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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와룡산 향로봉 겨울 산행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1일
ⓒ 고성신문
12월의 초순 겨울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고성 와룡산 향로봉을 찾았다. 향로를 닮았다는 향로봉 계곡에는 참나무 등 활엽수가 많아 온 산에는 낙엽으로 가득하다.이번 산행은 운흥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천진암, 낙서암, 신선대를 거쳐 향로봉 정상에 오르고, 진분개 갈림길로 돌아오는 6㎞ 거리로 4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오전 10시경 운흥사 주차장에서 운흥사로 가지 않고 등산로 입구에 있는 불연교를 지나 오른쪽 계곡으로 향한다. 등산로 입구 산불감시초소의 입산자 명단에 앞서간 일행은 3팀 정도 적혀 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등산객이 별로 없다.운흥사 부속 천진암이 있는 포장된 길로 약 500m 정도 걸어가는 숲속은 앙상한 가지만 가득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바닥에는 낙엽이 20㎝ 이상 쌓여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거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이 떠오르는 산행이다.

# 물안개가 아름다운 와룡마을
와룡산 향로봉 입구 와룡마을은 물안개와 벚꽃이 아름다운 마을로 옛날에는 서리띠, 상치동(霜峙洞)이라 불렀다.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이 누워있는 형세와 같다 하여 산 이름을 와룡산(臥龍山)이라 하였고, 1천300년 전 운흥사가 창건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향로봉을 중심으로 좌 능선으로 흘러 천마산(天馬山)으로 이어진다. 우측 능선에는 잔등이라는 큰 능선이 뻗어있고, 아래쪽에 안땀과 바깥땀으로 두 개의 동네로 형성되어있다.천마산을 일명 부엉산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서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상제가 말을 타고 하늘로 달리는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죽통이 지금의 와룡저수지 위쪽의 하천 복판에 있어 이 둠벙(웅덩이)을 ‘구시둠벙’이라 부르며, 큰 홍수가 나도 메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풍수지리상 수구(水口)에 해당하여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오전 10시 30분경 천진암에 도착하여 잠시 들러본다. 천진암은 1692년(숙종 18) 응화선사(應化禪師)가 창건한 운흥사의 부속 암자다. 조금만 암자에 법당이라고 쓰인 문 앞에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기와를 차곡차곡 쌓은 담장이 아름답고, 암자 뒤쪽에 아직 따지 않아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천진암에서 500m 정도 가파른 등산로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낙서암이 나타난다. 암자 입구 양쪽에 용머리 기와 두 개가 방문객을 반기는데, 귀부분에 관솔을 꽂아 뿔처럼 만든 모습이 익살스럽다. 낙서암은 숙종 8년 운흥사와 동시에 수도처로 개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 법력이 높기로 소문난 낙서도인이 이 절에서 깨달음을 이룬 낙서암은 물은 다른 샘물보다 세다고 하는데,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전한다.낙서암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두 갈래 길이다. 계곡으로 가파르게 올라 능선에 있는 애향교로 연결되는 코스와 신선대 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 신선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참나무로 만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이 코스는 바위가 많은 너덜겅으로 조금 험한 코스다.너덜겅을 오르고 안내판대로 왼쪽으로 걸어 암벽 사이에 설치된 줄을 잡고 계단을 돌아 오르면 신선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삼천포항과 사천시 와룡산이 잘 보인다. 절벽이 높아 밧줄로 난간이 만들어져 있고, 난간 밖에는 산수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있는 소나무가 절벽에 걸쳐있다.잠시 휴식 후 계속 이어지는 바윗길로 계속 올라 비로봉으로 불리는 능선에 도착한다. 이곳 비로봉은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넉넉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능선으로 계속 오르면 새를 닮은 새바위가 있고, 멀리서 보면 상투같이 보이는 상두바위가 있다. 상두바위 옆 쉼터를 지나면 애향교가 있는데, 이 철교는 하이애향회에서 순수기금을 모아 2003년도에 운반 제작하였다. 이 철교 외에도 등산로 곳곳에 하이애향회의 향로봉 사랑 흔적이 남아있다.

