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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 ‘리어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진지한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리어왕은 왕국을 분배하면서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을 하는지 물어본다. 두 언니는 달콤한 말로 리어왕을 현혹시킨다. 그러나 막내딸 코델리아는 아버지에 대한 진실하고 솔직한 심정을 얘기한다. 이에 리어왕은 심사숙고 없이 자신에게 아부한 두 딸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고 막내딸은 나라 밖으로 추방해 버린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노후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던 두 딸은 리어왕을 배신하고 도리어 리어왕을 폭풍우 치는 황야로 쫓아내 버린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리어왕은 심한 고통과 수난을 겪으며 분노로 미쳐가다 결국 죽게 된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크다. 부모·형제 사이의 인륜과 갈등, 빈부격차 문제, 연약한 인간의 내면과 운명의 극복 등 다양한 인간사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2015년 대한민국 땅에서 사는 학부모들이 짚어 봐야 할 주제가 하나 있다면 ‘어리석은 판단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와 ‘뒤늦은 깨우침으로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400년도 넘은 고전을 보면서 2015년을 사는 현재에도 리어왕의 후예가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 학부모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학부모들은 ‘교육’이라는 딸들을 맹신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에 투자하면 훗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주문을 왼다. “아이야, 공부해라.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해진단다.” 과연 그럴까? 공부만 하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올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아니 역설적으로 공부를 많이 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 교육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정교육이든 학교교육이든 교육 없이는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그리고 한때 세계 최고의 빈민국이었던 나라를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경지에 올려 놓는데 큰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적극적이면서 도전적인 교육열이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고학력을 원하다보니 사회 구조가 병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 쉬웠다.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박사 학위까지 따면 권력과 명성을 함께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출세의 지름길로 교육을 택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물론 아직도 교육을 통한 입신양명의 길이 열려 있지만 그 문이 너무 좁아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문으로 몰리다 보니 2015년 현재 대졸 출신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으며, 매년 1만3천여명씩 쏟아져 나오는 박사학위 취득자 중 80%가 실업자가 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고학력 인력은 늘어난 데 비해 고학력이 필요한 직업은 그에 따르지 못해 고급인력일수록 취업의 문이 좁아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고학력을 지향하다 보니 정작 사회에 필요한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회 조직이란 우리 몸과 같아 머리와 손발과 몸통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할 때 건강한 육신이 된다. 그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농업이나 어업 등 1차 산업이 주였던 이전에는 사회를 이끌고 나갈 사무직 고급 인력이 절실했지만 이제는 사무직보다는 기능직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되어야 할 인력까지 머리가 되겠다고 나서니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가 없다. 손발이 할 일이 따로 있고 몸통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모두가 머리만 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몸통은 없이 머리만 여럿 달린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런 사회이다.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에서는 머리가 될 사람, 몸통이 될 사람, 손발이 될 사람을 통제했다. 사회에 필요한 수요 인력을 따져 경제기획원에서 인력수급을 5년 단위로 기획했으며 대학 졸업생도 정원제로 통제를 했다. 그래서 과잉 인력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이후 교육의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급격히 대학을 늘려 현재는 전국에 433개의 대학이 산재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쉬워졌다. 대학 들어가는 일이 쉬워지다 보니 말 그대로 개나 소나 가는 게 대학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재수나 삼수를 거쳐 어렵게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이제는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만 적을 줄 알면 진학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대학은 특별한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5%가 대학으로 진학을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일부를 빼고는 모두 진학을 하고 있으니 결국 전 국민이 대학을 간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주위의 젊은이 모두가 대학졸업생들이다. 당연히 손발이 되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외국에서 손발의 역할을 할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대신 대학을 나온 우리 젊은이들은 배운 지식을 공허하게 썩이는 백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세상은 많이 배워서 걱정이다. 누구나 다 대학을 가다 보니 대학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많이 배울수록 취업이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들은 오로지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아이들을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한 경쟁 속에 던져 넣고 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만 출세를 할 수 있다는 부모의 맹신과 정부의 무책임한 교육정책에 의해 우리 아이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그러나 리어왕의 교훈에서 보듯이 언젠가 부모들은 손가락으로 스스로 눈을 찔렀다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부모들은 믿었던 딸들인 ‘교육’에게 배신을 당하고 아이들과 함께 광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 청년 실업률이 30%가 넘는다. 그것도 비정규직까지 감안한다면 더높은 실업률이 나올 것이다. 많이 배우고도 배운 지식을 사회에 유용하게 써보지 못하고 사장시키는 우리의 교육에 대한 맹신은 고쳐져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전 국민이 실업자가 되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
이런 악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우선 정부 차원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인력 수급의 균형이다. 먼저 국가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최소한 현존하는 대학을 반 이상은 줄여야만 한다. 대학 진학이 어려워 진학률이 떨어져 고른 인력수급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대학은 취업을 위한 것보다는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줘야 한다. 다음은 학부모들의 의식의 변화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찾게 해줘야 한다. 아이의 적성과 취미를 잘 살펴 적성에 맞는 진로 교육을 해야 한다. 고학력을 지향하는 교육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녀들이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인력수급에 있어 채용 조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고학력이 아니어도 채용에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학력 위주가 아닌 기능과 능력 위주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며 이제 세상이 변했음을 알자. 이제는 예전처럼 고학력일수록 원하는 일자리를 골라가던 시대가 아님을 알자. 내 아이만은 백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빠지지 말자. 초등학교 입학에서 대학 졸업까지 16년의 시간 투자와 많은 돈을 투자하여 키운 자녀가 비정규직이나 백수가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어리석은 판단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말아야 한다. 교육에 대한 맹신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다가 뒤늦게 깨우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막내딸 코델리아처럼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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