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의 나이를 조금 넘다 보니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
어느 날엔가 고향을 생각하다 어렸을 적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필자가 60년대 말인 국민학교 1~2학년 때의 일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또 늘 동네 사람들의 입에 붙어 다니던 말 중에 ‘오오’라는 말이 있었다. 과연 이게 무슨 말일까? 사투리도 아닌 듯 표준어는 더더욱 아닌 듯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오오란 존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오란 말이 하도 궁금하여 인터넷에 ‘오오(오호)’를 아무리 검색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오오(오호)는 찾을 수가 없었다. 오오를 까마득히 잊고 있던 참에 지난 8월 18일에 경남방언을 연구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경남방언연구보존회’의 총회가 통영에서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함안의 한 회원이 혹시 ‘오포분다’란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걸 알지 못해 모른다고 하면서 뭐냐고 물었다.
정오가 되면 시내나 읍내 중심지인 경찰서나 소방서에서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는데 그걸 ‘오포’라 한다고 하였고 그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오포분다’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제야 어린 시절의 오오가 생각이 났다. 총회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컴퓨터 인터넷을 켜고 ‘오포분다’란 검색어를 넣어보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필자가 알고 있던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인 ‘오오’가 바로 ‘오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나 잡힐 듯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기에 참으로 반가웠다.
내친 김에 고성에 사는 집안의 60대 형님에게 오오에 대해 물었더니 자기도 ‘오포분다’란 말은 쓰지 않고 ‘오오분다’란 말을 썼다고 하였다. 통영의 지인과 거제의 지인에게 물어도 오오분다란 말을 썼다고 했다. 또 고성에서는 오오(오포)를 불었던 곳이 고성경찰서였으며 가까운 통영은 소방서에서 오오(오포)를 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통영, 고성, 거제 등지에서는 표준어 ‘오포(午砲)=정오포(正午砲)’를 ‘오오’라고 한 반면에 함안, 진주, 창원 등지에서는 원래의 표준어대로 오포란 말을 썼다. 그런데 고성으로 그 말이 전해지면서 오오란 말로 변이된 채 그 변이된 방언이 통영과 거제로 그대로 전해져 오오란 방언으로 굳어진 것이다. 즉 다른 지역에서는 표준어와 같이 오포란 말을 쓰는 데 반해 고성, 통영, 거제는 오포의 변이형인 오오란 독특한 사투리로 정착되어 그 지역 사람들에게 널리 쓰였던 것이다.
정확히 낮 12시가 되면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는데 그걸 우리는 오오라고 했고 그 시간에 그 소리가 들려오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집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 시간에 맞추어 밥을 차려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오오는 하루 일과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오오(오포)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전국적으로 널리 울려 퍼졌는데 원래의 오포는 사이렌과 거리가 먼 대포의 일종이었다. 정오를 알리는 대포 즉 ‘오포(午砲)’를 쏜 지역은 1887년 10월경에 인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서울, 부산, 목포, 평양으로 확대되어 나중에는 전국으로 확대된 것이다. 처음에는 오포를 쏘다가 그 오포 소리가 너무 요란하고 때로는 불발이 되어 정확한 시간에 오포를 쏘지 못하는 일도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민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대포를 쏘는 일은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 측면에서 거추장스러웠는데 마침 서양에서 간편한 사이렌이 들어온 이후부터는 오포를 쏘지 않고 사이렌을 불게 되었다고 한다. 정오를 알리는 오포를 쏠 때는 ‘오포쏜다’고 하였으나 오포가 없어지고 정오를 알리는 오포 대신 사이렌이 울리게 되면서는 ‘오포쏜다’라는 말 대신 사이렌을 부는(울리는) 소리가 들리니 그때부터는 오포쏜다란 말 대신 ‘오포분다’란 말을 널리 쓰게 된 것이다.
오포(오포)의 정체를 좀 더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오포는 정오뿐만이 아니라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 밤 11시 30분이 되면 야간통행금지 예보 시간에 한 번 불고 30분 후 자정에도 어김없이 오포를 불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반드시 정오에만 오포를 부는 줄 알았었는데 집안의 형님에게 물어보니 야간통행 금지 30분 전과 야간통행금지 시간인 자정에도 오포를 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1~2학년의 나이였으니 자정 무렵에는 잠들어 있는 시간이었던 탓에 그 시간에 불던 오포는 아예 몰랐던 것이었다. 오포는 대체로 하루에 세 번 정도 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주변에 널린 게 시계이고 누구나 휴대전화가 있어 언제든지 시각을 알 수가 있지 않은가?
어쨌든 오포(오오)는 혼란스러웠던 시대 때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시계가 몹시도 귀하거나 없어서 수탉의 울음소리로 대체적인 시간을 가늠하던 시절의 서민들에게는 시간을 알려주는 소중한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시계가 점차 보급되고 라디오가 나오면서 정각 무렵이 되면 뉴스를 알리기 전에 정각을 알려주기 시작하면서 오오(오포)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