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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사라진 우리밀 붕괴에서 부활까지 2. 우리밀 살리기 발원지 고성밀의 현주소 3. 제2의 녹색혁명 우리밀 살리기이다 4. 우리밀 생명환경농업과 연계육성해야
사라져가던 우리밀이 다시 되살아 나면서 제2의 녹색혁명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우리밀 자급률을 10% 끌어올리겠다는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뒷짐만 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태풍 등 재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곡물 생산이 더욱 어려워진 현실에서 수입개방으로 외국 곡물에 의존하는 것만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현시점에서 우리밀의 냉철한 분석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해 밀 수입이 350만에서 400만톤 수입을 하는데 반해 국산밀 생산은 2%대에 그치고 있으나 2012년 현재 재고량이 3만톤이 남아 있어 2012년 밀 수매를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밀 수매 중단으로 농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밀 자급 10%까지 달성 하겠다던 목표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안일한 정책이라는게 대다수 우리밀 재배농가들의 지적이다. 지금 정부의 정책은 농민의 희생으로 값싼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이 수출되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우리밀도 앞으로 식량안보와 녹색혁명차원에서 육성시켜 나가야 한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 우리밀영농조합을 찾아 우리밀 재배와 생산 유통을 어떻게하고 있는지 기획취재 보도한다.
# 구례우리밀가공공장의 출발과 성장과정
전남 구례우리밀영농조합을 설립한 최성호 대표는 우리밀살리기의 산 증인이다. 그는 1990년 한국가톨릭 농민회 1세대들이 대전 가톨릭농민회 회관에 모여 고향으로 돌아가 국민 모두가 함께하는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사는 운동, 생명운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목표로 민주화운동과 농민 권익 투쟁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밀 종자 14kg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661㎡(200평) 밭에 우리밀을 파종했다. 이러한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자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동안 수입산과 국산 밀의 가격 차이도 6배에서 2배로 좁혀졌다. 1990년대 수입 개방의 시대에 구례에서는 특용작물, 비닐하우스, 오이생산이 평당 5만원의 고소득을 올린 반면 우리밀은 1평당 1천500원의 수익 밖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밀 생산을 거부 할 수밖에 없었다. 최성호 대표는 농민 운동을 하면서 변화는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 농민회원들과 광의면장을 설득하여 우리밀 생산의 필요성을 교육하게 되었다.
밀 수입이 350~400(40kg)만톤이 들어오고 우리밀보다 6배 싼 가격으로 수입된 밀은 우리나라 밀가루 시장을 100% 장악해 버렸다고 한다. 구례 지리산 산골 구만리 661㎡(200평) 밭에서 자란 밀 싹이 돋아나면서 수입밀과 우리밀 경쟁은 시작 됐다. 14kg에서 시작된 우리밀은 200~600가마(40kg) 생산이 늘어나면서 우리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제분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고, 전국을 돌며 옛날 물레방앗간 소형 제분 시설을 찾아보았으나 그 흔적마저도 없었다. 대한제분, 동아제분 등 대형 수입밀 제분 회사들은 수백억 규모의 시설로 소형제분 공장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광의면장으로부터 1읍면 1특품사업단 사업을 신청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5번만에 사업이 확정돼 총 사업비 1억4천만원으로 창고 200평, 제분시설, 국수기계, 누룩기계 등을 설치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1994년 3억원을 투자하여 제분 롤러밀 2대, 흔들 체 4대를 설치하여 15년간 제분을 해 왔다.
우리밀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높아지면서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의 제1구례공장, 제2무안공장, 제3합천공장, 제4정읍공장, 제5아산공장에서 우리밀 제품을 생산 하였다. 하지만 1997년 IMF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면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부도나면서 외부자본에 의존했던 공장들이 다 폐쇄 됐다. 제1구례공장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산, 가공, 유통 사업을 우리 힘으로 전환하면서 제2의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2001년 우리밀 생산이 거의 중단되고, 2002년 2천500가마, 2003년 5천가마의 우리밀 생산이 다시 시작됐다. 이러한 생산조직의 저변확대와 소비자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2007년 20억원의 사업비로 시설을 현대화 하고 규격화하여 1일 제분 300가마(40㎏), 1년에 4천톤 제분 시설을 갖추면서 밀가루 품질을 향상 시켜 수입밀과 경쟁할 수 있게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광의면 우리밀영농조합법인 우리밀가공 공장 규모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았지만 구례의 우리밀 생산자 50여명이 출자해 설립한 이 가공공장은 상징성이 큰 곳이다.
이곳은 제일제당, 한국제분, 밀다원 등 국내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가장 규모가 큰 제분공장이면서, 농민들이 출자해 국내 최초로 세운 우리밀 제분 전용 가공공장이다. 제분된 우리밀가루가 속속 포장지에 담겨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배출되고 있었다. 광의면 우리밀영농조합법인의 최성호 대표이사는 OEM방식으로 사조해표에 우리밀가루를 납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밀벗’이라는 자체 브랜드로도 유통된다. 가루류와 더불어 건빵, 국수, 라면 등 가공품도 생산하고 있다.
