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에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2000년 33.7%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지난해 79.2%로 급증했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 화장 후 수목이나 화초, 잔디 등에 유골을 묻는 화장 후 자연장을 선호한다고 답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45.4%를 기록했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국민적 인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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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양평 하늘숲추모원
현재 조성된 국공립 수목장 시설은 전국에 3곳이 있다. 산림청은 가장 자연친화적이라 꼽히는 수목장림의 전국적 확대를 위해 내년까지 수목장림을 총 24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각 시도별 수목장림 조성은 물론 5개의 지방산림청에서도 각 1곳씩의 국립수목장림을 조성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수목장은 2008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지난 2009년 산림청이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 국유림 55㏊에 조성한 하늘숲추모원은 축구장 50개 정도의 규모다. 15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추모원 내에는 추모숲을 비롯, 추모광장, 만남의 광장, 안내센터 등이 들어서있다.
추모원 내 추모목의 평균 높이는 13.7m로, 수령이 30~40년에 이른다. 나무의 생장 여건을 고려해 각 추모목의 간격은 5m 정도로 유지되며 경사가 완만해 경관은 물론 물빠짐이 좋아 유해 손실이 없다.
소나무와 벚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 6천315그루로 조성된 추모원 내에는 제단이나 비석 등 추모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때문에 추모원 내에는 꽃다발 대신 조약돌이나 나뭇가지, 낙엽과 솔방울 등으로 만든 하트모양의 임시 자연 제단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제단이나 비석을 세울 수 없는 대신 추모목에는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일자 등이 기록된 10㎝, 세로 15㎝의 나무 명패가 매달려있다.
산림 훼손은 물론 음식냄새를 맡고 찾아온 야생동물에 유골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제례 역시 추모광장의 합동 분향소에서만 가능하다.
하늘숲추모원에는 현재 4천여 명이 안치돼있다. 수목장 사용은 2천800여 건, 이미 예약된 건도 100건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10월부터는 9구역 추모목 240그루의 추가 분양도 시작됐다.
추모목은 가족을 안치하는 가족목, 가족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 가능한 공동목이 있다. 가족목은 최대 10명까지 안치할 수 있다. 가족목 1그루의 관리비는 15년에 230여만 원으로 최장 60년까지 연장 가능하다.하늘숲추모원은 장의차량이 진입할 수 없도록 했다. 추모객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대씩 드나드는 장의차량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충을 고려한 것이다.
하늘숲추모원 박문혁 차장은 “국내 첫 국유 수목장림인 하늘숲추모원의 가족목 3천여 그루의 분양률이 90%에 달한다”며,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환경 친화적 수목장이 호응을 얻는 등 국내 장례문화 및 인식의 변화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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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 죽음준비학교
최근 몇 년 사이 치료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명치료에 대한 여부를 본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생존 시 유언서나 사전 의료지시서 등 다양한 강좌가 마련되고 있다. 서울특별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4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이 특별강좌는 올해 상반기 23회째를 맞았다.
공동원 복지관장은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며 노인들은 죽음을 더욱 가깝게 여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복지관에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이며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 복지관은 죽음에 관하여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복지프로그램으로 접근하고자 죽음준비학교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연 2기로 진행되는 노원노인복지관의 죽음준비학교는 1기당 15회 가량의 교육이 진행된다.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죽음준비학교는 나 알기, 죽음 알기, 인생 알기, 나눔 알기 등 네 가지 분야로 구분된다. 수강생들은 자서전을 쓰고, 장수사진 촬영, 장묘문화 견학은 물론 호스피스나 유언과 상속, 자살예방강의, 장기기증이나 종신기부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죽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본인의 마지막 순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버킷리스트 작성과 여생에 대한 포부와 희망을 담은 석고주먹 만들기는 수강생들 사이 최고의 인기 강좌다.
