가야한다. 총연장 9.5㎞에 달하는 이 길은 남해안 관광일주도로 개설계획에 따라 동진대교 건설과 맞물려 확·포장 되어 지방도(시군도)에서 국도(77호선)로 승격되었다.
진동 창포만의 질펀한 개펄이 민낯을 드러내는 해안가를 따라가면 짭짤한 갯내가 코끝에 스멀스멀 스며든다. 구불구불한 해안을 여유롭게 드라이브하다 급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웅장한 동진대교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잠깐, 동진대교와 주위배경을 한 폭의 사진에 담으려면 내리막길 끝의 길섶에 차를 세워야한다. 관광안내서의 동진대교 전경은 바로 이곳을 포토 존으로 잡아 찍은 것이다. 구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동진대교의 아름다운 풍광이 조망되어 한 컷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작품사진을 찍으려면 해뜨기 전후 1시간이나 일몰 전후 30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순광으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 요즘 디지털 포토샵 기능이 좋아서 전문 포토그래퍼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다리 입구에 서 있는 도로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좌회전하여 대교 위를 달리는 기분은 그저 그만이다. 괭이바다(진동만)의 싸한 갯바람이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동진대교는 총연장 390m로 1995년 12월에 착공하여 2001년 12월말에 준공되었으며 이듬해 1월 개통되었다. 다리명칭은 고성군 동해면의 ̒동'자와 당시 마산시 진전면의 ̒진'자를 따서 동진대교라고 명명하였다.
이 대교가 있는 지점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2번이나 승전고를 울린 당항포해전의 물목이다. 이 물목은 폭이 350m에 불과한 좁은 곳으로 당항만으로 진입하는 입구이다. 이 항로에 진입한 모든 선박은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항해를 계속할 수가 없다.
당항포구 끝은 고성평야가 가로막고 있어 통영바다와 연결되지 않는다. 당항만은 고성군 동해면, 거류면, 고성읍, 마암면, 화화면과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을 끼고 있는 호수 같은 내해이다.
동해면에서는 당항만을 포도송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포도해라 부른다. 동해초등학교 교가 가사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당항포구는 1~2차에 걸친 당항포대첩 격전지였다.
1차 해전은 1592년( 선조 25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2차 해전은 1594년( 선조 27년) 3월 4일 하루 동안 치러졌다. 제1차 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지휘하에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원균의 경상우수영 전선 3척 등 51척이 당항만에 진을 친 왜군 전선 26척을 공격하여 모두 괴멸시켰다.
제2차 해전은 아군 연합전선 124척이 참전한 대규모 해전으로 학익진을 펼치며 왜선 31척을 대파시켜 승전고를 울렸다. 이처럼 이곳은 임진왜란 대승첩의 투혼이 서린 호국의 성지이기도 하다. 당항포에 전적비와 승첩 사적 시설이 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해전의 흔적들이 지명 여러곳에 남아 있다. 동진대교 끝단에 면한 시루봉과 내곡리 뒷산은 그 당시 왜적의 내침을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으며, 철마산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산성이 축성되어 일부 멸실되고 250m(당초 350m)가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해전 당시 생긴 지명으로 왜군 밀사가 지닌 지도에 기생 월이가 통영만과 해로가 연결되게 그려 넣어 속게 했다는 속싯개(마암면 해안), 왜적이 패해 도망 간 곳이라는 도망개를 비롯하여 핏골, 당목 등의 지명이 그 당시 치열했던 임란 승첩지의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동진대교를 살짝 벗어나면 다리 오른편에 간이 포장마차가 있다. 여기서 잠시 차를 멈추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대교 부근의 해안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동진대교 주변의 해안 포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호수같이 잔잔한 쪽빛 바다는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황홀한 광경을 연출한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동해면의 동쪽과 서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회전하면 외산리 쪽으로 당항만과 접하게 된다. 곧장 가면 진동만 괭이바다에 면한 내산리 대막포 소막포 방면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의 연장이 된다. 여기서 동해면 일주 드라이브 코스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좌회전하여 동쪽방향으로 가서 동해면 소재지인 장기리를 거쳐 일주한 후 동진교 쪽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와, 곧장 직진하여 아름다운 길 끝인 동해면 양촌리 덕곡마을에서 좌회전하여 양촌리 법동-용정리-장좌리-봉암리-외곡리-내곡리-장기로-양촌리-외산리를 거쳐 동진교로 되돌아오는 코스이다. 아름다운 길의 처음과 끝을 드라이브해야하니까 곧장 가는 코스를 선택하는 게 좋다.
