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5 20:15:1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칼럼

망각(妄覺)에 묻힌 전자교과서

이진만 철성중학교 수석교사
/이진만철성중학교수석교사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5년 04월 30일
ⓒ 고성신문

2011년 6월에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 개혁을 위해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2015년까지 모든 종이교과서를 전자교과서로 바꾸겠

다는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전자교과서(e-Textbook) 사용은 가히 교육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정책이었다. 언론에서는 대대적인 정부 홍보를 했고 교사들은 시범학교를 찾아다니며 디지털 교육에 대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지금쯤 학생들은 모두 전자교과서로 공부하고 있어야 하고, 학교 현장은 디지털 교육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그냥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말장난이었다. 국정교과서 집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으로 볼 때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망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선 전자교과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교육환경 개선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부터 의문이었다. 최소 몇 년의 공백이 있는 종이교과서보다 콘텐츠(contents)만 교체하면 급변하는 세상을 담아낼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교과서의 검정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립써비스에 불과했다.
아무리 검토해 봐도 시골 바닥에 묻혀 사는 필부의 눈에도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여서 2011년 8월 26일자 고성신문에 전자교과서 시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때만 해도 정부 정책에 태클을 거는 정도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날고뛰는 인재들이 모인 교육부에서 내놓은 정책을 일개 교사가 아니라고 했으니 누가 봐도 생뚱맞은 트집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이 틀렸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정부 발표 4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몇 명이나 될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정책을 발표하고 많은 사람들이 준비에 헛된 시간과 돈을 허비한 책임은 누가 질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된 국가 정책을 불과 4년 만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따지지도 않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육부가 이렇게 사기성이 농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국민을 아주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 가진 망각증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공약이나 정책을 준비나 대책 없이 내놓고 파기(破棄)를 죄의식 없이 하는 이유는 쉽게 용서하고 잊기를 잘하는 우리 국민들의 기질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우선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공약(空約)을 예사로 내뱉는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과 쉽게 잊어버리는 망각증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듯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최근의 세태를 보라.
우선 나라의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부터 약속 어기기를 예사로 하고 있다.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기초연금’, ‘전작권 전환’ 공약 등, 대통령 선거에서 내놓은 굵직굵직한 공약들을 잇달아 파기하고 있다. 그 뿐이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홍준표 지사도 선거 공약에서 무상급식을 국민의 뜻이라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얼치기 좌파의 공약’이라며 스스로 자신을 얼치기 좌파로 만드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그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얼마동안 일부 국민들의 문제 제기가 있겠지만 곧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정치적 사안에 묻힌다. 워낙 파장이 큰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나다 보니 우리 국민들의 기억력은 한계에 부딪친다. 대통령의 공약 파기는 성완종 리스트와 총리 사표로 잊혀지고, 홍준표의 공약 파기는 불법자금 수수 여부에 덮여 버렸다. 이렇듯 아무리 큰 사안도 몇 달을 가지 않는데 하물며 4년 전의 교육 정책을 누가 기억하고 따지겠는가?
세상사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특히 교육의 중요성은 예로부터 ‘백년지대계’라는 말로 대변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을 대하는 정치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그 말이 무색해질 만큼 교육 정책은 누더기가 되어 있다. 교육과정이 일회용품도 아니고 15년 동안 무려 열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3개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많은 시간과 에너지만 허비한 채 1회용으로 폐기된 교육 정책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부지기수이다. 이젠 교육까지도 정쟁(政爭)에 이용당하거나 휘둘리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4년 전 정부의 발표를 믿고 전자교과서 시대를 준비해온 출판사나 IT업계는 벙어리냉가슴 앓듯 울고 있겠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세상이다. 책가방이 필요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학생들에게 홍보해온 교사들이 부끄러움으로 입을 닫고 있어도 아무도 변명해 주지 않는 세상이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공직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새삼 엉터리 정책을 내밀었던 전 정권의 부도덕성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반성이 있어야만 잘못된 관행을 고칠 수 있다. 물론 모든 공약(公約)이 다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것이 거짓이나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이나 실적을 목표로 무책임하게 정책을 내놓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공약이나 정책을 내놓도록 하자.
그리고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선거 때면 나오는 공약이나 정책은 반드시 기억하고 잘못된 것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묻도록 하자. 지난 일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낸다고 의아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반드시 되짚어야만 위정자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보거나 속이는 행태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진만철성중학교수석교사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5년 04월 30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