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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부자모(嚴父慈母)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이진만 철성중학교 교사

이진만 철성중학교 교사
김대진기자 기자 / 입력 : 2005년 04월 03일
ⓒ 고성신문

예전에……, 그렇게 멀지 않았던 시절에 할아버지의 장죽(長竹) 하나로 모든 질서가 바로 서던 시절이 있었다. 말씀은 않아도 ‘으흠’ 하는 기침 한 마디에

행여나 행실이 잘못된 것이 없었나 자신을 추스르곤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긴 담뱃대 밑에서 자신의 행동을 삼가는 방법을 배웠다.예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가정 교육은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기본을 따랐다.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사리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버릇없고 의존적인 특성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부모들은 엄부자모의 가정 교육을 낡은 교육 방법으로 치부한다.


 


도리어 아이의 기를 살린다며 아이들의 억지를 다 들어주고 잘못이 있어도 꾸중을 하지 않는다. 엄하게 자식을 교육하는 부모는 신세대를 이해 못하는 낡은 사고를 가진 고리타분하고 굳은 사람으로 인식된다.이런 가정 교육의 잘못된 시작은 학교로 이어진다. 가정에서 자신만을 알고 자란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니 당연히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있어 교사는 그저 잔소리꾼으로 보일 뿐이다. 간혹 의욕적인 교사는 회초리를 들어보지만 그마저 ‘말로써 학생들을 따르도록 해야지 어떻게 매를 들 수 있느냐’며 따지는 학부모 앞에서 의지를 꺾이고 만다. 결국은 이기적이고 제 멋 대로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점점 힘들어하고 매사를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최근 ‘일진회’라는 낱말이 세상의 논점이 되어 있다. ‘일진회’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속칭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한다’는 뜻이었는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내 폭력조직을 일컫는 말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부 규율과 행동이 마치 ‘조폭’의 습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섬짓하다.학부모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충격 그 자체’, 혹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무섭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까지 더해지고 있다.


 


어떤 학부모는 교사들에게 학교 폭력에 대한 조사권 내지는 사법권까지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에게 회초리 하나 휘두를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자신의 아이만 생각하는 학부모에게는 회초리 한 대도 ‘폭력’이다.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폭력 교사’로 낙인 찍혀 교단을 떠나야 하는 것이 교육계의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고, 훈계를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사법권까지 휘두르고 싶을 정도로 부아가 치솟을 때도 있다.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교사에게 사법권을 주는 것은 또 하나의 학교 폭력이 될 것이다. 학생 폭력을 없애기 위해 교사의 폭력을 합법화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지켜보기도 참 답답하다. 최근 정부에서 ‘일진회’ 학생들의 사법 처리를 운운하고 있고,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 폭력 해결을 위해 ‘스쿨 폴리스(school police)’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량 청소년들을 솎아내자는 것인데, 학생들의 문제를 사법권에 처리를 맡긴다면 교사가 설자리는 어디가 될 것인가.물론 사태의 심각성으로 볼진대 ‘일진회’ 문제는 ‘학교 안의 문제’만은 아님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학교 밖으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먼저 가정 교육에서부터 새로 문제점을 짚어봐야 한다. ‘문제아는 없다. 단지 그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네일(Neil)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진회’의 문제는 잘못된 가정 교육에서 비롯된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 한 쪽에 음지의 그늘을 만들 수 있도록 토양을 북돋워 준 사람은 ‘작금의 비틀어진 교육’을 손가락질하는 학부모, 곧 ‘우리들’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첨단 과학의 발달로 어제와 오늘이 다른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도리어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기아와 폭력으로 땅에 내버려진지 오래 되었다. 모든 것이 ‘더불어 사는 삶’보다는 ‘이기적인 자신만의 삶’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다시 밝힐 횃불은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이 살아 있는 인간이다. 즉 남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의식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나만 편안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안하무인격의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아이들이 ‘일진회’를 만들어 교육을 더욱 망치고 있는 것이다.

김대진기자 기자 / 입력 : 2005년 04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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