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2 21:32:3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인터뷰

有法無一法 有門無一門 本來無一法 豈於有一門 유법무일법 유문무일문 본래무일법 기어유일문

신라 천년고찰 금태산 계승사(金太山 桂承寺) 회주 금산 법진 스님
황수경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2년 05월 29일
ⓒ 고성신문

오는 2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금태산 계승사 법진 스님이 봉축법어 오도송(俉道頌)을 본지에 보내왔다.
법진 스님은 이 오도송에서 “有法無一法 有門無一門

本來無一法 豈於有一門(법이 있다하나 하나의 법도 없고 문이 있다하나 하나의 문도 없나니 본래 없던 법 문은 어디 있을꼬!)”이라며 화두를 던졌다.
법진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온 우주의 생명에게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이라는 희망을 주기 위함이요, 일체 생명들이 참나(본래 모습의 나, 영혼)를 찾아 더불어 즐겁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라며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갈등은 탐진치가 그 원인”이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떨쳐버리고, 내 마음에 본래 갖춰져 있는 반야의 밝은 지혜를 회복하려면 참나를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진 스님은 부처님의 제자 하란이 “부처님 계실 적에는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지만 열반하신 후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리이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 “사념처(四念處)를 의지하여 계행으로 스승을 삼아라”고 일렀다고 전했다.
이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육신은 본래 공(空)이며 고(苦)이니 긍정으로 생각하지 말 것을 관(觀)하고, ‘나’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소유물도 소유자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관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진 스님은 자신의 오도송에서 “부처님은 ‘내가 멸도(滅度)한 후에 별해탈(別解脫) 계행(戒行)을 존중하라’고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촛불을 얻음과 같고 가난한 자가 보배를 얻음과 같고 계행을 가지지 않는 자는 무량겁(無量劫)을 나와 같이 있더라도 아무런 효력과 덕이 없다며 계행을 가지는 자는 나의 몸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여래(여래)의 법신(法身)은 항상 세상을 함께 머물것이라고 법문했다.



이어 오계(五戒), 십계(十戒)를 바르게 지킴은 물론이며 삿된 이익을 위하여 방만, 방자한 행동으로 재물을 모으지 말라고 일렀다.
또한 천문, 지리, 교묘한 신술, 꾀부리지 말고, 귀인교제, 혼인중매, 점치고 사주관상, 벌채, 미혹으로 속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몸을 조절하여 생활하고 의복, 음식, 방사탕약 공양구에 양을 알고 족한 줄을 알아 축적하지 말고 살라며 계행의 그릇이 깨끗하면 선정의 물이 맑아지는 법 지혜의 달이 나타난다고 법문했다.
법진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계행이 없고 보면 공덕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하셨다면서 이는 부처님께서 임종 시에 다다라서 우매한 우리 중생들을 향해 하신 최후의 유언이며, 중생들은 이를 어김없이 명심하라 일렀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각자의 욕망을 억제하고 수용하며 비우고 버리게 되면 심령이 고요하게 되어 지혜가 열리며, 투쟁과 갈등이 사라져 희망과 행복의 마음을 나누는 현실 정토세상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했다.
특히 법진 스님은 오도송을 통해 ‘한 고을에 공룡이 살아나니 / 모두가 놀라 숨어 살다가 / 공룡이 쌀도 낳고 돈도 낳는다니 / 세상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드네 / 고성땅 한구석에 선구자가 나타나서 / 괴물을 살피시니 이 고을 주민들은 / 노래를 부른다네’라며 고성공룡세계엑스포 성공을 기원하고 아름다운 고성을 찾아주는 관람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임진년에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마음이 통하면 해가 허공에 있는 것 같으리라며, 다시 한 번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의 등불을 밝히자고 주문했다.


 


계승사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 산17-1 금태산(341m) 중턱에 위치한 계승사는 신라 문무왕 15년(67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기암괴석이 주변을 병풍처럼 두른 계승사는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 토벌을 위해 내려와 머물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건국을 이룬 후 태조의 뜻에 따라 이 산의 이름을 금태산이라 지어서 하명했다고 전해진다.
1593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전국 고적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현 계승사 위치에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적 자료에도 고려시대 사찰터에 기와와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당시 사찰터에서 발굴된 문화재로는 금동불상 입상, 금동불상 좌상 등이 있었으나 현재 도난 당하고 소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폐허가 된 이곳에 1963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절 이름을 계승사라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요사채 앞 암반에 새겨진 중생대 백악기의 생생한 물결무늬화석이 유명하며, 대웅전 뒤편의 바위에는 울퉁불퉁 둥그런 빗방울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화석으로 보존되고 있다. 또 암반수가 흐르는 물길에서는 대형 용각류의 공룡발자국화석도 볼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시대에 형성된 물결무늬, 빗방울무늬, 공룡발자국화석 그리고 퇴적 층리(層理) 등이 계승사 경내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자연사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물결자국이 산출되고 있으며 가장 큰 것은 가로 13.5m 세로 7m에 이르며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그 밖에도 전형적인 형태의 빗방울자국, 퇴적구조 층리와 용각류(4족 보행, 초식)·수각류(2족 보행, 육식)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화석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태고시대 환경을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뒤쪽으로 암벽의 틈을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는 전각들은 마치 그림 속의 누각처럼 보여 더욱 신비롭다.

황수경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2년 05월 29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