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새바람, 협동조합 4.] 가지 않은 길을 여는 청년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

① 인구절벽 위기 고성 협동조합으로 숨통 틔워야

② 엄마·아빠가 살려낸 ‘우리’ 꿈동산유치원

③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협력과 변화, 위즈온협동조합

⑤ 지역민이 나서면 지역의 가치가 커진다

↑↑ 글로벌제주협동조합의 청년농부들이 일손이 부족한 지역의 마늘수확에 나섰다.

ⓒ 고성신문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계속 사라진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한 듯 도시로 향한다. 시골살이가 힘든 탓이다.
고성과 같은 작은 지역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다. 취업 분야도 다양하지 않고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창업은 쉽지 않다. 한정된 기회를 나눠 가져야 하니 시골살이라고 마음이 마냥 여유롭지는 않다.
기회의 한정은 이전 세대들의 고정관념도 한 몫 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자 해도 우선 부정적 시선과 목소리를 보내니 기가 꺾인다. 최근 몇 년 사이 행정에서도 청년정책들을 수없이 내놓고 있지만 청년들이 고성에 기반을 닦고 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건을 사는 일이야 온라인 쇼핑몰이 있고, 신작영화 정도는 요즘 넷플릭스나 IPTV로 안방에서 즐길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공연 하나를 보려 해도 고성에서는 흔치 않은 이벤트다. 취미생활을 즐기려 해도, 뭔가를 배우고 싶어도 고성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가까이는 통영, 진주, 창원에 멀게는 서울이든 어디든 어쨌든 도시로 가야 한다.
악순환이다. 정주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다. 고성에 남아있다 해도 돈을 쓰는 것은 결국 외지다. 돈이 군내에 돌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하는 생활은 힘들다. 시골생활이 큰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집값이 엄청나게 싸다면 인근 도시지역의 베드타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성의 30평대 신축아파트는 인근 도시지역에 비교에 아주 싼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농어촌이라는 장점을 살려 농어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자력갱생해야 하니 차라리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고성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소도시라면 어디든 겪는 악순환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청년들은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탄탄히 뭉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의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다.

↑↑ 제주의 청년농부들을 예쁘게 본 주민들은 알뜨르농부시장의 운영을 맡겼다.

ⓒ 고성신문

# 송악산 아래쪽 뜰, 알뜨르 농부시장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멀리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알뜨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동네다. 알뜨르는 송악산과 단산, 모슬봉, 산방산의 ‘아래쪽 뜰’이라는 뜻이다. 알뜨르는 일제의 격납고, 비행장이었다. 지금도 동네에는 일곱 개의 격납고가 남아있다. 일제는 알뜨르 비행장을 짓기 위해 10년 세월 동안 모슬포 주민들을 강제징용했다. 격납고가 있는 섯알오름은 제주 4.3 사건 당시 수많은 무고한 일반인들이 학살당한 곳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자 잊지 말아야 할 현장이다.
바다 방향으로 좀 더 가면 송악산을 마주하고 제법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주변에는 상가들도 꽤 있어 관광지 분위기가 나기는 한다. 주차장 입구에 카키색의 낡은 트럭 한 대가 서있다. 노란 바구니들을 싣고 있는데, 차에 온통 글씨가 뒤덮었다. 연매출 20억, 농사지어 장가가겠다는 꿈을 가진 제주청년농부의 트럭이다. 관광객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사진도 한 장씩 남긴다.
트럭 뒤로 작은 농산물 매장이 하나 보인다. ‘알뜨르 농부시장’이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 적당히 지역 농수산물, 특산물 몇 가지 놓고 촌로가 꾸벅이고 있는 관광객 상대 특산품 가게겠지, 하면 오산이다. 이곳은 대정읍을 중심으로 제주에서 농사를 짓고 청년문제를 고민하고, 청년정책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의 제주 청년농부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 폐교에 둥지 틀고 농촌과 성장하는 청년들
제주 이민이 한동안 붐이었다. 제주행을 택한 이들은 카페, 게스트하우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우후죽순 생겨난 업체들은 사라지기도 금세였다.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청년들이 든든하게 기반을 잡고, 전국 나아가 전세계 청년들이 제주에서 농촌생활을 제대로 즐기며 제주문화를 지키려면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답은 청년이 뭉쳐 만든 협동조합,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었다.
2016년 6월 안창근·이성빈·박진석 씨가 처음 만든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은 농촌 문화 청년 공동체다. 줄여서 글제문의 조합원들은 20~3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폐교된 무릉분교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조합원들의 면면을 보면 마케팅기획자, 디자이너, 미국 출신 농부 등등 다양한 지역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던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마을 내 창고를 빌려 디자인공간으로 쓰면서 주민들의 명함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다. 농촌과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제주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알뜨르농부시장은 2016년 JDC 마을공동체사업 6호점으로 문을 열었다. 주민들에게서 위탁받아 운영한다. 판매하는 농산물은 지역 내에서 생산된 고구마나 한라봉, 천혜향 등 채소나 과일은 물론 과즐, 초콜릿, 과일청이나 차 등 제주도내에서 생산해 가공한 특산물들이다.

