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봄이 얼마나 왔는지 마중 나오듯이 집 앞 돌담에 앉은 장갑선 님. 지붕도 담도 사람도 세월따라 늙었지만 맘은 안 늙은 기라~ |
ⓒ 고성신문 |
|
아부지, 장덕교 내 아부지! 집 앞 묏등가에 볕이 고실고실 내리고 있심미더. 겨울 가뭄이 깊어 흙먼지가 폴폴 날리더마 엊그제 비가 홈빡 내려서 땅은 촉촉하고 날이 많이 풀맀네예. 앞집 애곡띠(외곡댁)가 시금치 밭에 엎디리서 나물을 캐고 있데예. 지난가는 말로 “내가 진잎파리 좀 떼 줄까” 물어봉께 괜찮다고, 아지매 아푼 다리나 잘 건사하라꼬 웃데예. 밭둑에 걸터앉아서 시금치 캐는거 가만히 쳐다봤심미더. 그랑께네 애곡띠가 “아지매, 사탕 하나 물라요?” 카더만 줌치(주머니)서 눈깔사탕을 손에 잡피(잡혀) 주데예. 내는예. 사탕맘 보모 아부지 생각이 억수로 납니더. 아부지도 알 낀데예? 우리가 거류면 선동에 살 때, 아부지는 오개두리 기계선, 뒷배의 기관사였다 아임미꺼. 아부지가 오개두리 배 타다가 한 조시(보통 열흘이나 보름 간격) 끝나고 셈 해서 집에 오시모 줌치에 돈이 에북 뽈똥했지예. 그라모 옴마는 제쳐놓고 제 손 잡고 점빵으로 시장으로 데꼬 다니셨지예. 옴마는 “우째 그리 큰 딸만 챙기능고, 문디 영감재이….” 도끼 눈으로 째려 보셨어도 저는 참 좋았어예. 키도 크고 잘 생기셔서 우리 둘이 손 잡고 걸어가모 사람들이 아부지 치다보는거를 내가 이삐다꼬 치다보는 줄 알았다 아임미꺼예. 그 때 아부지가 하도 사탕을 많이 사 주신 바람에 내 이가 다 썩어서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개오지가 됐던 기라예. 아그들이 ‘이빨 빠진 개오지 사탕밭에 가지 마라. 사탕 밟고 넘어지모 이마빡도 다 까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불러감서 내를 놀리던 기라예. 내가 오른쪽 주먹을 치키들고 “너거들, 우리 아부지가 사탕 사 오면 한 개도 안 줄끼다. 내 놀린 짜슥들은 사탕 뽈아물(빨아먹을) 생각 하지 마라모. 사탕이 을매나 맛나는지 너거도 알제?” 이런 말로 복수를 했다 아임미꺼. 그란데 아부지, 와 그리 퍼뜩 돌아가싰어예? 아부지 돌아가시고 옴마캉 내캉 동생캉 셋이 억수로 욕봤심미더. 옴마는 젊은 나이에 과수댁이 되었으이 을매나 힘들었을지,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내가 나이든께네 다 알것십디더. 그 때 옴마가 서른도 안 됐을끼라예. 아부지 병구완 한다꼬 집도 논도 다 팔아묵고 우리는 상거지와 같았어예. 이웃 사람들이 옴마보고 ‘아직 새파란 청춘 각시 아이가, 새 인생 찾아야제.’ 캤어예. 어떤 아지매는 ‘읍에 동동구리무 장사하는 젊은 홀애비가 있응께 둘이 함 맞차봐라’ 쿰서 옴마보고 고성읍에 같이 나가자고 꼬드기기도 하싰어예. 그래도 내 옴마는 흔들림이 없었심미더. 아부지가 그리 좋았을까예? 아부지만한 인물도, 아부지만큼 멋진 남정네도 없었덩갑서예. 내 옴마가 외삼촌한테 하소연을 했다 쿠데예. “와 이리 사람들이 물어뜯는지 과부로 사는거 설버 죽것소. 오빠가 내 델꼬 가서 사람들 입질에 안 오르내리게끔 해 주소. 모리는 곳에 가모 이런 설움 안당할 꺼 아이요.” 외삼촌이 선동 우리 집으로 통통배 타고 오셔서 광도면 안정으로 우리 식구들 모두 델꼬 가싯어예. 옴마는 뱃전에서 우리 동네를 보고 하염없이 우시고, 지는 아부지를 싹다 이자삘끼라고(잊어버릴) 다짐했다 아임미꺼예.
