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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향로봉 중턱의 천년고찰 운흥사에서 구국승병들의 영혼을 달래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영산재가 신도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3일 봉행됐다. 국영령과 국태민안을 위한 운흥사 영산대재는 올해로 282주년을 맞았다. 괘불 이운으로 시작된 이날 영산재는 쌍계사조실 고산대종사가 증명, 용문사 성전스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쌍계사합창단이 추모의 노래를 합창했다. 운흥사 주지 석담스님은 봉행사에서 “우리가 오늘 초청한 모든 영가들이 다 꽃이 돼 함박 웃으면 좋겠다는 발원을 가져본다”며, “임란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모든 영혼들이 원수도 아픔도 없는 생명의 근본자리에서 꽃처럼 웃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어에서 고산대종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마음을 다스리고, 언제나 웃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분명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며, “자비와 해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법했다.
사홍선원으로 영산재를 마친 후에는 2부 산사음악회가 열려 초대가수 나현재, 국안인 문옥순 이조이 등 다양한 문화공연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운흥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6천여명의 승병이 왜군과 전투를 벌인 영서지역의 승병 본거지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사명대사와 수륙양면 작전을 논의하기 위해 세 번을 방문해 참배했다고 알려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가의 화원 양성소로 조선불화가 3인 중 한 명인 의겸스님을 배출하는 등 불교회화의 산실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의겸스님의 불화 중 하나로, 영산재에 사용하는 괘불은 영조 6년(1730년)에 의겸스님과 문하생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물 제1317호로 지정돼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