# 일손 돕고 열정 쏟아 주민들 마음 돌린 청년들
서귀포시 대정읍도 고성이 겪었던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육지로 나갔다. 50~60대가 청년 축에 드는 지역이었다.
청년들이 귀농귀촌해 농사를 짓겠다는 걸 보며 주민들은 반기기는커녕 ‘저러다 말겠지’, ‘제 풀에 지쳐 다시 육지로 가겠지’ 했다. 눈에 띄게 거리를 두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마을에서 마늘을 수확하면 마늘밭으로, 감귤을 따는 철에는 감귤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청년 조합원들은 주민들이 일손이 필요하면 당장 달려가 손을 보탰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의 사회적 문제는 물론 청년들 자신에게 당면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정주기반 마련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과 열정을 쏟았다. 꼬박 6개월이 지나자 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알뜨르농부시장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1리 마을주민들이 운영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청년 조합원들을 지켜본 주민들은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에 알뜨르농부시장을 맡겼다.
​글제문은 알뜨르농부시장을 첫 번째 열매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SNS를 운영하며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청년농촌문화를 만들고 있다.
알뜨르농부시장이 문을 열기 전에는 지역 농산물 대부분이 도매 유통업체를 통해 판매됐다.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니 당연히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크지 않았다. 글제문 조합원들은 직접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와 농민을 연결했다. 단순히 연결고리에서 그치지 않고 농산물을 버스킹, 농기계 포토존 등 색다른 방식으로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수익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알뜨르농부시장을 운영하며 얻은 수익 중 일부를 마을발전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운영기간이 늘어날수록 부족한 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매장 특성상 관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아야 했다. 일명 ‘킬러 아이템’의 개발이 필요했고 글제문은 아이템 개발에 몰두했다. 머리를 맞대니 농산물을 2차 가공해 새로운 수익 창출이 좋겠다는 의견이 과 함께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 정직하게 생산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브랜드와 디자인들이 나왔다. 이런 과정들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더욱 탄탄해졌다.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냐 못미더워 하던 시선들이 ‘이제 너희는 가면 안 된다’고 바뀌었다.

