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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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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세월이 지나도 오랜만에 만난 동무들이 반가운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다. 사진 위는 1954년 38회 동창회, 아래는 지난 24일 체육대회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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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을 할퀸 동족상잔의 비극은 이 작은 시골마을조차 그냥 비켜가지 않고 지독한 생채기를 내고야 말았다.
1950년 9월 2일, 한국전쟁은 70일차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날도 낙동강과 남강 교류지점 쯤에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던 북한은 고성까지 밀고 내려왔다. 고성공립국민학교는 순식간에 소실됐다. 본관 12교실과 후관 3교실이 모두 사라지고 뼈대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1천 일이 넘는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살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어서던 때다.고성공립국민학교도 그랬다.
1954년 1월 2일. 흉물스럽게 남아있던, 이미 타버린 교정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을 만났다. 물론 전쟁통에 소식이 끊겼다가 나타나 기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행방이 묘연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그리고 그리워하는 이들은 만나게 되는 것이 운명이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그들은 동무들이 살아있음에 마냥 행복했을 것이다. 기둥만 남아있는 휑한 교정이라도, 38회 동창회는 서로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또 60년이 훌쩍 지났다. 전쟁의 흔적도 말끔히 사라지고, 고성초등학교는 경남도내에서 세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은, 고성의 대표 학교가 됐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성을 우뚝 지켜낸 모교 교정에 초여름 같은 봄햇살이 내리던 지난 일요일, 600명 가까운 후배들이 모였다. 무명적삼과 물들인 군복 따위는 이제 화려한 등산복과 운동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운 얼굴과 반가운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