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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지도자는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

이진만 논설위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2년 10월 29일











▲ 이진만 논설위원


며칠 전에 언론에 나온 기사를 보면 고소(苦笑)가 절로 나는 가십이 하나 있다. 아소 전 일본 총리가 방한 중에 우리 대

통령에게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의 배경에 대해 묻자, “진의가 그대로 전달됐다면 보다 더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소 전 총리는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답했다는데,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공감’을 한다는데, 일왕이 와서 사죄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워낙 수가 높은 도인(道人)들의 언행이라 속세의 범인(凡人)들은 선문답(禪問答)을 듣고 있는 듯하다.


우리 대통령의 선문답은 집권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선되자마자 불쑥 대불산업공단 길목에 놓인 전봇대를 들고 나왔다. 일반 서민들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 공감 정책을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한 나라를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 직후 던진 첫 화두로는 뜻밖이었다. ‘아, 이제 서민들도 발 뻗고 사는 세상이 오겠구나’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전봇대 몇 개를 뽑는 것으로 끝났다. 도리어 서민들을 위한 복지비는 줄이는 대신 4대강에 돈을 퍼붓고 미디어법을 강행하는 등, 가진 자들만의 잔치로 지난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 왔다. 그러다보니 집권 초기보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촛불 시위 때도 그랬다. 시위가 한창일 때 대통령은 북악산에 올라 ‘아침 이슬’을 부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직접 사과까지 있어 국민들은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바뀌겠구나’하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시위가 잠잠해지자 정부는 시위대를 위법 처리하는 것으로 변화와 소통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에 답했고, 지금도 촛불 시위는 종북 세력이 무지한(?) 국민들에게 양초를 사주며 선동한 사건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리고 당시 광우병 환자가 추가로 생길 경우 수입을 전면 중지하겠다던 약속도 뒤에 규정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없었던 일로 해 버렸다.
현 정부의 실정(失政)은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도 현 정부와는 거리를 두고 비판을 하고 있다. 권력끼리도 충돌이 일어나는데 민초들은 오죽하랴. 이제 정부와 국민들은 별개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죽하면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시장으로 당선되고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을 정도가 되었을까?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들어서고 주변 국가 어느 하나도 제대로 관계가 좋아진 곳은 없다.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정책으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우리 대통령의 전화도 받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일본과는 독도와 일왕 사죄 문제로 아직도 그 여파가 심각하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다. 처음부터 잘못 잡은 조타(操舵)로 5년 내내 표류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3대 대북 정책 자체가 선문답이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제안이었다. 무엇보다도 ‘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는 신중해야 했다. 북한의 언어는 우리와 개념이 다르다. 북한이 받아들이는 개방은 정권의 몰락을 상징한다. 물론 북한이 개방되어야 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개방’보다는 ‘개선’의 의미를 가진 용어를 선택해야 했다. 굳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용어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3대 대북 정책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구상으로 한반도에 신냉전주의를 가져왔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개인을 중시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요즘은 더욱 그렇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랜 인연도 내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내버리기 일쑤고, 조금이라도 내 생각과 다르면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주기 위해 정치가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아픈 곳과 가려운 곳을 잘 살펴 어루만져주고 긁어주는 것이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국민들의 안전을 살피고,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방향타가 되고, 개인이 아닌 전체를 보도록 식견을 높이는 일을 하는 것이 정치 리더십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기에 당연히 생각들도 다양하다.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그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어야 하고, 그 다양성을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하나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만나면 싸움닭처럼 으르렁거릴 뿐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력들은 모두 사시로 흘겨보고 비방과 권모술수로 짓밟는다. 시정잡배도 대화와 타협이 있고 의리가 있건만 이건 시정잡배보다 못한 모습이다.



곧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로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오신 분 모두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분들이시다. 모두가 우리 국민들을 유토피아에서 살게 해 준다고 하니, 그 말씀대로 본다면 모두가 대통령을 하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신 분들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그런 사탕발림에 한두 번 속아 봤나.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실천 가능성보다는 말이 앞서기 때문이다.
다음 대통령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과 행동이 다른 가식적인 사람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진솔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지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일은 없도록,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영욕을 위해 갈등을 만들고 증폭시키는 지도자보다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어울림과 소통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봇대를 뽑기는커녕, 도리어 정치와 국민 사이에 전봇대를 세우는 사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2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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