동진대교 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낚시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휴일에도 10여명이 진을 치고 낚시 삼매경에 빠져있다. 조출이 괜찮은 곳으로 소문 나 있다. 작은 어촌인 대막포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면 새해 첫날 해돋이 명소인 해맞이공원이 나온다.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새해 소망을 기원하며 새해맞이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인근에 숙소(모텔)와 편의점, 찻집도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다.
조금 지나면 중형조선소가 있다. 예전엔 물막이식 바다 낚시터가 있었으나 동해면이 조선특구로 지정되면서 공장터로 변했다. 조선소 끝에 평돌바위라는 암석층이 있는데 이곳이 전기 백악기 공룡의 집단서식지로서 진동층에 속하는 공룡화석집적지이다.
고성은 공룡화석이 많이 분포한 곳으로 해안선 곳곳에 공룡발자국화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고성군 하이면 상족암의 공룡화석이 유명하며 인근 장좌리 구학포 해안가에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잘 알다시피 고성군의 대외 홍보에 공룡이 트레이드 마크 역할을 한다. 회화면 당항포에 상설 공룡 테마 파크가 있어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까지 총 네번의 공룡엑스포가 열린 이곳은 자녀교육 삼아 꼭 한 번 들릴 것을 권한다.
완만한 해안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드라이브하다 보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끝인 양촌리 덕곡마을에 다다른다. 총연장 9.5㎞의 종점이다. 여기에서 좌회전 하면 동해면 해안도로의 일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한 편도 1차선 도로를 여유롭게 달릴 수 있어 무척 낭만적이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들쭉날쭉한 해안 포구엔 올망졸망 작은 어촌마을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엔 어업이나 선원, 멸치어장 종사원으로 생업을 유지했으나 연안 어족 자원의 고갈과 권현망의 철수로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지 않고 밭농사로 살아간다.
권현망이 성시를 이루던 일제 때엔 주재소(지금의 파출소)가 있었으며, 큰 멸치어장에서 생산 된 질 좋은 멸치 수백 톤이 전국은 물론 일본까지 수출 되었다고 한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동해면 곳곳 해안 포구에 대형 권현망 어장이 7곳이나 있어서 고성군 1읍13면 중 가장 부면에 속하여 지방세 납세실적이 고성읍을 제외하고는 항상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멸치잡이로 파시를 이루던 이곳 해안 포구는 고성조선특구 지정으로 조선관련 공장들이 점령해 버렸다. 열악한 지방세수증대와 지역발전을 위해 조선단지를 유치했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절경이 관광단지로 개발되지 않고 공장 터로 변해버려 일말의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77번 국도를 따라 당동만에 접한 도로를 계속 달리면 고성군 거류면과 동해면의 경계지점인 입암마을(아래선동) 삼거리에 도착한다. 어느 쪽으로 가도 고성읍과 연결된다. 우회전 해야 처음 출발했던 동진대교 쪽으로 갈 수 있다. 동해면 일주도로 총연장은 36㎞로 90리이다. 해안선을 따라 반도형으로 생긴 것이 동해면이다.
가는 도중 들러 볼 만한 곳이 많다. 등산 일정을 잡은 사람에겐 좋은 등산코스가 있고, 몇 군데 둘러보고 맛집이랑 찻집에 들러 유유자적하며 여행 할 수 있다. 거류면과 동해면 경계도로를 주행하다가 꼭 들러야 하는 곳이 구절산 폭포암이다. 구절폭포 암벽아래 작은 암자와 흔들바위가 있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강우가 많은 날 구절암 뒤 용두폭포(사두암 폭포라 불리기도 한다)에서 비루직하 10m 아래로 굉음을 지르며 쏟아지는 폭포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구절폭포는 구절암이 있는 쪽보다 암자 너머 면소재지인 장기마을 쪽으로 쏟아지는 폭포수 광경이 더 장엄하고 스케일이 크다. 구절암 쪽보다 높이도 배나 높고 수량도 많다. 동네 뒷산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는 장기천을 따라 당항만으로 흘러든다. 구절암은 외곡리 동네 뒤편으로 절 입구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어 편하다. 내곡리 봉화대 쪽은 전문 등산코스이므로 목적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구절산 폭포암에 가면 누구나 신기해하는 흔들바위가 있다. 한 사람이 밀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밀어도 똑같이 큰 바위가 흔들린다. 이 바위를 밀면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영험이 있다고 한다. 구절산 폭포암은 전해오는 전설이 많은 곳이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암자에 들러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많이 듣고 와야 한다.
구절산 폭포암을 내려오면 배가 출출해질 것이다. 동해일주도로를 따라가면 마동호라는 물막이 언저리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은 성나루 라는 곳으로 근처에 맛 집이 있어 싱싱한 회로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다.
