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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대가면 연지리 천황산 안국사에서 쪽빛콘서트와 산사슬로푸드 시식회가 열렸다. 쪽빛콘서트는 김연주 방송인의 사회로 정호승 시인의 ‘우리 시대 대 표 시인과의 산중한담’, 남미경 시노래 가수의 ‘정호승 시인의 시를 노래하다’로 시작됐다. 정호승 시인은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낭송하며 산산조각 나더라도 산산조각을 가질 수 있으며 모든 것은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요지의 한담으로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시간이 됐다.
정일근 시인의 축시낭송, 김현성 가수의 축하공연, 김종덕 경남대교수·국제 슬로푸드 심사위원의 산사덕담 ‘느리게 먹고 건강하게 사는 이야기’가 이어졌으며 이윤석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의 ‘한국의 춤, 고성의 춤’으로 진행됐다. 특히 정일근 시인이 만든 축시 ‘쪽빛’을 김현성 가수가 곡을 붙여 함께 노래하는 시간은 참가자들의 큰 호응이 있었다. 또한 그 곡을 직접 부르고 싶은 참가자가 나와 독창을 했다. 그 중 양산에서 온 8살 어린이의 독창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천황산의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이 빚어낸 안국사의 된장과 간장으로 만든 슬로푸드를 맛보며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또한 봉사자가 준비한 쑥떡과 과일, 식혜 등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잔치 한마당이 됐다. 한편 ‘안국사 쪽빛을 찾아온 고래들’이란 주제로 천양희 시인을 비롯한 30명의 시인의 고래시·사진을 전시하는 특별시·사진전도 준비돼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산산조각 나면 산산조각을 가지면 되지 않는가”
우리 시대 대표 시인과의 산중한담 - 정호승 시인
산중한담. 산 속에서 한가로이 나누는 이야기라는 뜻이리라. 그동안 신달자 김용택 도종환 시인에 이어 ‘밥값’의 정호승 시인과의 산중한담을 나누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안국사에 오신 소감을 묻는 사회자의 말에 정호승 시인은 담담히 대답한다.
“저쪽에 앉아 생각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인가. 부처님이 왜 우리 삶 속으로 오셨는가. 사는 게 불쌍해서 나를 위해 오셨다. 사는 게 너무 형편없어 말씀과 실천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안국사의 바람이 좋더라. 삶의 바람, 쪽빛 바람을 주신다고 생각했다.”
사찰의 마당은 5월임에도 불구하고 땡볕으로 사람들을 그늘 밑으로 밀어붙였다. 퍼뜩 왜 사람들은 뜨거운 햇빛을 먼저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바람을 왜 느끼지 못했을까?
정호승 시인의 대표작은 밥값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시를 썼는지 묻는다. “올해 보니 시를 써 온지 40여년이 되었다.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과연 나는 밥값을 하고 있는지,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밥값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라고 한다. “여기 모이신 어르신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은 산산조각 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도 언제가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인간의 관념이다’고 하셨다.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하면 산산조각 난 것이고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이다.”
산산조각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왠지 가슴이 먹먹하다. “몇 년 전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와 보리수 나무가 있는 보드가야를 여행한 적이 있다. 막연히 그런 유명한 곳이니 엄청나게 큰 건물이나 불당이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황량한 벌판이었다. 조그만 연못과 작은 보리수, 아쇼카 대왕이 세웠다는 석주 외에는 별단 것이 없었다. 그 곳에서 한 할머니가 파는 흙으로 만든 부처님상을 순례기념품으로 샀다. 집으로 돌아와 계속 걱정이 됐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다.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날까 두렵다. 부처님이 준엄한 목소리로 부른다. 무릅걸음으로 다가가니 부처님이 머리를 쥐어박는다. 산산조각나면 산산조각을 가지면 되지 않는냐고 말씀하신다.” 요즘은 어떤 산산조각이 났냐는 물음에 시인은 말한다.
“항상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다만 예전에는 산산조각이 난 것을 다 버렸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다. 예전에 종 만드는 이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종이 하나의 깨진 조각이 있으면 깨진 소리가 나지만 산산조각이 나면 깨진 조각을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 고통의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으려 한다.”
시인의 시에는 불교와 인연이 스며들어 있다. “25, 6년 전 운주사의 불상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못생긴 얼굴은 민중의 얼굴이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영원을 생각하는 듯 했다. 속으로 울고 위안을 받았다. 불교의 책을 많이 읽으려 한다. 부처님 말씀은 은유의 말씀이며 시도 은유의 세계다. 부처님 말씀을 작품 속에 녹여 넣으려고 항상 노력해 왔다.”
산중한담을 끝낸 시인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마치 무거운 짐이라도 벗은 듯한 모습이다. 시인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인은 더 많은 말이 말의 홍수 속에 자신이 흔들리는 것이 두렵고 꺼려진다고 했다. 기자는 시인의 말에 가슴속으로 동의했다. 시인은 절제된 시 속에서 인간과 삶의 비극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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