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기 해전 전승지인 적진포가 거류면 화당리가 확실하다며 지방문화재로 지정,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성문화원(원장 도충)은 지난달 24일 고성박물관에서 2014년 국내학술대회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지역 수군진보와 남촌진(적진포)’을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고성문화원이 주최하고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지역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고성군, 부산 실상사가 후원해 이뤄졌다.
고성문화원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기 해전 전승지인 적진포의 위치와 지명을 규명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적진포해전의 위치에 관해서는 고성군 거류면 당동만 화당리, 거류면 신용리, 동해면 내산면, 통영시 광도면 적덕동 등으로 의견이 나눠지고 있었다.
심봉근 전 동아대학교 총장이 기조발표가 있었다. 기조 발제자인 고성출신인 심봉근 박사는 영남 사학계의 거두이며 통제영 복원 사업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 박사는 지금까지 적진향과 적진포, 남촌진에 대하여 각종 문헌자료와 고지도 및 고고학적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해 볼 때 적진포 또는 남촌진이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일대에 위치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했다.
가배량진이 지금의 가오치 선착장에 있는데 이후 옥포로 이진했다가 성종 22년 다시 축성을 쌓아 권관을 두어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 폐진되었는데 남촌진의 기록이 광해군 11년(1619) 남쪽 도선촌(도선부곡)의 진을 이설하여 남촌진이라 했다. 즉 가배량성이 이진을 하여 남촌진이 되었다.
‘대동지지’에는 전진향積珍鄕은 동쪽 20리에 적진포는 동쪽 30리에 표시되어 있다. 심 박사는 직진향과 남촌은 동일한 곳이라며 향은 고려시대의 부곡이며 지금의 면 소재지로 보면 타당하다고 했다. 아울러 적진포는 남촌포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당리의 굴강과 우물, 토성, 권관의 비석 등 고고학적으로 볼 때 적진포는 화당리라고 결론내었다. 또 적진포의 적이 한자가 다른 경우가 있으나 이는 많은 자료들에서 다르게 적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심봉근 박사는 화당리의 토루와 굴항지 등이 복원가능할 정도로 훼손이 심하지 않아 지방문화재로 지정, 영구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논평에 나선 심정보 한밭대학교 교수는 석포환이 다수 보이는 등 심봉근 박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무관 9품의 별장이 관할하는 공해로는 많은 시설과 건물이 있는 등 남촌의 성격에 의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영조 이후 암행어사의 복명과 마을입구의 진장의 선정비 등을 볼 때 높은 직책의 인물이 내려 왔고 그에 걸맞는 시설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석당학술원 최영호 교수도 적진포의 적자는 동음이자로 공간적 위치, 해안포구로서 기능, 지형적 입지조건에서 동일공간으로 보았다. 최고 지휘관의 선정비나 화당리의 옛 지명 등을 통해 현재의 화당리가 맞다는 의견이었다.
발표와 논평 후 질의응답의 시간이 있어야 하나 일정상 생략이 됐다. 이에 반발하는 참석자들이 있어 질의응답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고성군의 향토사학자인 류홍렬씨는 적진포가 거류면 신용리라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직까지 학자들과 연구자들의 의견이 달라 더욱 심도있는 연구와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