마동호는 한발이 극심한 동해면 내곡리와 거류면 감서리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사업이었다. 그러나 물막이 공사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수자원 공사와 환경단체가 수년간 줄다리기를 하다가 공사가 지연 되는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이곳 성나루는 지명 그대로 동해면 내곡리와 회화면 당항포 간에 범선 나룻배가 운행되던 나루터이다. 5일장이 서는 회화면 배둔으로 동해면 사람들이 나들이를 할 때나 부산, 마산 등지로 이동할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동해면은 옛날부터 교통 오지였다. 긴 해안 비포장도로에 하루 한 두 번 운행하는 버스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 성나루를 많이 이용했다. 예전엔 술 따르는 색시가 있는 주막이 있어서 객군들의 단골 쉼터였다. 이제 그 날의 객군들도 주막도 다 사라져 버리고 큰 서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남아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10여분 가면 면 소재지인 장기 못 미쳐 군진이라는 곳이 나온다. 고려 때 몽고군이 일본정벌을 위해 우리나라에 왔을때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몇 년 전 중형 조선소가 들어서서 지명 값을 하는 것 같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쓸만한 곳은 언젠가 한번 긴요하게 소용되기 마련인 것 같다.
이내 면소재인 장기 마을에 도착한다. 동해면 소재지인 장기는 교통의 요지가 아닌 오지여서 면소재지 치고는 많이 후진 곳이다. 옛날엔 5일장도 서고 술도가(막걸리 양조장)도 있어 사람들이 제법 북적됐지만 이젠 관공서 몇 곳만 있을 뿐 변변한 맛 집 하나 없는 후진 곳이다.
당일 코스 여행일 경우 이곳은 동해면 종단 도로를 종주해 보거나 철마산과 구절산을 등반해 볼 수 있는 중간 계류지이다. 이 마을 뒷산으로 연결된 산복도로를 따라가면 장좌리로 가는 산골길을 트레킹하는 기분으로 종주해 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엔 장장 10㎞에 이르는 이 길로 자동차가 달릴수 없어서 걸어 다녔다.
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은 면서기가 첫 출장을 떠나는 길이 이 길이었다. 당일치기 출장은 불가능 해서 이장 사랑채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귀청하곤 했다. 도시에서 곱게 자란 사람이 출장을 명받아 이 길로 장좌리 상장 하장 우두포 구학포 4개 부락을 걸어서 다녀 오고는 사표를 쓰고 도망가는 눈물고개 고생 고개길이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태산준령을 등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고달픈 삶을 살았다.
장기마을 뒷산 철마령과 구절령 고개마루에 차를 주차해 놓고 구절산(559m)이나 철마산(394.6m)을 등정해 볼 것을 권한다. 물론 동해면내곡리봉화대-구절산-철마산-수양산((420m)-응암산(431.6m)종주코스를 등반 할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약 4시간 반이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주파할 수가 있다. 등산 매니아들 사이엔 트레킹 코스로 소문이 나있다( 포털 사이트 참조).
당일 가볍게 철마산이나 구절산을 등반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두 산 모두 왕복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산 중턱에서 오르기 때문이다. 철마산에 오르면 임진왜란 때 축성했던 성터(250m)도 볼 수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엔 일본 대마도까지 보인다. 구절산에서 당항만을 내려다보면 마치 큰 호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의 자연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또한 당항만을 굽어보면서 임진왜란 때 학익진을 펼치며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과 우리 수군들의 사기충천한 모습을 상상해보면 애국심이 절로 솟아 날 것이다.
철마산 등정 후 내려오는 길에 상장마을에 들러 약효 좋은 자연산 약삼 몇 뿌리를 사가지고 와서 토종닭에 대추랑 넣어 푹 고와서 먹으면 원기회복에 그저 그만이다. 하루 일정에 자동차로 도로일주만 하기에는 2%가 부족하기에 철마산과 구절산 등정은 꼭 권하고 싶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자동차를 몰아 동해중학교 조금 지난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계속 가면 처음 출발했던 동진대교에 이르게 된다. 진입 후 잠시 차를 멈추고 오른 쪽을 보면 봉토 분묘들이 보인다. 이곳은 가야시대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내산리고분군으로 1961년 유적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창원에 있는 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2차에 걸친 발굴 작업을 거친 결과 36기의 봉토분이 소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멸실되어 평분된 것을 포함하면 100여기가 축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갯마루를 넘어 당항만을 끼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창원 마산 등 외지에서 땅을 산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지어 살거나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창원 마산과 1시간 이내 지근거리라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몰아 친 곳이다. 주말이면 외산리 좌부천 마을에 있는 숯골찜질방을 찾는 외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는 도중 근사한 찻집과 맛 집(횟집)은 물론 수목원도 있어서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동진대교를 바라보며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은퇴 후 전원생활의 멋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여름 바캉스시즌에는 가족단위로 오붓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동진대교와 동해일주코스(등산포함)에 4~5시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고 붐비지도 않아 당일치기 여행길로 적극 추천할 만한 아름다운 경남의 길이다. 등산, 낚시, 경치, 맛 집, 유적지 등 두루 두루 멋과 맛과 여유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넉넉한 귀가 길. 마창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면서 드라이브 하는 기분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덤으로 얻는 기쁨이다.여행하는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경남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떠나자.
