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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자에게 告함

-시련을 극복하면 영웅이 된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3년 01월 28일
ⓒ 고성신문

김화홍 논설위원


 


새해 벽두부터 뉴스보도는 우리나라 실업자가 380만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며 그

중 2/3가 청년실업자라고 전한다.
실업자란 일자리를 잃은 사람으로 그 삶의 자체가 비참해지고 희생마저 더하게 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연이어 슬픈소식인즉, 우리 경남에도 29, 28, 27세 되는 대학출신의 꿈 많은 청년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다가 죽음을 택한 안타까운 사연이 방영되었고,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회사에 입사키 위한 이력서가 현실의 아픔을 더했다.
실업자 문제는 어제 오늘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더더구나 세계적 경제침체와 맞물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실업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대기업 총수들과의 합의 도출에 노력하고 있었음을 안다.
뿐만 아니고 지금도 영하의 날씨에 쌍용자동차 해고 근로자들의 농성과 그들의 몇 몇이 지상 50m 이상의 고공에서 생명을 담보로 한 극한 투쟁에 임하고 있어 정치계는 회사와의 타협에 돌입하고 있는 사실도 방영되고 있었다.



나도 공직을 떠나 백수로서 직장을 잃고보니 삶 자체가 한없이 허전하고 몇 푼 안되는 연금에 목줄을 매고 있으니 계획없는 노년생활이 쓸쓸하기가 끝이 없어 보인다.
칠순이 넘은 늙은이 삶의 그 공백이 이렇게 큰데 하늘을 마시고 지구를 차고 나르는 젊은이들의 실직(失職)이 가져 오는 인생의 허무감은 오죽하겠는가.
새해의 일자리 창출이 밝은 것이 아니라고 하니 실업자의 직업 알선 문제가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나는 이 나라 젊은이들을 가르쳤던 고등학교 교장으로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선현의 귀중한 생명수의 속담을 전하면서 극한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의 영웅이 된 몽골의 징기스칸을 소개하며 그가 투혼을 바쳐 행한 역사의 가치성을 몸담아 재기의 힘을 불어 넣어 오늘의 청년들을 키워 보자고 다음 내용을 적어본다.



맹자의 ‘고자’편에 “하늘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고자 할 때는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몸을 힘들게 하며 그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 삶을 빈궁하게 하며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방해한다. 이것은 바로 그 자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그 성질을 누르게 하여 그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실로 맹자가 죽은 때로부터 1500년 뒤인 12세기 중반에 몽골초원에서 태어난 칭기즈 칸 테무친이 위의 대목을 읽었다면, 그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신의 위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칸이 되어 유라시아를 호령할 화려한 미래와 정반대로, 어린시절의 테무친은 참혹한 소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긴박감의 연속이었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호흡하며 살았어도 그 기에 질식되지 않고 그는 꿋꿋이 ‘나의 길’을 걸어갔다.
그것이 본인은 물론 유목민인 그의 민족과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몽골족은 몽골초원과 만주의 경계인 심안령 산맥 북부의 산림지대로써 그들은 수렵, 채집에 종사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유목민이 없다.(몽골비사)
칭기즈 칸의 성공을 가능케 한 요인을 분석해보면, 첫째, 그는 시련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종족내부의 고립에서 힘을 길러 통치자의 아버지 지위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둘째,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자세다.
아내를 빼앗긴 뒤에(약탈혼) ‘메르키트족’과의 전쟁을 치밀히 수행하여 아내도 되찾고 칸의 지위도 얻었다.
셋째,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최대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몽골 왕족의 혈통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이웃의 ‘토크릴’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군사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다.



넷째, 객관적 요인들이 성공에 기여했다.
13세기 그가 등장할 때 종족 통일의 열망이 증대되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칸은 리더십을 획득 할 수 있었다.
그 시대에 몽골초원 이남에는 금-남송-고려의 세력 균형이 존재했으나 어느 나라도 절대 권력을 잡지 못한때에 그의 군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1200년대에 불어닥친 가뭄과 추위로 고원이 황폐되고 경제가 악화되어 유목민들의 대외 팽창을 열망하게 되고 성격적으로 사나워진 것도 그의 군대를 강화시킨 요인이 되었다.
다섯째, 그는 주관적 요인으로써 강인하며 지혜로웠고 정이 많았다.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자비롭고 용맹스러웠다.
공정하며 왕의 직위를 현명하게 수행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잡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타임지는 칭기즈 칸을 위대한 왕으로 평했다.



덧붙여 왕은 사치를 멀리하고, 절제를 생활화하였으며, 양치는 목동이나 말몰이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험한 음식을 먹었다.
전쟁에 임할 때는 병사들과 같이 모포한장을 덮고 잤으며, 문제가 있으면 병사들과 함께 해결했고, 겸손함과 아울러 자연신(산)을 향해 기도하며 자연의 순리를 따랐다.
전쟁에 임하여 승리한 배경을 보면 첫째, 상대국에 반드시 정중하게 사절단을 보냈다.
이유인즉, 기후의 영향으로 10여년마다 가뭄과 한파가 닥쳐 수 백 마리의 가축이 죽어갔고,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모면키 위한 진심의 사절단이었다.
그러나 상대국은 이를 악용하여 몽골을 지배하려 하였다.
결국 칭기즈 칸은 안정적인 교역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이웃나라들과의 우호적인 환경조성에 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상대국의 호전성에 정당방위로 반격을 가한 것이다.
칭기즈 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믿음과 신뢰로 모래알처럼 흩어진 몽골사람들을 단합시켰다.



둘째, 조직 성공경영의 열쇠는 빠른속도와 불평등 해소에 있었다.
반드시 교역단(정보군)으로 상대국 깊숙이 파고 들어 그들의 동태를 파악한 다음 공격에 임했다. 말하자면 정보전이었다.
키운 말타고 이동하는 간편한 기병체제며 무기장비, 군량 등의 무게를 줄여 기동성을 높였고 (유럽군은 70㎏, 몽골군 7㎏) 전리품을 공동으로 배분(음지에 고생하는 사람들 포함)하여 전투력을 높였다.
식량은 소고기 육포로써 일년치의 분량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상 간략하게 시련과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슬기롭게 극복한 영웅의 이야기를 추려 보았다.



이 땅에 고생하는 실업자와 노동자들이여!
파고 높은 현실을 피하지 말고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역설적 말인즉, ‘필사즉생(必死卽生)이요, 필생즉사(必生卽死)라, 죽기를 각오하면 살것이요, 구차히 살기를 원하면 죽는다”는 철학을 실천에 옮기면서 차가운 겨울에 조용히 실력을 쌓아 봄바람 해빙을 맞아 각자의 바라던 꿈과 희망에 결실을 맺어다오.
오늘의 아픔을 하늘이 나의 출세를 위해 시험대에 올려 놓은 좋은 기회로 삼아 오늘 아닌 내일을 향해 내 삶을 개척해 보는 지혜와 슬기를 길러나가면 좋은 날이 올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한국의 청년들이여, 분명 조국은 너희들을 기다린다. 아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3년 0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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