#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인 향로봉
남해안의 풍경을 보면서 능선을 올라 12시경 향로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돌기둥에 향로봉 579m라고 적혀 있다. 넓은 헬기장 옆 커다란 정자에서는 등산객 일행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가득 펴놓고 점심을 먹고 있다.이곳에서는 자란만의 자란도, 대호섬, 와도, 문래섬, 나비섬, 괴암섬 등 점점이 뿌려진 섬들이 보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의 절경은 멀리 사량도와 남해도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천상의 비경처럼 한 폭 그림으로 다가온다. 오른쪽은 무이산, 왼쪽으로 좌이산이 보이는데, 좌이산은 와룡산 향로봉 용의 왼쪽 귀에 해당하여 좌이산으로 불린다고 전한다.향로봉(579m)의 애초 이름은 와룡산이었다. 예부터 와룡산이란 이름은 둘이었다. 하나가 지금 향로봉이라 불리는 고성군 하이면에 있는 와룡산으로 산 밑에는 와룡리가 있었고, 나머지는 사천시에 있는 와룡산(799m)으로 사천 와룡산 밑에는 와룡동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에도 그렇게 기록돼 있다.와룡산을 지칭할 때 사천 와룡산과 고성 와룡산으로 구분하여 불러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고성 와룡산이 향로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대정 7년 3월 30일 발행)에 발행한 축척 5만분의 1 지도에 사천 와룡산과 와룡동은 그대로 두고 고성 와룡산을 향로봉으로 표기해 버려 지금까지 향로봉으로 불려오고 있다.향로봉 정상에서 문수암이 있는 무이산까지 연결되는 5.8㎞로 능선 종주 코스가 있는데, 이 구간은 등산 내내 자란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걷는 재미가 있는 코스다. 능선을 이용하여 학동치에서 수태산으로 올랐다가, 무이산으로 오른 후 문수암과 보현암 약사전을 잇는 사찰탐방도 좋은 곳이다.하산을 위하여 진분개 방향으로 50m 정도 내려가면 운흥사 계곡이 잘 보이는 바위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삼천포항의 풍경을 보면서 점심식사 후 하산을 시작한다. 향로봉 하산로는 능선으로 편안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다.오른쪽으로 성마리오 농장이 보이고, 농장 위쪽으로 자작나무 숲이 보인다. 향로봉에 올 때마다 보는 자작나무 숲은 푸른 숲속에 하얀 나무줄기가 멀리서도 더없이 좋아 보인다. 능선길을 한참 가다 보면 오른쪽에 전망이 잘 보이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봉원리 내원마을과 내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전망대에서 조금만 가면 진분개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진분개로 가지 않고 왼쪽 중턱 낙엽 가득 쌓인 오솔길로 접어든다. 조금 가다 보면 안내판에 ‘향로봉 동부보살 보는 곳’이 있다. 멀리 향로봉 옆 상두바위 아래 오른쪽 바위가 불상 모양으로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내판에 동부보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낙엽이 가득한 중턱으로 계속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어 능선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정표는 없고 국가지점번호판이 있는 왼쪽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면 오래된 키위밭과 시누대 숲을 벗어나 오후 2시경 출발지점 불연교 쪽의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등산을 마친다. 등산을 시작 한지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 호국사찰 운흥사등산
 배낭을 정리 후 운흥사 탐방에 나선다. 운흥사는 본전에 이르기까지 문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봄 일주문을 새로 세웠다. 일주문 뒤쪽에는 불이문(不二門)이라 적혀 있다. 불이문은 절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일컫는다. 또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운흥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총본부로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 6천여 명이 왜적과 싸웠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왜적과의 전투를 위한 작전 회의 때문에 세 차례나 운흥사를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인해 운흥사가 왜군에 의해 불타는 불운을 겪었다. 가장 많은 승병이 전사한 날로 기록되는 음력 3월 3일이면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재가 매년 열리고 있다.운흥사 뒤쪽 향로봉 골짜기에는 큰 소나무가 별로 없고 참나무 등 잡나무가 많다. 조선 말기 고성 부사를 지낸 오횡묵(1834~?)이 쓴 ‘고성총쇄록’을 살펴보면 운흥사에 대한 기록이 언급되어 있다. ‘9월 10일 운흥사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십 년 전에는 이 골짝 안 30리가 모두 한 아름 되는 큰 소나무들이었는데, 통영 사또의 명령으로 일곱 고을 나무꾼이 일시에 마구잡이로 베기를 매일 수천 명씩 하니 열흘도 안 되어 민둥산으로 변했습니다”라고 한탄하니 나도 분함이 일었다.’ 운흥사가 옥천사 계곡처럼 아름드리 소나무가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와룡산 향로봉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운흥사 승병의 활약상이 있었던 곳이고, 통영사또의 명령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잘려나간 아픔이 있었던 곳이다. 또 일제에 의하여 이름까지 빼앗겨 고성 와룡산 명칭이 지도에서 사라진 안타까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하여 이제라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여 향로봉보다는 와룡산이란 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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