|
 |
|
ⓒ 고성신문 |
|
|
 |
|
↑↑ 파킨슨을 앓으면서도 모자이크 그림만들기를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온 벽이 알록달록이다. 저걸 하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르셔. 귀한 분이 선물로 주셨는데 어디서 구하는지를 몰라서 아쉬울 뿐. |
ⓒ 고성신문 |
|
아부지, 고향 떠나 광도면 삼서 어무이가 고생 많이 하셨어예. 옴마가 생선캉, 건어물캉 이고지고 동네마다 돌아댕김서 팔았다 아임미꺼. 그 시절에 사람들이 뭔 돈이 있덩가예. 곡식도 받아오고 우떤 날은 돼지새끼도 다라이에 이고 오싰어예. 옴마가 동생은 학교에 보냈는데 내는 와 안 보내주싰는지 그기 참 섧었어예. 책보따리를 머스마들은 등에서 어깨쪽으로 걸치고, 가스나들은 허리에 볼끈 묶어 댕깄다 아임미꺼. 월사금(학비)이 있던 시절이니까 옴마 혼자 벌어서 재우(겨우) 묵고 사는 것도 힘들었을 낀데 딸내미 둘이를 우찌 학교에 보내긋심미꺼. 밥해 묵고 빨래하고 산에 올라가서 갈비 긁고 솔방구 줍고 옴마가 받아온 돼지새끼한테 구정물도 얻어 멕여서 키웠어예. 외삼촌 밭도 매 주고, 고매(고구마)도 썽글어 빼때기 해 주고, 외숙모가 장에 가서 광목천을 한빨띠 끊어오시모 양잿물에 빨고 다듬이질 하고, 화톳불 피워 인두질까지 하고 풍로도 돌맀다 아임미꺼. 옴마 머리밑에 따바리(똬리) 자국이 남도록 무거운걸 이고 댕기는데 내가 우찌 탱자탱자 놀고 밥을 묵을낌미꺼. 이웃집 밭도 매 주고 풀도 베 주모, 풋나물캉 곡식들을 농갈라 줍디더. 내는 동생 오모 씻기고 딲이고, 옴마가 집에 오시모 을매나 배고풀까 싶어서 시락국(시래기)도 끼리고 소풀(정구지)도 무치고 바지락 미역국도 낄이(끓여)놓고 기다렸다 아임미꺼. 우짜다가 보모, 옴마가 한밤중에 혼자 방바닥을 치심서 우시데예. 살기 에러버서 그랬을까예, 아부지 보고지버서 눈물 지었을까예, 과수댁이라꼬 넌지시 넘보는 놈들캉 은근히 낮춰보는 여편네들한테 무시 당하는거 설버서 그랬을까예? 암매도 이 모든기 항꾸네 뭉쳐올라서 설움이 복받치는거 아인가 싶네예. 이거는 내가 살아봉께 알것십디더. 내도 그랬응께네예. 아부지, 내는 시집 가기 싫었어예. 외삼촌이 말라꼬 내를 글케 시집 보낼라꼬 용을 쓰셨던지 모리것어예. 내캉 동생캉 퍼뜩 시집 보내삐고 옴마도 오데 좋은데 보내실라꼬 그랬던가 싶기도 한데 그거 몬 물어보고 돌아가싰어예. 내가 스무살에 거류면 화당리 김씨 집안 첫째 아들한테 시집가서 시부모 모시고 농사짓어예. 시집살이 뻔하다 아임미꺼. 새댁은 새복(새벽)부터 밤까지 오데 쉴 시간이 있던가예. 어릴 때 고생하며 일한거를 매 똑같이 했심미더. 신랑이 멸치 배, 오개두리 탄 것은 아부지캉 비슷함미더. 그란데 아부지는 참 살갑고 다정하싯고 인물도 좋아서 자꾸 치다보고 싶더마는, 이상하게도 신랑은 다릅디더.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가서 그란지 정이 안 붙는 기라예. 내 맘을 신랑이 우찌 모리것심미꺼. 자꾸 밖으로 나돌디예. 그래도 오누이를 낳아서 키았심미더. 아부지, 어릴 때는 새끼들 키아는 재미로 산다 아임미꺼. 부모란 게 자식들 입에 밥 넣어주고, 옷 씻거 입히고, 학교 보내고, 웃는거 봄서 따라 웃고, 지 새끼가 울모 속이 쓰리고 그렇지예? 내도 그런거 다 했는데 스무 살 넘자마자 오뉘 둘이 하늘 나라로 가삐리데예. 내가 고마, 죽것디예. 서방이 죽으모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모 가심에 묻는다, 안 카디예. 내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모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명치 밑이 콱 막힘미더. 고매를 급히 무모 목에 턱 걸리드끼 내가 자슥들 생각만 하모 그렇다 아임미꺼예. 그래도 또 산 목숨을 우찌 억지로 끊심미꺼. 모질고 독하고 아팠지만 또 살아야지예. 내가 하도 미친 듯이 살아강께네 강보에 싸인 아이가 있다캐서 델고 와서 키웠어예. 고등학교까지 마쳐주고, 직장 다니다가 결혼했는데 요새는 흔적도 없네예. 손주를 낳았는데 지금 그 아~가 열여덟이 되었을 낌미더. 내 방에 손주 돌사진이 걸려있어예. 어릴 때는 한번씩 얼굴도 보이더마, 요새는 연락이 끊어졌는데 언젠가는 얼굴이라도 꼭 함 보고 집네예.