# 땀 흘리며 농사의 가치를 깨닫는 청년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은 지역과 청년들의 상생을 위해 제주판 워킹홀리데이를 진행, 지역 내 농가의 부족한 일손도 돕고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제주에서 머물며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처음에는 글제문에서만 운영되던 것이 조금씩 지역사회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농협이 감귤 수확 인력을 모집하는 데서 착안해 감귤공주 구출 원정대를 꾸리기도 했다. 감귤 수확시기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노령화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도와 농협은 제주도 외 지역에서 인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글제문이 나섰다. 감귤공주 구출 원정대는 제주의 감귤을 수확하는 일손을 도우며 농촌체험과 함께 참가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워킹 홀리데이였다. 최소 6만 원에서 13만 원까지 일당도 지급됐고, 캠프 한 달 무료 숙박권, 제주 왕복항공권, 제주청년농부 기획단 참여기회 등 혜택도 줬다. 일이 없을 때는 농산물 판매체험, 농촌 힐링투어도 하고, 저녁이면 농산물 바비큐 쿠킹 파티도 열었다. 지역민과 협동조합이 함께 만든 신나는 농촌이었다.
일만 해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글제문의 생각이었다. 이왕 제주를 찾아올 거라면 여행과 문화활동까지 하면서 제주와 농촌에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고 봤다. 전국 어느 농촌이 그렇듯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제주 역시 농가의 인력이 급속히 줄어들 텐데 한두 번 단발성으로는 인력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외국의 워킹홀리데이가 비자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정기간만 참여 가능한 것에 비해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의 워킹홀리데이는 연중 수시로 진행된다. 제주도내의 농촌 현장에 일손이 모자라다는 소리가 들리면 글제문은 언제든 출동한다. 서울이나 경기도처럼 수도권은 물론이고 경상도, 전라도 심지어는 미국과 대만, 홍콩,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등 전세계에서 제주로 찾아든다.
그동안 수천 명의 청년들이 글제문의 제주판 워킹홀리데이에 참여했다. 그 중에는 제주의 환상적인 풍경과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에 홀딱 반해 아예 제주에 정착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글제문의 조합원이 돼 다방면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글제문은 제주살이의 낭만보다 현실적 농촌문제와 청년문제,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행정이 앞장서고 청년공동체가 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청년 협동조합이 주체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알리고, 땀 흘린 만큼의 가치를 되돌려 받는 농사의 매력을 알리고자 한다.

↑↑ 글제문 조합원들은 농사일뿐 아니라 지역 문화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고성신문

# 청년다락과 청년반상회, 새로운 청년 네트워크
사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이 하는 사업은 뭔가 규정지어진 것이 없다. 사업에 제한을 두는 순간 글제문의 영역 자체가 제한받는다. 글제문은 농촌문제와 문화, 청년 문제 등등 수많은 관심거리를 가지고 있다.
글제문은 대정읍에서 청년다락(多樂) 3호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개소한 청년다락은 청년이 주인으로, 즐겁게 활동하는 공간이다. 청년다락이라고는 하지만 일요일이나 공휴일만 제외하면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쉼터이기도 하고 동아리 모임공간이기도 하며, 북카페나 회의실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청년반상회도 개최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개최한 반상회는 글제문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고, 나아가 청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반상회에서는 지역과 청년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세계 청년들이 참여해 건강하고 새로운 농촌문화를 만들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갓 제주로 이주해온 청년들은 영농기반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재능을 지역에 제공하면 지역과 지역민은 청년들의 정착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글제문에서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귀농귀촌교육과 실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를 위해 충남대학교 영농창업사업단과 손잡고 부족한 기반 속에서도 농업에 뛰어든 농업전공 청년들에게 조직이 가진 기반과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귀농귀촌 희망 청년들이 보다 더 쉽게 정착하고 마을에 융화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은 앞으로도 바쁜 일상을 보낼 예정이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농촌살이와 공동체 문화, 청년정책 등 청년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글제문은 귀농귀촌 희망 청년들이 제주도에서 실제로 생활하면서 농촌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 제주의 전통문화를 기본으로 다양한 문화사업도 펼칠 생각이다.
농업으로 돈을 버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삶이 옳고 그르다거나 좋고 나쁘다고 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보통의 젊은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일반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버는 것이 오히려 쉬운 삶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제주문화협동조합의 청년 조합원들은 지역에 활력을 불러온다. 마을과 주민, 청년들은 함께 성장한다.
젊은 사람들을 두고 기성세대는 끈기가 없다는 말을 곧잘 한다. 그러나 글제문은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젊은 열정을 농사와 지역에 쏟는 이들에게 농사는 절대 고되거나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다. 다양하고 지혜로우며 신선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또한 가치를 높인다. 전 세계 누구에게나 팔을 벌리고 있는 글제문의 청춘들은 제주의 바다처럼 푸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