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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머릿니가 유행하자 청람어머니회가 고성초등학교에서 머릿니를 잡아주던 모습 |
| 못먹고 못살던 시절이었다. 목욕탕은 1년 내 지나봐야 설, 추석 명절 두 번 가는 것이 전부였다. 손톱 밑에 낀 때와 꾀죄죄한 옷차림을 누구도 욕하지도 피하지 않던 1970년대였다. 누구나 그렇게 살던 시절이니 딱히 주눅들지도 않았다.
그때는 머릿니도 흔했다. 머리를 자주 긁적인다 싶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헤집어보면 새까만, 점 같은 뭔가가 튀어올랐다. 한 반에 한 명만, 두어 마리만 머리에 있어도 그때는 50명, 60명이 한 교실을 썼으니 금세 옮기 일쑤였다.
저녁이면 가족들끼리 모여앉아 하는 일도 옷을 까뒤집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이를 잡아내는 일이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할머니들이 쪽찔 때 쓰던 촘촘한 참빗으로 머리를 두피부터 박박 긁어 빗어내리곤 했다. 그러면 빗 끝에서 이들이 꼼지락거리곤 했다.
엄마들은 잡아낸 이를 손톱 끝으로 눌러서 죽였다. 그리고 옷과 이불 등등은 볕 좋은 날 빨랫줄에 널어 일광소독을 했다. 아주 심한 옷가지들은 아예 태워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그러드는 듯하다가 다시 되살아나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도 머릿니 퇴치는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다. 어머니회에서도 학교에 출동해 머릿니를 없애기 위해 참빗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빗었다.
하다 하다 엄마들은 파리약을 꺼내들었다. 머리에다 수건을 씌우고 독하디 독한 파리약을 뿌렸다. 그때는 약이 지금처럼 좋은 시절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처치방법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전흔이 아물고 먹고 살기가 조금씩 나아지던 70년대에도, 나라 살림이 펴면서 점차 부강한 나라를 꿈꿀 수 있었던 80년대에도 이상하게 머릿니 유행이 한 차례씩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가 나라 살림이 제법 살 통통하게 오른 90년대를 지나니 이제 먹고 살만해져서 그런지, 화장품이며 샴푸 등등이 좋아져서 그런지 머릿니는 사라지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머릿니가 유행이라 한다. 예전처럼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교실에 살지도 않고, 영양상태도 좋다 못해 과하다 하고, 샴푸며 약도 돈만 주면 못구할 것 없는 요즘 세상인데 말이다.
그때 그 시절 우리를 괴롭혔던 머릿니가 그 독한 약들을 먹고 내성들이 생겨서 이제 웬만큼 독한 약으로는 물러나질 않는 것이다.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캠프 안내장에다 수영모를 필수 지참물로까지 적어준다. 머릿니가 옮을까 봐 자는 동안 아이들은 수영모를 쓰고 잔다.
웃지 못할 일은 또 있다. 중동 어느 나라에서는 없는 머릿니를 가져다 머리에 심는다고 한다. 그러면 머릿니가 두피의 나쁜 피를 빨아먹어 두피를 건강하게 하고 머릿결을 더 좋게 한다고 믿는다. 머릿니 10마리 심는 데 4달러 정도라니, 없는 시절의 상징이었던 머릿니가 이제 부의 상징이 될 판이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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