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제1기 고성박물관대학 마지막 12강이 지난 17일 고성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이번 강좌에는 최춘욱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이 초빙되어 ‘고성의 불교문’에 대한 주제로 진행됐다.
최 위원은 고성에는 문수암, 보광사, 보현사, 석불사, 옥천사, 운흥사, 장의사 등 많은 사찰이 남아 있다고 했다. 각 사찰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높이 128m의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2호)이 있는 석불사를 제외하면 대체로 조선후기 유물이 많은 편이다.
이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 의승군에 대한 왕실의 배려와 피폐해진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목적, 전쟁으로 소실된 불사의 재건을 중심으로 활발한 불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17세기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불교조각들이 조성되어 당시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말선초기의 고성 출토 금동불감
현재 유리원판 사진만 남아 있는 고성의 금동불감이 있다. 불감은 불상을 안치한 감실로서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이후 등장한다. 불감의 종류는 매우 많아 호신불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5cm정도의 작은 불감에서부터 20㎝의 큰 불감까지 다양하다. 재료 또한 금동제부터 은제, 나무 등 다양하다.
고성 출토 금동불감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유행했던 전각형 불감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불감은 여닫이식이고 이를 열면 보살상 한구만 봉안되어 있는데 이런 사례로서 유일한 작품이다.
보살상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으며 길쭉한 신체비례에 개성있는 얼굴 모습이다. 원형의 어자문을 찍어 군의 착의법이나 목걸이 등 고려후기의 불상과 차이를 보여 고려말기에서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옥천사
옥천사에는 매우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고성의 대표적 사찰이다.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의 불교조각만이 아니라 보물495호로 지정된 임자명반자가 있고 1708년과 1776년경 범종을 비롯하여 괘불, 각종 불화, 불구 등이 전한다.
대웅전에는 1670년 제작된 석조아미타삼존불좌상(높이 120m)이 봉안되어 있고 명부전에는 1670년 제작된 석조지장삼존상과 시왕, 판관, 동자상들이 있다.
명부전 불상은 시왕에서 나온 발원문에 강희9년인 1670년 경옥을 중심으로 총 4명의 화원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나한전의 협시보살좌상은 18세기에 조각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색난과 관련된 조각승에 의해 제작됐으리라 추정된다. 색난은 인근의 운흥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을 1683년에 제작한 바 있다.
#1730년명 운흥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불산 내원정사 목조관음보살상은 복장발원문에서 원래는 고성 운흥사에 봉안되었던 작품임을 알려주고 있다.
1730년 운흥사에서 의겸, 행종, 채인비구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의겸은 당대 최고의 불화승으로 운흥사 수월관음도를 조성했는데 불화승이 조각도 함께 남긴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원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짧은 백위를 머리에 쓴 점에서 수종사 금동보살상과 유사한데 통견식의 대의를 입었으며 윤왕좌의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으며 목에는 실제의 목걸이를 걸쳤는데 이는 후대에 만들어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의겸의 이 보살상은 같은 시기 다른 작품보다 도식화되지 않은 부드럽고 유려한 옷주름의 표현이나 잔주름이 잡힌 군의의 옷주름 등에서 비교되는 작품이 없는 특이성을 보인다.
머리에 짧은 백의를 쓴 대표적인 사례로서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승 중의 한 사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의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