|
 |
|
↑↑ 문해학교 다니며 행복하였니라. 내 인생에 이런 모자를 쓰고 사진도 찍었으니 참 좋았디라. |
ⓒ 고성신문 |
|
아부지, 사는 기 그렇십디더. 내가 복이 짧은 사람이라서 그란가 싶어예. 내 팔자를 내가 탓해야지 만다꼬 넘 탓을 하끼던가예. 뒤돌아보모 모든게 아쉽고 서러워도 우짭미꺼. 이 집에서 40년을 살고 있심미더. 영감은 여기서 3~4년을 더 살다가 60살에 세상 베맀어예. 내가 영감보다 6살 적으니, 그 때 내 나이 쉰 네살 이었어예. 혼자서 여기저기 품삯도 다니고, 일거리 찾으며 살다보이 세월이 무심한 듯 흘러가데예. 아부지, 내 인생에도 따순 볕이 반짝반짝 떴다 아임미꺼. 이 ‘반짝반짝’이란 말은 어둔 밤에 별이 빛나는 거 맨치로 생각이 떠오르거나 눈을 크게 뜨는 거를 말하는기라예. 그래도 아부지는 알아 들으시지예? 거류면사무소에서 문해학교 학생을 모집한다 쿠데예. 내는 파킨슨병이 와서 손을 많이 떨고 있었어예. 나이도 많은데 글씨도 몬 쓰모 우짜노, 걱정하다가 고마 마감날 접수를 했어예. 세상사 재고 따지고 하모 뭐이 되던가예? 입학 하고나서 죽기살기로 공부를 했다 아임미꺼. 공부가 글케 재밌는 줄 내사 첨 알았어예. 고로코롬 재미난 공부를 와 을라들이 안 할라꼬 부모들하고 그리 싸우고 내빼는지 모리것어예. 세상이치가 참 요상해예. 우떤 사람들은 공부하고 지버서 눈물보따리를 푸는데, 아가들은 공부하기 싫다고 난리를 친다 아입디꺼.
|
 |
|
↑↑ 거류작은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읽는 기쁨 배우는 행복, 독서는 갑선님이 만난 또 다른 사랑의 세상이다. |
ⓒ 고성신문 |
|
내는예, 요새 취미가 거류작은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는 기라예. 이번 주엔 강풀이란 작가가 쓴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만화책캉, 천명관 작가의 장편소설, ‘고래’캉, 할매들이 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 캉 ‘인기 가요’ 이렇게 네 권을 빌리 왔어예. 책이 억수로 신통방통하다 아임미꺼. 책에는 없는 게 없고예, 세상에 재밌는 일은 모두 책에 다 들어 있어예. 내 거튼 할매들도 글을 쓰고 책을 내데예. 아이고, 내도 몇 살만 젊었을 때 글을 배웠으모 책을 낼 수 있었을랑가 모리것어예. 암매도 내가 땡빚을 내서라도 책을 내고 싶었을 꺼구만예. 빚까지 안 내도 책을 쓰고 지븐 욕심이 있었으모, 내 두 다리가 비틀어져도 시금치를 밤낮없이 키아서 베고 가리고 뭉쿠(묶)고 해서 공판장에 들고 갔을끼라예. 공부하고 배우고 내 이름 석자를 터억 넘 앞에 내 놓을라쿠모 우떤 고생인들 몬했을라꼬예? 내 그기 한이 되지만 우짭미꺼. 글을 배워서 책을 읽을 줄 아는 것만도 을매나 다행인데예. 그라이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기라 안쿱미꺼. 말 타모 경마잽히고 싶다카고,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채운다 카는 말처럼 말이지예. 내가 그 말 하모 웃었더니, 그런 거를 ‘꿈’이라 칸다쿠네예. 사람이 태어나서 꿈을 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꼬, 내도 그 꿈을 꾸면 다음 생애라도 이룰 수 있다꼬 말이지예. 내는 꿈이지만 계속 꾸고 살라캄미더. 장덕교 우리 아부지, 내가 젊은이들한테 몇 가지 일러둘 말이 있어예. 첫째,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 몬해서 한이 맺힌 사람이 쌔비릿다. 둘째, 자식없어 애 태우는 사람은 자식 욕심 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 셋째, 자식을 낳았으면 버리지 말고, 에미가 끝까지 잘 키아라. 내는 오늘도 ‘아리’캉 책이랑 재밌게 살고 있어예. 혼자서 생활하는 제가 불편하고 힘들다꼬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켜 주는 로봇이름이 ‘아리’라예. 아리한테 트롯 노래 틀어달라카모 아리가 알아서 척척 켜 주는기라예. 세상 참 좋아졌지예? 혼자 살아도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잘 지냅미더. 이번 금욜에도 도서관에 또 갈라꼬해예. 서가에 꽂힌 책들을 쭉 훌터보고 제목이 멋진거를 고를끼라예. 아부지, 오늘은 이만 씁미더. 지는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아부지 만나러 가께예. 거기 우리 옴마도 계시지예? 큰딸 갑선이 올림.
|