우리 농민들이 계약재배를 통해 수확한 밀 가운데 품질 좋은 것만을 골라 씨눈과 함께 밀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식품안전경영 시스템인증을 통한 품질향상으로 수입밀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도 갖췄다. 생산제품은 순우리밀 백밀가루와 통밀가루를 비롯 국수와 칼국수, 호분건빵, 통밀라면의 원재료 등이다. 직접 가공 판매하거나 주문자상표(OEM)를 붙여 생협 등 친환경매장과 농협, 신동방, 홈플러스 등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난다. 쌀 못지 않게 우리 식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밀을 되살리고 죽어 가는 우리 땅과 자연과 농업, 농촌 그리고 소중한 밥상을 살리기 위해 우리밀 살리기 운동 구례 공장에서는 우리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특히 우리 밀밭풍경 펜션은 한옥형 특수공법으로 지어져 방한과 방음등 사용자 편의 위주로 시공하여 유럽펜션의 장점과 우리 전통가옥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접목한 전원주택개념의 펜션이다.
앞으로는 지리산, 명승고찰인 화염사, 게르마늄온천수로 유명한 지리산온천, 환경생태가 잘 보존되어 살아있는 생명수가 흐르는 섬진강줄기에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구례에서 난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로 직접 팥국수를 만들어 보고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밀가루를 직접 반죽하고, 채 썰어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방부재나 표백제를 전혀 쓰지 않는 우리밀을 보며 신토불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하현갑 편집국장 사진 김대진 기자
“실질적인 우리밀 육성 대책 내놔야”
최성호 대표 광의면우리밀영농조합법인
구례군 광의면 우리밀영농조합법인은 상징성이 너무 큰 것 같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국내 최초로 세운 우리밀 전용 가공공장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주인공은 바로 가톨릭농민회 1세대인 최성호 대표가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이끈 농민운동가다. 최 대표를 만나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된 배경을 설명 들었다. 최 대표는 1990년 한국가톡릭 농민회에서 더불어 사는 운동(도시와 농촌), 생명운동(무농약. 친환경유기농산물 생산), 우리밀 살리기운동(종자 30만가마 확보)등 3가지 주요 의제로 설정한 것을 강조했다.
국내 밀농사가 죽은 건 개발원조시대 무상밀가루 공급 때문이며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고 나니 7년만에 밀 종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21세기 식량부족 사태에 대비해 밀 종자 30만가마를 확보하자는 목표 아래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전라남도 14kg,전라북도 14kg, 경상남도 14kg 등 11월달 파종해서 분리하기 시작해 생산조직을 위해 집으로 돌아와 661㎡(200평)밭에 밀을 파종했다. 그렇게 해서 다음해 10가마를 수확했다. 수확한 밀은 다시 고스란히 씨앗이 되어 땅에 뿌려졌다. 수확한 밀을 다시 파종하고 거두는 방식으로 종자를 확보하고 밀생산량을 늘였다. 3년쯤 되자 600가마가 생산됐다. 문제는 가공이었다.
우리밀이 사라지자 제분시설도 사라졌기 때문. 1992년 우리밀 가공공장을 지었고 당시 제분시설이란 곡물분쇄기 수준이어서 사람이 직접 체를 쳤다. 1990년대 소형 제분시설을 새로 갖췄지만 밀가루의 품질은 수입 밀을 따라잡지 못했다. 자본도 없고, 제분에 대한 경험도 없고, 많은 고민을 하던 중 광의면장으로부터 1읍면 1특품사업단 사업을 신청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회원들과 회의를 하여 사업신청을 했다. 하지만 전남도청 특품사업 담당자를 만나 사업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 하였으나 거절되어 매일 찾아가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위해 사업단 지정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눈물어린 호소를 하여 5번 만에 사업이 확정되어 총 사업비 1억4천만원으로 창고 661, 제분시설, 국수기계, 누룩기계 등을 설치하여 사업에 도전했다.
국내 대형 제분공장을 돌면서 연구를 거듭한 뒤 2007년 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최신식 제분시설을 도입하게 됐다. 1일 제분 300가마(40kg), 1년에 4천톤 제분 시설을 갖추면서 우리밀가루 품질을 향상 시켜 수입밀과 경쟁할 수 있는 경영을 하고 있다. 구례군 광의면 우리밀 공장은 영농조합원 43명이 참여하고 15명의 일터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구례 농민 400명과 수매 계약을 체결하고 지역민의 소득을 높이며 지역민을 고용함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제2의 녹색혁명을 이끌면서 우리 먹거리를 지켜 나가고 있다.
/글=하현갑 편집국장 사진 김대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