에세이스트 신영복은 ‘처음처럼’에서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다. 그냥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의 눈 여행이 아니라 따듯한 가슴으로 느끼면서 즐기는 의미 있는 자동차 여행이어야 한다.
◐동진교- 동해일주도로 가는 길 뷰
# 유적지 및 관광지
0. 철마산성터, 양촌리 검포부락 산성터, 내곡리 성터
0. 양촌리 검포 지석묘 유적지
0. 구절산 곡산 봉수대, 내산리 시루봉 봉화대
0. 장좌리 하장 호암사: 영양천씨 본산0. 내산리 가야시대 고분군
0. 내산리, 장좌리구학포, 봉암리 장항 공룡발자국 화석 군락지
0. 구절폭포암, 구절폭포, 흔들바위
0. 내산리 대막포 해돋이 명소, 용정리 망일포 해돋이 명소
# 낚시터
0. 동진대교 부근 내산리 해안가
0. 우두포 해안0. 망일포, 주래해안
0. 소가룡 해안0. 봉암리 장항 해안
0. 외산리 좌부천 마을 앞
# 등산코스
0. 구절산-철마산-수양산-응암산-시루봉 동해면 준령 종주코스
0. 구절산, 철마산 단일 등정코스
# 맛집 및 찻집
0. 동진대교~좌부천~대천해안변
0. 양촌리 법동해안
0. 용정리 매정 마을해안
0. 우두포 마을 해안
0. 내곡리 성나루 부근
0. 양촌리 검포마을 인근
# 펜션 및 숙소
0. 좌부천 마을 입구 횟집 겸 펜션
0. 내산리 소막포 모텔
# 기타
0. 좌부천 수목원
0. 좌부천 숯골 찜질방
◈전해오는 이야기 및 전설
# 구절폭포
오랜 옛날 구절폭포 아래 물구덩이에 살던 못된 용이 승천하였는데 그 때 계곡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멱을 감고 있었다고 한다. 승천하던 용이 숨어서 이 광경을 훔쳐보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때려 용은 산산 조각이 났다. 그 때 용의 몸통이 구절폭포를 병풍처럼 두른 암반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의 머리위로 폭포수가 흘러 용두폭포라 부르게 되었고, 용의 내장이 녹아내려 동굴이 되었다고 한다. 그 동굴에 호랑이가 살게 되어 이 굴을 백호굴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 암자의 산신각이 되었다고 한다.
# 못다 이룬 사랑의 한이 서린 상사바위
동해면 내산리 대막포 해안가에 있는 큰 바위 두 개에 얽힌 전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이 동네에 사는 이씨라는 큰 부잣집에 20살이 된 과년한 딸인 미옥이라는 낭자가 있었다. 무남독녀로 금지옥엽처럼 귀하게 키워 왔으며 빼어난 미모라 동네 총각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니 자기 마음에 드는 낭군을 직접 골라서 시집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 부자 영감은 각 지방에 방을 붙여 사윗감 공모를 하게 되었다. 100일 동안 이 부자 집 사윗감이 되겠다고 지원한 총각이 수십 명에 이르러 선을 보았으나, 이 낭자는 한 명도 자기 맘에 드는 신랑감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이 부자는 그럼 어떤 총각이 네 마음에 드는 총각이냐고 물으니, 이 처녀 하는 말이 자기 집 머슴인 갑석이를 오래 전부터 자기 신랑감으로 마음에 품어 왔다고 하지 않는가. 기가 차고 화가 머리 끝가지 오른 이 부자는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 가운데 이 소식을 들은 머슴 갑석은 자기 때문에 상심하고 부녀간에 불화가 생긴 것에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에 대한 지극한 낭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차라리 자신이 죽는 길만이 이 집안을 위하고 낭자를 구하는 길이라 결심한다. 낭자를 찾아 3배 절을 올린 머슴 갑석은 동네 앞 높은 절벽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낭자는 댕기머리를 스스로 풀고 자신도 같은 장소에서 몸을 날려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후 두 청춘 남녀가 죽은 곳에서 두 개의 뾰족 바위가 솟아나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못다 이룬 한 맺힌 사랑을 하늘이 가엽게 여겨 바위로 환생시킨 게 아닌가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구에 회자 되는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지극한 사랑은 죽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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