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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공무원들을 위한 변명

이진만 논설위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4년 10월 02일
ⓒ 고성신문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후 5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특별법 제정을 두고 국민들 사이에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사고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보고 있으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유사 이래 최고의 인재(人災)라고 할 만큼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 드러난 비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번 참사를 두고 가장 보기 흉한 모습은 책임 공방이다. 처음엔 정부의 컨트롤타워의 존재와 책임을 따지더니, 일순간 침몰의 모든 책임을 떠맡은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떠오른다. 사고 이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배를 가라앉게 한 ‘유병언’의 책임은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문제는 구조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충분히 조난자 모두를 구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300여 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만 했다. 그러나 정부는 하위직 공무원 몇 명만 책임을 물어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선언했다. 한때 고위당국자의 책임까지 운운했지만 그들은 한 명도 세월호 문제로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는 대통령의 부재(不在)나 컨트롤타워에 대해서는 진실과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자신들의 무능함을 공무원들의 탓으로 대신 돌렸다.
물론 이번 사건의 중심에 공무원들의 비리와 무사안일한 대처가 있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아이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교사들의 책임도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아보라. 유병언과 비리로 얽힌 사람들은 일명 ‘관피아’나 ‘해피아’라고 불리는 패거리들과 고위 공무원들이지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는 말단 공무원들은 아니다. 사고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는 제 기능을 못했고, 재난 현장의 최고 명령권자인 선장은 아이들을 배에서 기다리게 했다가 죽음으로 몰고 갔다. 거기에 비해 사무장을 비롯한 일반 직원들은 승객을 구하려다 같이 희생을 당했다. 배에 탄 교사들 역시 자신들만 살겠다고 뛰어나온 것이 아니고 아이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하위직 공무원들이나 교사가 무슨 힘이 있으며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죄가 없다.


어떤 이는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꾸짖는다. 그러나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탓하기 전에 이들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의 행정시스템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무적인 일 외에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정부의 행정시스템이 ‘상명하복(上命下服)’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들에게는 창의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창의성을 내세웠다가는 퇴출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잘못된 것이라도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면 따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나마 말단 공무원들이 이런 폐단을 개선하고 상급 관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조차도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시스템이 아니던가?


많은 젊은이들이 꿈꾸는 인기 직업 중의 하나가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소박하지만 안정적이고, 성취감은 적더라도 미래를 예측하면서 삶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깨나 한다는 인재들이 공무원을 하겠다고 모인다.
그러나 어려운 난관을 뚫고 공무원이 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가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 말단 공무원들은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다. 지방자치단체 민원실에 가보라. 주민들에게 큰소리치는 공무원은 없다. 까다로운 민원 하나 들어오면 그저 벌벌 떤다. 어디 가든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에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대신 공무원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정치적 중립, 겸업 금지, 노조 활동 제한 등의 각종 족쇄만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런 공무원들에게 국민들은 다시 돌을 던지고 있다. 여론의 흐름도 심상찮다. 세월호 침몰 이후 전국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안타까운 희생을 추모하던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서, 그 정도면 됐으니 그만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제 잊을 것은 잊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정부와 정치권의 구호가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공무원들의 무능함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를 구실로 하여 공무원들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무원 연금법을 여기서는 깊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연금법 개정의 핑계가 역겨워서 몇 마디만 하자면 우선 정부와 언론이 공무원 연금에 대해 국민들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퇴직 공무원들의 연금 수령액이 너무 높다고 한다. 그래서 국고(國庫)가 바닥나 국민들의 혈세를 줄이기 위해 연금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인데, 그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전국의 100만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매달 넣는 연금 납입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정부에서 가져간 돈만도 25조1천613억원이다. 왜 그 돈은 돌려주지 않는가? 먼저 정부에서 가져간 연금을 이자까지 붙여 돌려준 후에 다시 연금법 개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세간에서 말하는 연금 월 300만원 수령도 정부의 입맛에 맞춘 언론들의 부풀리기 낭설이다. 연금 300만원은 소위 고위직이라 불리는 4급 서기관급이 30년 이상 근무했을 때의 이야기로, 6급 이하의 하위직 공무원들은 150만원에서 200만 원 정도를 받을 뿐이다. 더구나 퇴직금이 연금에 포함된 것은 숨긴 채,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아닌 국민연금에 맞추어 많고 적음을 따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도 손가락질 받는 공무원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주민들을 위해서 쓰레기 청소를 하러 다니고, 가뭄이나 홍수 때 나가서 몸을 아끼지 않는 대민봉사를 하고, 민원인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들어주는 사람들, 이렇게 나라의 근간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다. 그들이 아니면 누가 국민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겠는가? 오늘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사기를 좀 올려주면 안될까?
공복(公僕)을 적으로 만들고, 공복의 기를 죽여 얻을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필자의 눈에는 그저 국민들의 관심을 세월호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4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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