한 수강생은 “죽음을 준비하는 이 강좌를 통해 오히려 삶의 의욕과 활력이 생긴다”며 “몸이 이미 늙었을지 몰라도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도 슬프지 않고 힘들지 않도록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죽음준비학교는 타 지역의 기관 및 센터 등에서 자문을 요청하고 기관을 방문해 프로그램을 참관, 체험하는 등 전국에서도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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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준비하며 희망을 얻는 웰다잉연극단
오랫동안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아온 할머니가 덜컥 암에 걸렸다. 투병하던 할머니는 의미 없는 치료 대신 존엄사를 택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 각당복지재단의 웰다잉극단이 공연한 ‘행복한 죽음’의 줄거리다.
웰다잉극단은 각당복지재단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지난 2010년 창단한 아마추어 연극단이다. 이 극단의 단원들은 웰다잉교육강사들이 직접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평균연령 60세를 넘긴 웰다잉극단원들은 자신이 죽음을 목전에 뒀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명환 단장은 “2003년 신장암 초기로 수술한 후 전이돼 또다시 수술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왔다”면서 “내가 죽으면 사후 법적문제 등의 처리는 어떻게 할지,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 가족과 상의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은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했고 그때부터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당복지재단에서는 아름다운 죽음 문화의 정착과 스스로 준비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웰다잉극단 운영은 물론 웰다잉교육을 통한 전문강사 육성 등 그야말로 죽음 준비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웰다잉극단은 존엄한 죽음 준비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기 위해 벌써 7년째 전국을 돌며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 행복한 죽음, 소풍가는 날 등 130여회 공연했다. ‘소풍가는 날’은 2014년, 김천국제가족연극제의 우정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웰다잉극단은 올해 연말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웰다잉극단 최명환 단장은 “웰다잉극단은 노인문화활동의 활성화는 물론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모임”이라며, “우리 극단은 생전 본인의 의지로 사후를 스스로 준비하는 행복한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라고 밝혔다.
“죽음, 직시하고 성찰하면두렵지 않습니다”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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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현채 교수는 위 점막에 붙어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에 관한 권위자다. 그리고 한국죽음학회 이사이기도 하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모임의 이사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정 교수는 몇 해 전 본인의 영정사진 촬영은 물론 유언장,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사전의료의향서도 작성했다. 또한 그동안의 강의자료 등 연구내용을 정리해 교내 의학박물관에 보낸다. 은퇴까지 아직 멀었지만, 정현채 교수의 죽음준비는 이미 영정사진 이전부터 시작됐다.
# 죽음에 대해 다루는 의사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지요. 그런데 생명은 죽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점점 죽음을 터부시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의료진도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치료의 실패나 의료의 패배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된 것이지요. 현세집착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을수록 삶의 질은 지극히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수명을 연장하는 데만 매달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십 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가능한 한 고통을 덜 겪고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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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한 기술
건강할 때부터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맞게 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성찰해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얻으려면 평소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그리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 전체가 죽음의 준비이다”라고 했습니다.
# 우리에게 맞는 죽음 준비
근사체험은 란셋(Lancet) 같은 저명한 의학학술지에도 연구논문이 실리는 등 이제는 의학의 한 연구분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삶에 큰 변화가 옵니다. 재물이나 자식의 성적과 같이 지상에 머물렀던 시선을 삶의 진정한 의미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이생에서 의미 있게 살다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지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히말라야를 등정해 보고 크루즈 유람선을 타 보는 일만이 죽음 준비의 다가 아닌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 서로, 그리고 무한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평소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곧 죽음 준비입니다.
# 죽음에 대한 준비,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갖는 감정은 무관심과 부정(denial), 외면 그리고 혐오입니다. 사실은 건강할 때 유언장을 써 보고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평소 이런 얘기를 하면 “재수 없는 얘기하지 말라”고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암 진단이라도 받게 되면 그때는 정말 주위에서 말 한 마디도 꺼내지 못 하게 됩니다. 수십 년 간 열심히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마무리를 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마무리를 잘 하고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죽음을 직시하고 자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법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본 어느 완화의료전문의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손꼽았습니다.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말하기,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기, 작별인사를 잘 남기기. 이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게 좋은 죽음일 것입니다.
영화 ‘이키루’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마을사람들을 위하여 어린이 공원을 완성해 나가듯,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도 좋은 죽음의 한 요소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